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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글을 쓰지 않는 삶

멀고느린구름 2018. 1. 14. 12:52

내게, 글을 쓰던 삶과 글을 쓰지 않는 삶이 이렇게까지 큰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글을 쓰는 일은 내게 무척 즐거운 일이었지만 '삶의 기쁨'이란 주제로 연말 시상식을 한다면 대상감은 아니었다. 굳이 상을 부여한다면 공로상 정도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평소 내 잠재 의견이었다. 인생 전체를 돌아봤을 때 내게 가장 일상적 기쁨을 부여해준 것은 '노래'라고 여겼다. 어느날 내가 큰 범죄를 저질러 503호 같은 독방에 갇힌 뒤 하루에 8시간씩 노래만 부르라는 판결이 난다면, 분명 나는 법정을 나서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8시간씩 글을 쓰라고 한다면 항고심을 위해 최선을 다해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래서 종종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곤 했다. 글쓰기를 멈춰버린 지난 해 여름 이후에도 노래는 줄곧 불렀다. 그러던 것이 최근 두 달 동안은 노래도 부르지 않고 있다. 노래도 글도 없는 삶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아이스바의 나무 막대기를 빨아먹고 있는 것 같은 시기다. 두 달 째 빨아먹고 있다 보니 대체 나는 어째서 이런 무의미한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싶어졌다. 의미를 찾아보려고 노래방에 갔는데 어째 노래 부르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놀랐다. 노래 부르기에 흥미를 잃은 벗을 보며, 어째서 인간은 저런 상태에 이르기도 하는가를 고민했었는데, 내가 그렇게 되고 보니 과연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뭔가를 알게 되어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가을 바람에 끄덕거리는 벼처럼 끄덕이는 것이다.


어쩌면 내게 노래는 삶의 '트랜지스터'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거의 언제나 굴곡이 많은 삶을 사는 내게 노래는 기쁨도 슬픔도 몇 배로 확장시켜주는 것. 요컨대 근원은 아니었던 거다. 


'노래 부르기'의 기쁨보다 먼저 내게 찾아온 것은 '글을 쓰는 삶'이었다. 1기의 나는 중학교 1학년 봄에 이미 사망했고, 글을 쓰면서부터 2기의 내가 태어난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2기를 살아가는 나의 '근원'인 셈이다. 그 근원이 지난 여름 이후 의식불명 상태가 되고 말았으니 2기의 내가 휘청거리는 건 의학적으로 합리적인 결과다. (전문의의 소견은 아니다.) 


근원의 의식불명 상태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2기의 나도 사망하고 말 것이다. 2기의 내가 끝나버리고 나면 3기의 내가 태어날까. 과연 무엇을 '생명력'으로 삼아서? 아마도 내가 삭발을 하고 암자로 들어가지 않는 한 3기의 나는 태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왠지 그럴 것 같다고 예견하지 말아 주시길) 그러므로 지금 2기의 내가 이 생의 마지막이다. 고로 살아보기 위해 나는 오늘 억지로 이 글을 썼다. 자, 박수- 


2018. 1. 14. 멀고느린구름.


추신 : 과연, '공로상'이란 것은 이렇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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