씨디플레이어를 멈출 때 아직 노래가 다 끝나지 않은 씨디플레이어를 멈출 때면 늘 열심히 노래하고 있는 가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망설이게 된다. 어지간하면 적어도 하나의 곡은 끝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스톱 버튼을 누르곤 한다. 오늘 아침에는 한 듀오의 노래를 듣다가, 쓰려는 글과 어울리지 않아 중간에 멈추고 말았다. 어쩌면 아직 침대에 누워 주말의 단잠을 자고 있을 그 가수는 지구의 어딘가에서 자신의 노래가 중간에 끊겨버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게 그리 대단한 충격파를 던질 사건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카리브해에서 출발한 물결이 오랜 세월을 지나 언젠가는 경포대의 모래톱을 적시는 것처럼, 내가 멈춘 단 한 번의 음악도 한 가수의 삶을 흔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까지 생각해버리면..
20대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내게 감자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감자 성분이 0.1%라도 들어간 음식을 먹고 나면 어김 없이 편두통이 찾아온다. 30대 하고도 중반이 지나서야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20대 내내 도올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늘 마음과 몸이 서로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란 것을 하품이 날 정도로 들어왔지만, 어리석게도 진정으로 체화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편두통은 20대 시절의 나와 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짧게는 한 주에 1-2회, 길게는 4-5회 정도 편두통이 이어졌다. 편두통은 늘 나를 날카로운 상태로 만들었고, 편두통이 심한 날에는 늘 죽음의 충동 앞에 서곤 했었다.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것 같은"이라는 흔한 표현 속 고통은 내게 차라리 편안한 상태였다. 나..
10여년 전의 일이 있은 뒤부터 내게 사랑은 행복이 아닌 숙제였다. 그러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어리석게도 최근의 일이다. 인연을 만나고 마음을 나누며 때때로 즐거웠으나 안온함이나 충만한 기쁨을 느낀 일은 드물었다. 상대는 충분히 훌륭하고 좋은 사람인데 어째서 나는 편안해지지 못할까, 외로움을 떨치지 못하는 걸까 고민하게 되는 날들이 많았다. 더 어리고 미욱할 때는 그 모든 것을 상대의 잘못으로 돌려버리곤 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나와는 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나를 지키려는 비겁함이었다. 좀 더 어른이 된 뒤에는 '내게 알맞는 사람'은 애초에 없는 것이고, 마음을 준 사람에게 최대의 정성을 다하는 것이 그저 사랑이 아니겠는가 했다. 20대 초반 어리석은 사랑이라고 비판하고는 했던 희생적인 사랑에 뛰..
당신과 나 사이에 먼저 떠난 당신과 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언제나 오십 미터 이상의 거리가 있었고, 나는 늘 먼 발치에서 당신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거리의 단상에 서서 연설하는 당신, 토론회의 발표자석에서 정견을 전하는 당신, 유세차 위에서 목청을 높이는 당신. 당신과 나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고, 마이크가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인자하게 웃을 때 지어지는 눈가의 작은 주름 같은 것은 미처 목격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총명하게 빛나는 듯한 눈동자 뒤의 고단함을 온전히 알 수는 없었던 사이였습니다. 제가 거리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참여정부가 시작되고 한 해가 지난 2004년 무렵이었습니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반전 집회에 나섰고, 새..
친구들이 읽어보라한 소설을 이제야 읽게 된 것에도 무슨 삶의 비밀스런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 마쓰모토 세이초의 '어느 전'은 마치 나의 생애 이야기와 다를 바 없는 듯하여 친구들이 성찬한 것처럼 작가로서 글의 완성도 측면에 집중해 읽을 수가 없었다. 장애를 타고 태어났지만 단지 머리가 좀 좋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뿐인 한 남자가 사라진 유명 작가의 일기를 복원하는 일에 몰두한다. 나쓰메 소세키에 비견되는 모리 오가이가 '고쿠라' 지역에 살던 시절 썼다는 3년 치의 고쿠라 일기. 남자는 장애의 몸을 이겨내며 홀어머니의 도움까지 받아 천신만고 끝에 고쿠라 지역에서 모리 오가이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을 찾아내 그의 고쿠라 시절 이야기를 희미하게 복원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나는 사실 이 소설의 초반부에 ..
모처럼 새벽에 일어났다. 4시 50분 즈음이다. 철원과 파주에서 살던 시절에는 항상 5시 반 즈음에 일어나서 소설을 쓰곤 했었다. 서울 연남동으로 와서도 2014년 무렵까지 지키던 습관이 2015년경부터 사라졌다. 의무적으로 글을 써야만 하는 직장을 가지게 되면서부터다. 글로 먹고 살게 되면서부터 글을 쓰는 시간이 사라지게 되었다니 고약한 아이러니다. 모처럼 새벽에 일어나 그동안 벼르던 몹시 논쟁적인 글을 써보려고 커피도 내리고 마음을 가다듬었으나... 현재 7시 20분까지 한 자도 쓰지 못하고 결국 이 글을 쓰고 있다. 공부를 좀 더 하고 써야겠다는 생각에 글을 쓰지 않았지만, 실은 에너지가 부족한 것 같다. 하는 일도 별로 없이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에너지는 점점 고갈되어 간다. 아마도 내 에너지의..
'월간 소설들'이라는 가칭의 기획을 준비 중인데 아무래도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름 탓에 이것을 시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기획 자체는 이름에서 풍겨지는 바로 그것과 같다. 즉, 매 달마다 단편 소설 한 편씩을 발표하는 기획이다. 발표 지면은 일단 이곳과 브런치가 될 예정이다. 하지만 어쩐지 저 이름으로는 역시 아류에 지나지 않을 듯해 고민이다. 2009년 즈음에 나는 매일매일 소설을 쓰는 삶을 시작했고, 파주자유학교 교단에서 완전히 떠나게 된 2014년까지 5년 동안 그 삶을 유지했다. 2015년에 드문드문 유지하던 것이, 2016년에는 완전히 망가졌고, 2017년에는 회복되지 않았다. 2015년부터 매일 쓰기가 멈춰진 것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자면 여러가지가 있지만, 역시 가장 큰..
내게, 글을 쓰던 삶과 글을 쓰지 않는 삶이 이렇게까지 큰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글을 쓰는 일은 내게 무척 즐거운 일이었지만 '삶의 기쁨'이란 주제로 연말 시상식을 한다면 대상감은 아니었다. 굳이 상을 부여한다면 공로상 정도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평소 내 잠재 의견이었다. 인생 전체를 돌아봤을 때 내게 가장 일상적 기쁨을 부여해준 것은 '노래'라고 여겼다. 어느날 내가 큰 범죄를 저질러 503호 같은 독방에 갇힌 뒤 하루에 8시간씩 노래만 부르라는 판결이 난다면, 분명 나는 법정을 나서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8시간씩 글을 쓰라고 한다면 항고심을 위해 최선을 다해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래서 종종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