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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월간 소설들

멀고느린구름 2018. 1. 26. 09:40


'월간 소설들'이라는 가칭의 기획을 준비 중인데 아무래도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름 탓에 이것을 시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기획 자체는 이름에서 풍겨지는 바로 그것과 같다. 즉, 매 달마다 단편 소설 한 편씩을 발표하는 기획이다. 발표 지면은 일단 이곳과 브런치가 될 예정이다. 하지만 어쩐지 저 이름으로는 역시 아류에 지나지 않을 듯해 고민이다. 


2009년 즈음에 나는 매일매일 소설을 쓰는 삶을 시작했고, 파주자유학교 교단에서 완전히 떠나게 된 2014년까지 5년 동안 그 삶을 유지했다. 2015년에 드문드문 유지하던 것이, 2016년에는 완전히 망가졌고, 2017년에는 회복되지 않았다. 2015년부터 매일 쓰기가 멈춰진 것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자면 여러가지가 있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어디에도 발표를 하지 못하게 된 까닭이 아닐까 싶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아마도 내 창작 인생에서 가장 많은 단편들을 끊없이 양산했던 그 시기에 쓰여진 어떠한 소설도 이른 바 문단에 데뷔할 수 있는 응모작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웹상에 공개적으로 발표된 소설은 애초에 심사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2015년부터는 비공개로 소설을 썼고, 완성된 작품들을 몇 차례 공모전에 내놓았으나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자 점차 소설 쓰기 자체가 내게 즐겁지 않은 일이 되어갔던 것 같다. 아무도 읽어주는 사람이 없고, 오로지 심사위원들에게 보일 요량으로 쓴 작품들이 번번이 무시를 당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유쾌하지 않은 글쓰기를 언제까지 지속할 수는 없다. 그래서 차라리 2009년의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꾸준한 작품 쓰기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냉정히 판단할 때 심사위원의 구미에 맞아서 우연히 등단이라는 형식적 절차를 통과한다고 해서 갑자기 내가 쓴 책이 마구 팔려나가는 기적은 쉽게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힐링로드와 오리의 여행이 팔리는 속도를 보아 하니 - _ -;) 어차피 팔리지 않을 책이라면 내가 제작하나 그들이 제작하나 마찬가지 아닐까. '월간 소설들'이라는 기획을 진행하면 일년에 두 권 정도의 단편집을 직접 발간할 수 있을 것이다. - 게다가 오히려 현재 브런치의 독자들이 미래의 오프라인 독자보다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 지금의 내겐 그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여는 게 더 알맞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 구식의 목소리가 이의를 제기한다. 그래도 소설가로 인정 받으려면 등단을 해야 하지 않겠어?라고. 그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에서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도 시장과 평단에 두루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 소설가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21세기에도 이 틀이 유효하다는 것에 한심함을 느끼면서도, 그 한심함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에 자괴감이 쌓인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청춘의 시기를 이미 많이 지나쳐버린 내게 한 번의 선택은 몹시 귀중하다. 파주자유학교 중등 과정 교사로 있던 시절,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한 백일장의 캐치 프레이즈는 '이제는 써야 한다'였다. 내가 만든 문구다. 


이제는 써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쓰는 삶'이다. 소설가라는 증표를 따는 일보다 소설가로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가치 있다. 쓰는 삶을 잃으면 증표 같은 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문 밖에 있는 자의 넋두리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러니 부디 '월간 소설들' 말고 좀 더 그럴듯한 이름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2018. 1. 26.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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