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인한 직장 휴업에 따라 자택 칩거에 들어간 지 5일이 지났다. 칩거 후 지금까지 총 지출 8,000원으로 무난한 선방을 기록하고 있다. 20대 시절 나는 한 달 생활비 3-4만 원으로 살아본 적도 많았다. 내 생존비법(?)은 쌀과 콩나물, 시금치, 그리고 김치다. 비교적 저렴한 이 네 가지 식료품만 구비해 두면 공익광고와 달리 수자원이 풍부한 우리나라에서 굶어 죽을 경우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잔뜩 만들어 놓은 콩나물과 시금치 반찬은 아직 1일을 더 버틸 수 있을 만큼 남아 있으니 '오늘 하루도 무사히'다. 그래도 전생에 동네 고양이 몇 마리 정도는 구했던 것인지, 삶의 고비 때마다 은인들이 출현하여 내 생명줄을 연장해주고 있다. 출간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될 뻔했으나, 투자금을 지원해주신..
코로나 녀석 탓에 거절할 수 없는 휴가를 제안 받았다. 무려 2주나 쉬게 되었다. 평소라면 이게 무슨 신의 은총이냐며 경축 커피라도 내렸을 테지만 대단한 문제가 있다. 바로, '무급' 휴가라는 문제다. 산술적으로 다음 달에는 월급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예고다. 덕분에 출간 준비를 마치고 입금만 남겨두고 있었던 의 발간은 3월이나 최악의 경우 4월까지도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아무래도 출간 비용을 다음 달 월세로 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어제는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해 마음껏 폐인으로 지냈다. - 하지만 장기 칩거를 위한 반찬과 국도 만들고, 청소도 하고, 홍대에 가서 지난 주말 잘못 구매한 물품을 교환해오고, 지나가는 비를 맞으며 산책도 했다. 나는 왜..
눈이 내리고 있다. 구름정원으로 이사 온 후 생생하게 목격하는 첫 눈이다. 양희은 님의 노래 '눈이 내리는데'를 좋아한다. 눈이 내리는데 산에도 들에도 내리는데 모두가 세상이 새하얀데 나는 걸었네 임과 둘이서 밤이 새도록 하염없이 하염없이 새벽부터 나리기 시작한 눈은 차곡차곡 거리와 산을 하얗게 덮어가고 있다. 사랑한 후의 마음은 눈으로 덮여진 세상과 같다. 다음 날 눈이 그치고 볕이 들면, 눈은 서서히 녹고 말겠지만 오래도록 켜켜이 쌓인 산봉우리의 눈은 봄이 오지 않는 한 좀처럼 녹지 않는다. 이사 온 것을 후회한 낮과 밤들이 많았다. 그러나 오늘 하염없이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거실 소파에 기대어 바라보며 문득 떠올렸다. '나 제법 근사하게 잘 살고 있잖아?' 이번 생은 망친 것 같다고, 더 이상 애쓰..
"목마른 이가 우물을 찾는다." 라는 표현은 얼마나 낡은 표현인가. '우물'이라는 사물이 인간의 곁에 있었던 시대는 이미 20세기의 전반부에 끝나버렸고, 적어도 인류의 절반 이상은 우물을 찾아나서야 할 만큼 목이 마를 일도 없다. 그럼에도 삶과 아주 멀어져버린 이 표현은 여전히 살아남아 기어이 무명 문필가의 제목으로 등장하고야 말았다. 굳이 이런 것을 준엄하게 꾸짖으려고 시작한 글은 아니다. 그저 연초에 트위터에 복귀해 틈틈이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더니, 역시나 에세이를 쓸 욕망이 적어지더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적당히 목이 말라야 세상에 없는 우물이라도 찾아나서게 되는 것이 인간이지 싶다. 그래도 반년 가까이 휴식을 한 덕에 좀 서먹하기도 하여 예전에 비해서는 트윗량이 크게 줄었다고 자부(?)한..
플랜 A의 삶은 20대에 천재 작가가 나타났다는 찬사를 받으며 혜성 같이 문학계에 등장하는 것이었다. 준수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는 한편, 싱송라로도 데뷔하여 유희열의 스케치북 무대에도 올라보는 게 나의 꿈이었다. 또 운명의 연인과 20대에 일찍 결혼하여 함께 서로와 세상을 밝히는 동반자로 살아가겠다는 게 중딩 시절부터 이상적으로 그리던 플랜 A의 미래였다. 드라마 에 등장했던 GOP 위에서 20대의 끝을 맞이했으나 내 삶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삶을 드라마로 만들기에 20대의 나는 너무 어리석었다. 30대에도 플랜 A로의 희망고문은 이어졌다. 조금 늦어졌을 뿐 플랜 A의 삶은 언제라도 다시 시작되리라고 믿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아버지가 어딘가에서 봤다는 점괘를 무의식 속에서 붙잡고 있기도 했다. 점괘에..
"멀고, 느린, 구름이란 건 어떻게 생긴 구름인가요?" 멀고느린구름이란 이름을 십수 년간 써왔지만 그런 질문은 처음이었다. 글쎄... 사실 그렇게까지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본 적은 없었기에 나는 그날 처음 멀고느린구름의 모습을 상상했다. 노을 지는 저녁의 새털구름, 봄바람 속에 떠가는 양떼구름, 태풍이 지난 후의 뭉게구름, 높은 가을 하늘 속의 실구름... 멀고느린구름은 그 모두이면서 동시에 어느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것이 가득하지만 나는 나 자신만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이래, 나는 이렇게 해야 해, 나는 이걸 원해. 별 망설임 없이 나를 주장해왔다. 허나 지나고 보면 모두가 교만에 불과했다. 나는 자화상은 잘 그리는지 몰라도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방법은 ..
만취해 인사불성이 된 사람도 어떻게든 자신의 집은 찾아간다. 이른바 귀소본능이다. 인테리어를 하는 데도 귀소본능이 있을 줄은 몰랐다. 5년 전 일터였던 '좋은커피' 매장을 내 버전으로 복원해보겠다며 어제 주방 벽 한 켠을 페인팅했는데... 완성하고 보니 '좋은커피'가 아니라, 연남동 집의 주방에 가깝다. 연남동 집의 주방은 셀프 조색을 통해 만든 색이었는데, 의식하지 못하고 새로 주문한 페인트 색깔이 딱 그 색이다. 나도 모르게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공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다. 아뿔싸- 하면서도 아득하게 밀려드는 추억의 파도를 멍하니 앉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밀물은 심야를 훌쩍 지나도록 썰물이 되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들었는데, 아침형 인간의 습성도 고쳐지지 앉아 또 ..
몇 주 전 주방의 유리창을 고방유리 무늬로 바꿨다. 직사각형 모양 두 개를 이어놓은 창에서 빛이 묘하게 굴절되며 주방 곳곳으로 은은하게 번진다. 덕분에 이사 온 후 한 번도 일상의 중심 공간이 되지 못했던 주방이 요즘 내게 사랑 받기 시작했다. 집필실이 추운 탓에 간단한 에세이는 주방에서 쓰고 있다. (지금 바로 이 글도) 내가 인테리어 일을 좋아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이런 변화 때문이다. 아주 작은 변화 하나로 하루의 빛이 마음의 표정이 바뀌곤 한다. 작은 유리창에 고방무늬 유리시트지를 부착하는 일에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 한 시간이 이후의 여러 스물네 시간을 바꾸고 있다. 처음 이사 오기 전의 구름정원의 벽은 어딘가 누추해보이는 아이보리색으로 가득해 어쩐지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