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에 쓰는 글은 아무 거라도 이미지를 붙여두지 않으면 거의 읽히지 않는다. 덕분에 요즘에 내가 이곳에 쓰는 시시껄렁한 에세이들도 거의 읽히지 않고 있다. 조회수가 10-30 사이다. 일부러 그러는 중이다. 꽤 오랜 세월 읽혀지기 위한 글을 연구해왔다.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고, 검색어에 잡힐 법한 단어들을 제목에 넣고, 화제가 되는 쟁점에 뛰어들어 글을 쓰곤 했었다. 글을 웹식으로 치장하는 일에 이제 제법 능통해졌다. 그러다 작년 무렵부터 글이 글 외의 요소로 읽히는 것에 좀 정이 떨어졌다. 잘 치장한 글이 역시 잘 읽히는 것을 보면 그다지 기쁘지 않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온갖 사람들이 글이란 이렇게 써야 한다고 떠드는 것에도 질려버렸다. 글이란, '잘 읽히면' 그만인 것일까. 잘 읽히는 글을 쓰면 글을 ..
음악감상실에는 언제나 나 한 사람 뿐이었다. 대학생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떠올려 보면 그 음악감상실은 지나치게 성실하게 운영되었다. 언젠가의 추석이었다. 모두가 고향을 향해 떠난 뒤에 난 언제나처럼 혼자 자취방에 반쯤 누워서 왁자지껄해진 주인집 가족들의 눈을 피해 밖으로 나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오래된 단층 구옥의 방 두 개를 자취방으로 내주고 있는 곳이어서 외출을 하려면 반드시 거실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주인 할머니는 명절 아침이 되면 늘 내 방을 두드려 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거실에 잔치상을 차렸다. 특별히 갈 곳이 없어 명절에도 방바닥에 붙어 있는 것을 구태여 알리고 싶지 않아, 늘 인기척을 내지 않았었다. (그러다 한 번은 내 방문 쪽으로 차례상이 차려진 일도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
빗소리에 잠을 깼다. 다시 잠들려고 한 시간이나 애를 썼으나 온갖 상념들만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기 시작하는 통에 그냥 이불을 걷었다. 다락방에 누워 있으면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마치 진군하는 군인들의 군화 소리처럼 들린다. 이렇게 쓰면 전혀 낭만적이지 않지만, 남들보다 긴 시간을 군에서 보낸 내게는 미약한 서정의 풍경이 떠오른다. 새 보금자리인 '구름정원'의 다락방은 아름답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내가 아름답게 만들었다. 지난 주말과 지지난 주말을 온통 투자해서 몹시 단정한 공간으로 변모시켜놓았다. 다락방에 대한 애정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나는 다락방에서 첫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진정한 의미의 독서 또한 다락방에서 비로소 시작되었을 것이다. 작은 나트륨 전구 하나로 흐린 귤빛 불..
지금이 여름의 끝인지 가을의 처음인지 알 수 없다. 한낮의 햇볕은 분명 뜨거웠는데, 작은 전등 불만 환한 저녁의 집필실 밖으론 귀뚜라미가 운다. 8월까지는 여름이라고 해주는 것이 떠나는 여름에 대한 예의인 듯하여 편의상 지금을 여름의 끝으로 정한다. 매일 한 잔 정도 마시던 커피가 하루 두 잔으로 늘었다. 아침에 한 잔, 저녁에 한 잔이다. 아침에는 글을 쓰기 위한 제례의 뜻이, 저녁에는 일과를 끝낸 고단함을 씻는 세례의 뜻이 두 잔의 커피에 담겨 있다. 어찌 보면 커피로 열고 커피로 닫는 삶이다. 저녁의 커피가 나도 모르게 추가 된 시기는 아마도 정기적으로 출근하는 일자리를 오랜만에 갖게 된 이후부터인 것 같다. 매일 두 개의 일을 하게 되니 두 잔의 커피를 마시게 된 셈이다. 풍랑을 만난 타이타닉호처..
화초의 영혼을 꺼트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개월이다. 화초라고 하는 생명체의 수명이 수십 년에 이른다는 사실을 도저히 현실적으로 증명해낼 수 없는 나는 수백 년 동안도 나무를 길러내는 지구에게 다만 경의를 표할 수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부터 풀과 꽃과 나무를 좋아했다. 봄과 여름이면 거리에 피어난 수많은 화초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넸고, 커다란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속에 안겨 잠드는 일을 사랑했다. 잎사귀들을 흔들며 부는 가을바람은 또 얼마나 눈물겨웠던가. 그렇게 초록을 사랑한 나이기에 화초를 기르는 마법도 당연히 내게 주어져 있을 거라 여겼다. 스무살에 기숙사 2층 침대에서 길렀던 테이블 야자는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첫 자취를 기념하며 야심차게 입양했던 고무나무, 페퍼민트, 대나무, 산..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때로 시간은 호수처럼 고여 있다. 지난 밤 크레이터를 드러내며 은은한 빛을 발하던 달을 멍하니 바라보던 때에도, 수 년 만에 북두칠성을 발견한 밤에도 시간은 호수와 같았다. 그런 때의 시간은 손톱 끝으로 건드리면 잔잔한 파문이 일어날 것처럼 액체화된다. 우두커니 서 있는 시간은 청와대 정문을 지키고 있는 무심한 표정의 경호원 같기도 하다. 초능력자가 나오는 영화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완전히 멈춰버리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흑백으로 변해버리지도 않는다. 바다인가? 라고 생각될 정도의 거대한 호수의 아득한 저편에서 한 무리의 흰 두루미들이 천천히 날아오르고, 고요히 내려앉는 광경을 떠올리는 편이 더 알맞을 것 같다. 호수의 시간은 멈춰 있는 ..
방금 내린 케냐AA 한 잔과 함께 처음 집필실 책상에 앉았다. 고개를 오른 쪽으로 살짝 돌리면 창으로 길죽한 직사각형의 하늘이 보이는 곳이다. 아직은 책상 하나와 몇 개의 악기들을 늘어놓았을 뿐, 인테리어를 시작하지 않았다. 벽지와 벽지 사이의 틈이 갈라진 곳도 있고, 진득한 테이프 자국이 남은 곳도 보인다. 이런 것 정도는 보수를 해달라고 요청한 뒤 이사를 했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지난 겨울 별 생각 없이 이 마을을 찾았다. '다방'이라고 하는 부동산 매물 찾기 앱을 통해 본 다락방이 있는 작은 집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특별히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주말에 심심하니 남의 집이라도 보고 다니자는 심산이었다. 마을에 도착해 앱에 있는 연락처로 연락을 했으나 오늘은 보기 어렵다는 답을 받았다. 어차..
봄이 지나가고 있다. 녹음은 짙어지고, 어린 새들은 자란다. 아침이면 어디선가 날아와 지저귀는 작은 새들의 목청이 어제보다 커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자라나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느끼지 못했다. 그냥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 있었다는 쪽에 가깝다. 격동의 사춘기라고 해도 워크맨과 함께 정처없이 거리를 걷고, 농구공으로 수 천 번의 포물선을 그리고, 가끔 숲 속에서 하늘에 펼쳐진 구름을 바라본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20대에 대해서도 그런 식의 이야기를 썼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은 듯한데, 어느새 30대에 대해서도 그런 이야기를 써야 할 때가 되었음을 어제서야 알았다. 무심코 계절을 흘려보내고 있었는데, 오랜 친구에게서 30대의 마지막 여름을 잘 보내자는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다. 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