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제주를 다녀온 게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네요. 새로 산 카메라로 처음 두근거리며 정경을 담았던 기억이 납니다. IOS 설정을 잘못 맞춰 놓고 계속 사진을 찍은 탓에 다들 어딘가 묘한 사진들이 되었습니다. 이건 또 이것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주의 바람은 언제나 사람을 끌어당기는 재주가 있습니다. 바람 속 어딘가에 감귤이라도 심어 놓은 탓일까요. 제주는 앞으로도 사람들의 사랑스런 기억들을 품으며 점점 더 아름답게 자라나겠지요. 비자림의 나무들처럼. -------------- 주 2014. 10월. 멀고느린구름. / 제주도 / Sony A7 / ContaxG 28mm, 45mm
백사 마을은 서울에 남아 있는 마을 중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 마을을 걷고 있다보니 저는 마치 제 어린 시절로 타입슬립을 해서 걷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제가 어릴 적 살던 달동네 마을이 꼭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허름하고 고단하지만 어딘가 생명력이 있고, 따스함이 깃들어 있는 풍경. 제가 콘탁스 G 렌즈를 사랑하게 된 것도 어쩌면 그런 풍경을 가장 잘 담아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2013. 10. 27. 멀고느린구름. 백사마을 / E-P1 / Contax G 28mm
아무런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서울역에 나갔다가 관광안내소에 꽂혀 있던 부클릿을 보고 무작정 올라탔던 순천행 열차. 막상 열차에서 떠올려 보니 순천은 인연이 있는 고장이다. 이제는 오래전의 기억이 되어버린 옛날을 회고하며 열차에서 작년에 써두었던 장편소설을 퇴고했다. 순천국제정원박람회장을 무더위 속에서 거닐며 순천(順天)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했다. 순천의 정원박람회장은 인간이 자연(天)을 거스른 거대한 결과물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신이 아닌 인간의 차원에서 자연을 지키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내게 주어진 하늘의 뜻은 무엇일까. 내 삶이 자연스러워진다면 어느 길을 따라가야 하는가. 하늘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기도, 어긋나기도 하는 그곳에서 인연의 조화와 어긋남에 대해서도 떠올렸다. 2013. 8. 8 ~ 9...
10년 전, 늦가을 무렵. 갑작스레 하던 일을 중단하고 혼자서 한 달 간 전국일주를 시작했다. 여수를 가기 전 길목으로 진주에 들렀었다. 그 시절의 진주는 좀 더 외롭고 단단했다. 10년만에 다시 찾은 진주는 조금 너그러워졌고, 깊어졌다고 느꼈다. 그렇게 달라진 것이 비단 진주만이 아니라, 바로 내 모습이라면 더 좋으련만. 강물에 떠내려가는 유등을 보며 생각했다. "비단 10월의 강물에 떠내려가는 것이 유등뿐이겠는가..." 순간 순간 참 많은 것들이 떠내려가고 있다. 아직, 사랑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의 오만일지도 모를 일이다. 2013. 10. 15. 멀고느린구름. E-P1 / Contax G1 28mm / 진주 남강, 진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