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계획 같은 것을 세우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니 그런 계획이 있을리 만무하다. 애초에 신년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자연의 관점에서 2017년 12월 31일과 2018년 1월 1일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사람의 나이란 것도 저마다 다른 노화의 속도를 억지로 달력에 맞춰 분절하여 나눠놓은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람이란 사람이 만들어낸 사회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이기에 완전히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살기는 어렵다. 요즘 부쩍 "늙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2-3년 전에는 분명히 농담이었는데, 농담에 농담을 더하다보니 이제 진담의 색채가 점점 진해지고 있다. 엊그제 트위터에서 우연히 서른 뒤에 숫자가 'ㅅ' 받침으로 끝나면 서른 중반, 'ㅂ' 으로 끝나면 서른 후반이라는..
이 글은 홈페이지를 다시 심플하게 바꾼 후의 첫 글이자,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주한 뒤의 첫 글이다. 인천에 얻은 집은 외벽이 노란 색으로 칠해져 있어 새로 낸 책도 기념할 겸 '오리빌라'라고 부르기로 했다. 오리빌라에서 지낸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일상은 아직 어수선하다. 서울 연남동 생활의 감각은 아직 채 사라지지 않았고, 오리빌라는 이 방 저 방 동시에 인테리어를 진행 중이어서 보기에도 어딘가 불안정하다. 덕분에 나는 그곳에도 이곳에도 있지 못하는 사람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마치 내 필명처럼 구름 같은 신세다. 인생은 또 어떠한가. 한 줌의 재산은 허망하게 사라져버렸고, 다시 쌓을 방법은 묘연하다. 그래,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라고 호기롭게 외치기에는 내 나이의 무게가 이제 만만치 않아..
히스테리Hysterie가 극에 달하고 있다. 미스테리다. 미스터리mystery가 미스테리로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미스테리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미스터리를 푸는 일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을 일일 것 같지만, 구태여 그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정도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는 않는 일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미스테리 실종 사건에 대한 추적에 나서지 않는 것일 테지. 혹시 어쩌면 김이라는 사람이나 박이라는 사람이 그 작업에 이미 뛰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김과 박은 미스테리 실종사건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던 흑막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러니까 어째서 이런 상상까지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히스테리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이..
생명은 어쩌다가 지구에 출현했을까. 하나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구가 태양과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궤도에 우연히 위치했기 때문이다. 행성은 항성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끝없이 타오르는 별이 되고, 너무 멀어지면 모든 것이 얼어붙는 별이 되고 만다. 지구와 같은 조건 하에서 생명이 출현할 수 있다면, 다른 은하계 속에서도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어떤 행성이 항성에 대하여 지구와 같은 궤도에 있을 때 그 별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태양에 대하여 지구의 위치와 같은 균형 잡힌 궤도를 이름하여 '골디락스 궤도'라고 한다. 태양은 지구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해주는데, 그렇다면 지구는 태양에 대하여 무엇을 제공해주는 것일까. 우주의 법칙 중 하나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따르자면 반드시 지구..
"아사꼬는 스위트피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스위트피는 아사꼬 같은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을 떠올리면 자연히 '인연'과 '아사꼬', 그리고 '스위트피'가 연달아 온다. 옛 인연을 떠올리고, 어느 봄날의 아사꼬를 잠시 불러 만나고 나면, 마지막은 스위트피의 차례다. 스위트피를 만지려고 손을 내밀면 또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 씨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의 음악이 생각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은 '섬'이었다. 비록, 작사와 작곡은 재주소년이 한 것이지만 첫 가창부터 스위트피에게 맡겨진 곡이었기에, 내게는 여전히 스위트피의 곡으로 남아 있다. 피천득 선생과 아사꼬, 그리고 스위트피와 섬이 나란히 마음 속에서 일렬로 배열이 되는 날이 있다. ..
커피는 한밤에 마시는 것이 맛있다 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정확한 통계 수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엊그제 내렸던 커피가 정말로 맛있었던가 하고 떠올려보면 어쩐지 불확실해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도 본래 '한밤의 커피'라고 하려다가, '커피는 한밤중'으로 전격 교체되었다. 아시다시피 커피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커피를 한밤중에 마시고도 아무렇지 않게 잘 수 있었던 연령대가 정확히 언제까지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서른셋 무렵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아니다. 어쩌면 그 시절에는 대안학교 교사회의를 마치고 집에 새벽에 들어와 커피를 내릴 새도 없이 곯아떨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까페 지점을 맡아 커피드리퍼로 온종일을 살았던 서른넷..
오래 기다렸던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렸다. 되돌아보면 2012년 12월부터 내 마음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이 세상의 실질적인 변혁이었다. 줄곧 내 내면으로 향해 있던 에너지가 드물게 외부의 세상으로 강하게 뻗어나갔던 시기였다. 어쩌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온전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바라던 세상의 실질적인 변화는 이제 막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밖으로 향하던 에너지를 불러모아서 다시 내 삶과 내면으로 향하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세월은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간다. 30대의 문턱을 어제 갓 넘었던 것 같은데, 어느 새 나를 '청년'이라고 지칭하는 게 맞을지 주저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손에 쥔 것 중에는 그닥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만한..
삶의 리듬이라고 쓸까하다가 '생生'의 리듬이라고 쓴다. 생에는 리듬이 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저마다 어울리는 생의 리듬이 있다. 어떤 생의 리듬은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것 같고, 또 다른 생의 리듬은 사랑을 기다리며 떨어지는 꽃잎을 세는 것과 같다. 내게 어울리는 생의 리듬은 생후 오개월 정도 된 오리가 마음을 굳게 먹고 태평양을 건너가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다.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마치 딱따구리처럼 살았다. 사실 지난 몇 년이라고 할 것도 없다. 생의 대부분을 어울리지 않는 리듬에 맞춰 산 것만 같다. 어느 한적한 초여름에 그늘이 진 벤치에 앉아, 소리 없이 호수에 떨어진 나뭇잎이 파문을 그리는 장면을 천천히 바라보는 것과 같은 리듬으로 살아가고 싶다. 아마도 그러자면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