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슬픈 외국어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문학사상사 쓰지 않아도 그만일 이야기의 필요성 언제나 글을 쓰기 전에 느끼는 것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책 리뷰를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책 리뷰라는 것은 단순히 내가 읽은 책에서 받은 감명을 기록한다는 1차적인 의미도 있지만 이렇게 반 공개된 장소에서 '굳이' 특정한 책을 읽은 감상기를 남긴다는 것은 그 책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함의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책을 널리 알리려는 행위가 되고 말아서 사실 별 소용이 없는 짓이 되고 만다. 친절한 출판사 편집부로부터 쓰지 않아도 그만일 이야기따위는 그만 써도 좋습니다 라고 이메일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구태여 ..
러시안 소설 (2013)The Russian Novel 7.7감독신연식출연강신효, 경성환, 김인수, 이재혜, 이경미정보미스터리, 드라마 | 한국 | 140 분 | 2013-09-19 글쓴이 평점 단언컨데, 은 대단한 영화다. 이런 찬사에 이골이 난 나머지 믿지 않을 사람이 더 많겠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도 없다. 영화 에 대해 알게 된 때는 홍상수 감독의 근작 를 보러 시네큐브를 방문했을 때였다. 내가 소설을 쓰고 있는 탓에 역시 소설을 주제로 삼은 영화에 관심이 갔다. 부클릿 하나만을 달랑 들고 돌아왔다. 부클릿에 써있는 '클래식의 부활'이니 하는 문구들은 지나치게 식상하고 매력이 없어서 광고를 맡은 사람이 누구일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는 정도의 효과밖에 내지 못했다. 흥미를 끄는 것은 제목뿐이었다. 영화..
글을 쓰는 사람 내가 글을 쓰는 책상 한 켠 가장 잘 보이는 곳에는 글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하나는 황순원 선생님의 글이고, 다른 하나는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글이다. "자기 속에 최상의 독자를 키우는 것이 작가가 해야 할 의무의 하나다." 이 글은 황순원 선생님의 유일한 산문집 에 수록되 있는 글 중 한 조각이다. 글쓰기에 있어 내가 평생의 신조로 삼아 왔던 말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글은 다음과 같다. "작품은 작가를 뛰어넘지 못하면 재미가 없어집니다." 이 말은 하루키 씨가 가와이 하야오 라고 하는 심리학자와 대담하면서 언급한 것이다. 두 말은 다른 듯 닮아 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글을 써왔고, 나름의 성과도 내왔었기 때문에 내 주변에는 소위 '글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보..
타라스 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빈센트 반 고흐는 썼다. 1888년 6월의 일이다. 고흐의 시대에 사람이 살아서 별까지 이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살아서도 별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지도의 한 점으로 기차를 타고 가듯이 별의 한 점으로 갈 수는 없지만 가까운 달이라면 갈 수도 있다. 단, 몇 억 달러의 돈을 지불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고흐가 오늘날 태어났다고 해도 여전히 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죽음이 지름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조작이든 아니든 닐 암스트롱이 달에 닿은 이후 인류는 꾸준히 기술의 진보를 이룩하여 비로소 우주 왕복선이라는 것도 만들었고, 지구 밖에서 지구를 ..
내가 가진 네스티요나 EP 음반에는 요나 씨의 사인이 선명하게 쓰여져 있다. 쌈지 바람 라이브 콘서트장이 아직 건재하던 시절, 공연 현장에서 받아온 것이다. 처음 'cause you're my mom'을 듣고 받은 음악적 충격은 아직도 선명하다. 와, 이런 것도 만들 수 있구나. 이런 감성이 한국에서도 태어날 수 있구나 찬탄하며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들었다. 같은 EP 음반에 수록된 '이렇게'는 한동안 휴대폰 벨소리로 쓰기도 했다. 2008년 3월에 마지막으로 그녀의 모습을 공연장에서 보고, 나는 군에 입대해야 했다. 그것이 마직막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 군에서 2집 발매 소식을 듣고 일부러 휴가를 내서 나와 매장에서 씨디를 샀다. 이후 공연 소식을 수소문했지만 알 수 없었다. 요나를 제외..
범죄자는 범죄 현장에 반드시 다시 나타난다는 속설처럼, 이별한 사람들도 이별 현장에 반드시 나타난다. 이 문장이 성립하려면 따로 통계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통계청에서 일하는 직원이 아니다. 단, 언젠가 이런 조사에 흥미를 갖고 모험을 떠나려는 이를 위해 여기에 나의 예를 하나 들어둔다. 나로 말하자면 이별 현장에 반드시 나타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 물론, 나한테만 유명하다. - 최근에도 속절없이 이별 현장에 다녀간 일이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늘 북적이는 곳이다. 그곳에서 어떤 이성끼리, 혹은 동성끼리 이별을 한다고 한들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자주 만났고,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고, 차를 마시고, 저녁을 해결했으며, 종종 영화도 보았다. 나는 범..
마지막 4중주 (2013)A Late Quartet 8.4감독야론 질버먼출연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크리스토퍼 월켄, 캐서린 키너, 마크 아이반니, 이모젠 푸츠정보드라마 | 미국 | 106 분 | 2013-07-25 글쓴이 평점 마지막 4중주, 죽음과 태어남의 푸가 취향을 이야기하자면 바흐, 모짜르트, 드뷔시, 라흐마니노프 쪽이다. 베토벤은 아니다. 게다가 4중주라니. 나는 영화 속의 로버트처럼 솔로 쪽에 더 관심이 간다. 그러나 '마지막'이란 말은 언제나 간절하다. 그 간절함에 응하여 영화를 관람하고 싶었다. 원래 혼자 보려했던 영화인데, 이런저런 사정들로 실패하고 있던 즈음 우연히도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남자인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본 것은 수 년만의 일이었다. 그것도 블록버스터 액션이 아닌..
멈춰라, 생각하라 - 슬라보예 지젝 지음, 주성우 옮김, 이현우 감수/와이즈베리 2008년의 촛불을 넘어서 수 백명이 넘는 장병 앞에서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할 때, 사실상 나는 먼저 ‘사회민주주의’라고 하는 낯선 개념을 설명해야만 했다. 냉전의 중심에서, 독재정권과 그들이 휘두르는 메카시즘에 짓눌려 살아온 한국인으로서는 민주주의라고 하면 자유민주주의라고만 생각했지 사회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여간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정훈장교로서 장병들 앞에서 대한민국의 정치제도에 대한 강연을 하고 다닐 무렵, 세계는 미국의 패권이 급속도로 약화되고 중국은 아직 충분히 이빨을 드러내지 못했었다. 그 사이 유럽연합은 빠르게 과거의 영광을 회복해 갔고, 세계적인 학자인 제레미 러프킨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