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에서 아침을 -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시공사 순수하고, 가볍고, 빛나는 세계에서 아침을 어린 시절, 토요일 밤은 항상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토요 명화극장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토요 명화극장에서는 2주 연속으로 '로마의 휴일'과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방영해주었다. 영화의 내용은 이제 가물가물해지고 말았지만 흑백 화면과 오래된 뉴욕의 거리를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던 오드리 햅번의 모습은 생생히 기억한다. 솔직해지기로 하자. 홀리 골라이틀리가 영미 문학사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주인공 중 하나인 줄도, 심지어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원작 소설을 둔 작품인지 전혀 몰랐다. 당연히 트루먼 커포티라는 작가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 적어도 중등 시..
남자의 자리 -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열린책들 저 멀리의 수평선을 바라보는 곳 이상하다. 1940년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한 여성 작가와 내가 어쩌면 이렇게 깊은 곳에서 서로 마주할 수 있을까. 벌써 작년의 일이다. 표지나 작가의 사진을 보고 책을 고르는 나의 습관을 알고 있던 친구가 집을 방문하며 내게 책 두 권을 선물로 주었다. 아니 에르노의 와 였다. 친구의 방문이 있었던 얼마 뒤 를 읽었다. 하지만 왠지 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어째서? 를 읽는 내내 어머니를 떠올렸다. 작가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는 다른 듯 유사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를 읽는 동안 나는 여러 번 상념에 젖어야 했다. 를 꺼려한 것은 아버지를 떠올리게 될까봐 우려가 된 탓이다. 우려는 빗나가지 않..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 - 시와 지음/책읽는수요일 서른의 한가운데를 들여다보다 내가 스무 살 무렵, 세상에는 이제서야 이메일이라는 것이 생겼고, 사람들은 앞다투어 다음 카페를 개설했었다. 그 무렵 나도 '별의 강 간이역'이라고 하는 나만의 공간을 웹상에 만들었다. 나의 친구들, 고교시절 출간된 소설 작품집 덕에 나를 알게 된 사람들, 그리고 우연히 간이역에 멈춰 선 사람들 30여명이 그곳의 회원들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주로 내게 일어나고 있는 청춘의 사건들에 대한 수필을 썼다. 그 중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는 글이다. 서점에서 시와의 라는 책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나는 자연스레 그 글을 떠올렸다. 나의 청소년 시절은 불행의 종합 백화점이었고 그 시절을 통과하면서 자연스럽게 ..
테러의 시 - 김사과 지음/민음사 불편한 이야기, 불편한 독서 처음 서점에서 '김사과'라는 이름을 접했을 때, 그 이름에 반했다. 얼마 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그녀가 배수아를 흠모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지목했을 때 또 한 번 호감을 느꼈다. 그로부터 1년 정도가 지나 그녀가 이 작품 를 낸 뒤 한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을 읽게 되었다. 한국 작가라는 범주에서 벗어난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젠가 꼭 이 작가의 작품은 읽어보아야겠다는 다짐을 갖게 했다. 그리고 다시 또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때의 그 소설 를 읽게 되었다. 나 를 먼저 읽는 것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김사과의 소설을 읽게 된다면 반드시 부터가 좋겠다고 생각해 왔기에 자연스레 이 책을 먼저 펼치게 ..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지음/마음산책 푸를 청에 봄 춘 이번 학기 동안 국어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자기만의 책을 짓게 했다. 그 중 한 학생이 이라는 이름의 소설집을 냈다. 그 속에 든 한 편의 소설 제목에 내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푸를 청에 봄 춘'. 익숙하게 보아온 문장이었지만 묘한 울림이 있었다. 한 번 마음에 인 파문은 쉬이 잦아들지 않고 오래오래 원을 그려 나가고 있다. 동네서점을 표방하는 홍대의 땡스북스에서 최근에서야 을 구입해 읽었다. 베스트셀러에 손을 가져가는 일은 만원 지하철에 오를까 말까 망설이게 되는 경우와 비슷하다. 그 지하철이야말로 나를 목적지에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데려다줄 것이 틀림 없을 경우에는 더욱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나는 대체로 만원 지하철에는 오르지 않는다. 조..
제트소년 마르스는 가능할까? - 컴퓨터나 기계가 인간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첫째가름. 들어가는 군말. 어렸을 적 즐겨보던 만화영화 중에 제트소년 마르스라는 것이 있었다. 붉은 망토를 펼치고 푸른 하늘을 나는 우리의 친구 제트소년 마르스던가? 아무튼 아톰의 먼 친척뻘 되는 그런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지구를 지키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국민학생(지금은 초등학생이지만) 시절에 나는 무려 전학을 6번이나 다녀서, 깊이 마음을 교류할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늘 곁에 있으면서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로봇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많이 하곤 했었다. 그런 로봇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한때 과학자가 되리라 꿈꾸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과학자와 로봇 사이에는 건너야할 많은..
사회적 구성주의 교육과 인디언 티칭 자기주도적 학습법과 더불어 핀란드 교육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바로 '사회적 구성주의' 교육이론이다. 러시아의 교육학자 비고츠키에 의해 주창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이 교육이론은 학습이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이 교육이론은 한 개인에게는 학습해야할 단계적인 지식이 있고, 개인이 특정한 지식을 갖춘 교수에게 레벨 1부터 9까지 순차적으로 학습해야 한다는 종래의 교육과정을 부정한다. 지식의 습득에는 근본적으로 단계가 없으며, 학습방법 또한 개별 교수에게 사사받는 방식보다는 공동체 속에서 서로 모르는 것을 문답해가며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보는 것이 '사회적 구성주의' 이론의 시각이다. 핀란드 교육시스템은 이 시각을 ..
핀란드의 모든 시민은 학생이다 - 핀란드 교육의 두 번째 대전제는 학습의 목표를 단기 간에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입시에 모든 학습의 목표가 맞추어져 있는 우리의 공교육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보다 적은 시간을 들여 보다 많은 지식을 암기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핀란드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우선, 핀란드에서 대학이란 순수학문을 보다 심화 있게 학습하려는 이들을 위한 고등 교육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처럼 대학이 취업 준비기관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취업을 위한 각종 사회적 교육기관을 별도로 마련해두고 있다. 따라서 취업을 목적으로는 하는 이들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취업교육기관으로 진학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