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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마음과 몸

멀고느린구름 2018. 11. 8. 08:27

20대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내게 감자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감자 성분이 0.1%라도 들어간 음식을 먹고 나면 어김 없이 편두통이 찾아온다. 30대 하고도 중반이 지나서야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20대 내내 도올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늘 마음과 몸이 서로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란 것을 하품이 날 정도로 들어왔지만, 어리석게도 진정으로 체화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편두통은 20대 시절의 나와 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짧게는 한 주에 1-2회, 길게는 4-5회 정도 편두통이 이어졌다. 편두통은 늘 나를 날카로운 상태로 만들었고, 편두통이 심한 날에는 늘 죽음의 충동 앞에 서곤 했었다.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것 같은"이라는 흔한 표현 속 고통은 내게 차라리 편안한 상태였다. 나의 편두통은 굳이 언어화하자면 살점을 하나 하나 뜯어내는 것 같은, 혹은 뇌 속에 누군가 손을 집어 넣어 뇌세포를 분해하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그러니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것 정도는 차라리 반가웠다. 


그런 고통을 늘 달고 살다보니 신경질을 내고, 입밖으로 내지 말아야 할 말들을 내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가끔씩 보는 사람들이야 두통이 없을 때를 골라 만났으니 그럴 일이 없었지만, 자주 보는 이는 종종 나의 그런 느닷없는 짜증과 가시돋힌 말들을 겪어야만 했다. 


게다가 (이 또한 훗날에야 깨닫게 된 것이지만) 나는 상대의 감정에 대한 공감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잘 만들어진 작품을 감상하거나, 혼자 사색을 할 때면 몹시 감성적인 면모를 보이는 내가 공감력이 없다는 사실은 나도 무척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냉정히 관찰한 끝에, 나는 나 외의 사람이 바로 눈 앞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화를 내거나, 크게 기뻐하거나 하는 등등의 감정의 요동을 보일 때도 그다지 동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장 극렬한 감정이 상대에게 터져나올 때도 내 마음 속에서는 항상 다음과 같은 말이 반복될 뿐이었다. "왜 저러는 걸까? 왜 저러는 걸까..." 폭언과 폭행이 빈번하던 가정에서 자라고, 오래 왕따를 겪은 나는, 타인의 감정을 나와 완전히 격리시킴으로써 나를 보호해온 것이었다. 나는 일종의 약한 소시오패스다. 


- 청소년 시절 나를 길러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울지 못했다. 오랜 뒤에 할머니와의 일을 글로 정리하면서야 눈물이 터져나왔었다. - 


그 결과,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나의 정황적 판단에 의해서만 움직이게 되었다. 그러한 개인적 습성은 편두통과 만나면서 여러가지 무한한 고통을 양산하게 되었다. 두통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고, 가까운 연인의 눈물이나 분노 같은 것을 상식적인 수준으로도 조응할 수 없게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무척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함부로 저질렀다. 


20대의 나는 가난했고, 가난한 청년의 주식은 라면이었으며, 하필 라면 속에는 감자가 들어 있었다. 나는 스스로 편두통을 끝없이 불러오고 있었던 셈이었다. 30대가 되어 우연한 계기로 꼬박꼬박 밥을 먹게 되어, 라면을 멀리하자 거짓말처럼 두통이 찾아오는 빈도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어떤 때는 겨우 한 달에 두세 번이었다. 화를 낼 일도, 짜증낼 일도 없었다. 마음의 평화도 함께 찾아왔다. 너무나 행복했다. '행복'이란 게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것을 처음 느끼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라면과 짜장면을 끊었고, 음식을 먹을 때 감자가 들었는지를 늘 확인한다.


마음은 몸을, 몸은 마음을 지배한다.


편두통에 휩싸여 지내던 20대 시절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다고 할 수 있으나... 상대의 감정을 상식적으로 재빨리 판단하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부분은 여전히 내게는 '과제'다. 공감력이 좋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 나는 무척이나 어렵고 어떤 때는 부담스럽다. 차라리 혼자인 편이 좋다고 여기는 순간이 많다. 해석할 수 없는 감정들이 두렵다. 편두통이 생긴 날에는 실수를 할까 싶어서 가급적 사람을 피한다. 피할 수 없을 때는 연기력을 발휘한다. 두통을 견디며 고통이 없는 듯 연기를 하는 동시에, 상식의 선을 지키려면 서너 배의 에너지가 든다.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되었는지 몹시 피곤한 생이다. 아직 두통이 가시지 않았으므로 마무리는 이렇게 대충. 


2018. 11. 8.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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