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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질 때면 아름다운 것들의 죽음을 생각한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그 아름다움에 기대어, 아름다움을 힘으로, 아름다움을 숨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끝내 스러지고 마는가. 해질 무렵의 빛은 마치 골든에이지의 빛처럼 찬란하게 빛나다가 조금조금 연해진다. 이내 어슴푸레한 어둠에 먹히고 만다. 불을 가진 인간들은 밤이 와도 거짓 하루를 연명하지만, 사실 낮짐승의 시간은 노을과 함께 끝나는 것이다. 나의 해질무렵은 언제 였을까. 지나왔을까 아직 오지 않았을까. 이 글을 쓰는 바로 지금일까. 한 주 전 받아온 꽃다발이 벌써 시들었다. 여름의 장미는 언제까지 피어 있을까. 이 물음은 구글에게 묻는 것이 아니다. 21세기의 우리들에게는 몇 잔의 사랑이 주어졌을까. 나는 내게 주어진 사랑 중에 몇 잔을 들이켰을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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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어떤 날들이 내게 있었다 그날 저녁은 날이 흐렸다. 아니, 흐렸다기보다는 어떤 흔적을 품고 있는 날씨였다. 내일 비가 오리라는 흔적, 혹은 어제 비가 내렸다는 흔적 같은 것이 저녁 하늘의 얼굴에 담겨 있었다. 우리는 우연히 학교 후문에서 마주쳤거나, 함께 노래방에 가기로 하고 만났을 것이다. 푸른 멍자국 같은 먹구름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그 사이로 희미한 노을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20대 중반의 우리는 그 노을빛을 머금은 채, 아주 잠깐 인생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산다는 건 뭘까. 글쎄. 계속 이렇게 ‘글쎄’를 반복해가는 것 아닐까. - 새벽이었던가, 이른 아침이었던가. 아무튼 나는 광기로 가득 차 어스름빛을 발로 걷어차며 헤어진 연인의 집으로 향했다. 불이 켜지지 않는 캄캄한 계단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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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이 지나고 영화 가 개봉하던 즈음 나는 그녀와 다시 한 자리에 마주 앉았다. 어둑한 조명 아래서 스물한 살의 우리 둘은 조심스레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그녀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노라고 전했고,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흐의 피아노 소곡이 먼 빗방울처럼 작게 들려오고 있었다. 창이 하나도 없어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지하의 커피하우스, 입구쪽 좌석에 앉은 우리는, 아니 그녀와 나는 까만 밤을 닮은 커피를 조금씩 입에 머금었다. 사람들이 아직 원두커피를 ‘블랙커피’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앞으로도 종종 연락하자.” 내 인사를 끝으로 그녀는 풋풋한 사랑이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갔고, 나는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커피하우스의 주방으로 향했다. 아르바이트 시작 시간은 1시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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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동안 내가 머물고 있는 집을 사랑하지 않았다. 불 꺼진 거실을 방치하고, 집필실 문을 열지 않았고, 정원에 나가 별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침실은 옷장에서 옷을 꺼내기 위해 잠시 들를 수 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구름정원’이라고 이름 붙이고 오래 사랑했던 이곳을 내가 싫어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명백히 이 집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구름정원은 말하자면 내가 오래 꿈꿔오던 신혼집이었다. 멀리 산 봉우리가 있어 계절의 흐름을 느낄 수 있고, 작은 정원이 있어 사랑하는 이와 함께 나가 바람을 쏘이고, 햇살을 받을 수 있는 집. 비가 오면 빗소리가 눈에 보이는 음악이 되고, 책으로 가득한 거실에 앉아 고단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장소. 구름정원을 처음 봤을 때는 그저 건물의 옥상과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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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씽이를 잃어버렸다. 여덟 살 무렵의 일로 기억한다. 철로 만들어진 빨간색 몸체에 까만색 손잡이와 바퀴가 사랑스럽던 씽씽이였다. 어린 나에게는 바로 그 씽씽이가 초원을 내달리는 적토마와 같았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곧장 씽씽이에 올라 좁은 골목길 사이를 누볐다. 씽씽- 바람을 가르던 느낌과 함께 내 곁을 스쳐지나던 20세기의 낮은 시멘트 담벼락과 높이 보이던 도시한옥의 까만 기와들이 생생하다. 내가 살던 동네 가까이에는 어린이대공원이 있었다. 씽씽이를 타고 어린이대공원 입구까지 달려갔다가 돌아오면 저녁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고개를 내밀어 현관에 세워둔 씽씽이가 무사한지 확인하곤 했다. 꿈에서는 당연히 빨간 씽씽이에게 하늘을 나는 기능이 추가되어 있어서, 나는 씽씽이와 함께 중국도 가고, 미국도 갔다..
어울리지 않는 모든 유위와 단절하기로 마음 먹었다. 새해 들어 과거의 방식대로 살고 싶지 않아 선택했던 여러가지 일들은 공연한 사건들을 일으키고, 또 다른 번민의 씨앗이 되었을 뿐이었다. 마음의 뿌리는 그대로 둔 채로 가지가 뻗어나가는 모양만 바꾸려고 한 결과다. 그리움을 그리움대로, 외로움을 외로움대로, 어려움을 어려움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것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모면해보고자 애쓰는 동안 흰머리칼만 수십가닥 더 늘어났다. 유행을 체험해보자는 핑계로 시작했던 데이팅앱에서의 관계맺음은 한 차례 정도를 제외하고는 운명론자인 나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대화의 패턴마저 일정해져, 디지털 너머의 삶이 아닌 그저 앱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목표한 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쓸쓸함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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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농부에게 숲을 좋아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가다보면 늘 갈피마다 숲 속에 앉아 있는 나를 만난다. 옅은 물기를 머금은 흙 위에 앉아 무릎을 세운 뒤, 거기에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면 슬픔도 불안도 잠잠해지고는 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초록의 잎새들 너머의 푸른 대양에 거대한 구름의 배들이 지났다. 그럴 때면 나는 내 작은 몸에서 빠져나와 영혼의 배를 타고, 마음으로만 갈 수 있는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어린 시절 나에게 책을 읽는 것은 지도를 펼치는 것과 같았다. 얼마 전 읽은 책들은 항해의 지도가 되어, 숲 속의 나를 보다 선명한 세상으로 이끌어주었던 것이다. 지난 여름 서울 해방촌에 있는 독립서점 별책부록에서 안리타 작가의 이라는 아름다운 지도를 ..
까페에서 커피를 내리던 때를 종종 생각한다. 대학시절 나는 캠퍼스 밖에 있던 여행동아리의 부원이었는데, 동아리방 바로 오른 편 지하에 중세 유럽풍의 핸드드립 커피하우스가 있었다.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나는 그곳에서 2년 남짓 아르바이트를 하며 커피를 내렸다. 아침마다 캄캄한 계단을 내려가 커피하우스 보헤미안의 불을 밝히고, 클래식 음악을 선곡하고, 커피 한 잔을 내려 시음해보던 매일매일은 70 노인이 되어도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 30대 중반 무렵에도 1년 간 커피 내리는 일을 했다. 보헤미안 점장님의 제안으로 개운사 담벼락을 마주보고 있던 작은 카페 ‘좋은커피’의 관리를 맡게 된 것이었다. 좋은커피는 전적으로 내가 관리했던 카페였기에 더욱 애정이 컸다. 한 켠에 독립책방에서 골라온 독립서적들과 평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