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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지음/마음산책 |
이번 학기 동안 국어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자기만의 책을 짓게 했다. 그 중 한 학생이 <우울>이라는 이름의 소설집을 냈다. 그 속에 든 한 편의 소설 제목에 내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푸를 청에 봄 춘'. 익숙하게 보아온 문장이었지만 묘한 울림이 있었다. 한 번 마음에 인 파문은 쉬이 잦아들지 않고 오래오래 원을 그려 나가고 있다.
동네서점을 표방하는 홍대의 땡스북스에서 최근에서야 <청춘의 문장들>을 구입해 읽었다. 베스트셀러에 손을 가져가는 일은 만원 지하철에 오를까 말까 망설이게 되는 경우와 비슷하다. 그 지하철이야말로 나를 목적지에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데려다줄 것이 틀림 없을 경우에는 더욱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나는 대체로 만원 지하철에는 오르지 않는다. 조금 늦더라도 기다렸다 빈 틈이 생긴 후에야 차에 오르곤 하는 것이다. <청춘의 문장들>에 뒤늦게 승차한 소이연이다.
나의 청춘은 푸르렀을까. 나의 청춘은 정녕 봄이었을까. 나의 청춘은 아팠고 멍 자욱으로 가득했기에 푸르렀다. 나의 청춘은 아직 아무것도 열매 맺지 않았으므로 봄이었다. 그리고 청춘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만 같다. 소설가 김연수의 청춘 역시 나의 그것처럼, 혹은 당신의 지난날처럼 아프고 시렸으며, 어리석었던 것 같다. 김연수는 그 방황의 시기에 과거의 청춘들을 들여다보았다. 1920년대의 피 끓는 청년들을, 혹은 초당에서 글을 읽으며 소일하던 조선의 청년들을. 그도 아니면 아주 먼 중국의 옛 시인들과 파리의 거리를 서성이던 랭보의 이름을 호명한다. 김연수는 그들의 시와 글을 통해, 그 시절의 청춘과 오늘날 우리들의 청춘이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다. 세월의 풍파에 가려져 사라져버린 발자욱들을 복원한다. 얼마전에도, 아주 오래전에도 청년들은 같은 길을 걸어갔음을 알고 위로를 받는다. 우리의 아픔이 정녕 아플지언정 틀리거나 크게 잘못되지 않았음을, 누구나 그러한 적막한 망망대해를 노저어 가는 때가 있음을, 실패하거나 성공하거나 하는 것들이 모두 한 조각의 인생의 서로 다른 빛깔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챕터는 김광석과의 일화가 소개된 '등나무엔 초승달 벌써 올라와' 였다. 김광석의 노래는 나에게도 청춘이었고, 나와 열 살 터울 정도 되는 것으로 짐작되는 김연수 소설가에게도 청춘이었다. 아마도 당분간 김광석의 노래는 누구에게나 영영 청춘으로 머물지 않을까. 내 한 시절이 '그날들'과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목놓아 부른 시절로 설명될 수 있듯이, 김연수의 한 시절에도 '그날들'과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가 있다. 김연수가 성균관대 교정에서 우연히 육성으로 직접 듣게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아마도 그 마음과는 달리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가을 멀리 가버렸으나
숲 나무엔 가을뜻 아직 남았네
교과서에나 볼 법한 정약용이 지었다는 위 시의 한 구절처럼, 멀리 가버린 것들은 멀리 갔으나 사라지지 않고 우리 마음에 잔상을 남기고 마는 것이다. 나는 늘 그 잔상 속에 머물러 있는 애잔한 것들에게 마음이 간다. 현재도 미래도 변하고 말지만, 그렇게 남겨진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어떤 이들은 그래서 지나간 것들에게 더욱 애착을 갖는지도 모른다.
이제 김광석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 시기를 지나고 있다. 김연수는 이미 김광석보다 더 긴 생을 살았고, 나는 살게 될 것이다. 서른 살이 넘어서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다면 스무 살 무렵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으리라고 소설가는 쓰고 있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이런들 저런들 삶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 아마도 나는 마흔 살이 넘어서까지 살아 있을 것이다. 허나 그 때문에 지금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에는 이르지 않는다. 시간을 대하는 사람의 방식은 일견 타고나는 바가 있는 것만 같다. 어떤 이는 내일 당장 세상을 떠날 것처럼 살고, 어떤 이는 영원히 살 것처럼 산다. 나는 지금 당장 죽더라도 그리 허무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감각으로 살고 있다.
결국, 한 인간이 삶에서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얻어갈 수 있는 것은 감정의 파고뿐이 아닐까. 부도 명예도 지식도 실은 온전히 내게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의 순간에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생각하며 죽을 수도 있겠지만, 나라면 그간 내가 겪었던 감정의 파고들을 떠올리며 조용히 눈을 감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충분한 삶을 살았고, 남은 생은 어찌 보면 덤과 같다. 그렇다고 해서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고, 담담히 삶을 지켜보며 내가 무엇을 더하면 좋을지 곰곰 그려보고 있다.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대략적으로 한 생의 평균적인 위업은 달성된다. 그렇다면 그 후에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누구나 그런 질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저마다 야망을 품고 있는 사람도 있겠으나, 대개는 순간순간 주어지는 작은 미션들을 클리어하며 살아가기 급급해지고 만다. 삶은 그저 그런 것일 수도 있겠으나... 청춘의 뜻 아직 남은 입장에서는 조금 더 먼 곳을, 수평선 너머에 있을 무엇을 그려보게 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10대의 제자가 쓴 제목을 들여다 본다. 푸를 청에 봄 춘. 그리고 문득 떠올린다. 아... 10대의 그 아이도, 20대의 나도, 그리고 지금과 앞으로 살아갈 시절들도 모두 청춘이구나. 아픔이 있고, 어리석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목숨이 붙어 있다면, 우리가 아직 수평선 너머까지 도달하지 않았다면 언제든 청춘인 것이구나 싶다. 모쪼록 어느 시절의 청춘이든 그것이 필연적인 종착지라고 여기지는 말기를. 그보다는 우리가 언제나 종착지에 머물고 있으며, 모든 종착지는 출발지를 겸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오랫동안 활동을 쉬고 있는 밴드 '네스티요나'의 보컬인 요나의 근작 OST 음반 수록곡을 들으며 이 글을 썼다. 그녀의 음악도 언제나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 모두 살아 있다. 그리고 청춘의 뜻은 숲 나무에 아직 걸려 있다.
2013. 7. 11.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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