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바다 - 정한아 지음/문학동네 '꿈'이라는 거짓을 즐기는 법 매력적인 제목, 아름다운 표지 일러스트. 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이어서 한 번에 내 눈길을 끌었다. 를 쓴 정한아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책이 나오기 이전의 일이다. 대학 도서관에서 일을 할 시기였다. 나는 대산대학생문학상에 원고를 내보려고 지난 수상작들을 살펴보다가 '나를 위해 웃다'라는 단편을 읽고 놀랐었다. 그 작품은 담백함, 참신함, 메시지를 두루 갖춘 수작이었다. 그 단편으로 대산대학생문학상을 수상한 이가 바로 정한아씨였다. 비슷한 또래로 대산대학생문학상을 수상한 것만으로도 질투가 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장편으로 문학동네작가상까지 따버리다니. 나는 속으로 음험한 음모론까지 구상해보기도 하였다. 문장 라..
큐복음서 - 김용옥(도올) 지음/통나무 진정 예수가 꿈꾼 삶을 찾아서 Q80(눅 17:20~21) 예수께서 질문을 받으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가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사람들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고도 말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너희 안에 있느니라." 도올 선생님께서 2003년 중앙대 논어 강의 도중 말씀하셨던 게 떠오른다.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신약을 제대로 번역하겠노라고. 그 후 몇 년 간이나 나는 선생님이 번역할 성경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러나 책은 나오지 않았고, 나는 선생님께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삶에 휩쓸려 예수의 참 뜻을 탐구하겠다는 학문적 열망을 까맣게 잊고 살게 되었..
우리나라에 국민 배우, 국민 여동생과 같은 타이틀이 있다면 일본에는 국민 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바로 시리즈다. 오늘은 일본의 국민 게임인 시리즈와 그 영원한 라이벌 게임인 시리즈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시리즈는 1986년 1편이 최초로 제작되었다. 게임 역사상 최초로 롤플레잉(RPG)게임이 출현한 것이었다. 출시 당시 150만장이 팔리면서 슈퍼마리오를 능가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로토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이 출시된 날에는 학생들과 일부 직장인들이 조퇴를 하고 게임 매장으로 달려가는 사회적 사건까지 일어났었다. 의 판매량은 380만장으로 롤플레잉 게임으로서는 경이적인 기록이었다. 시리즈는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마왕이 있고, 그 마왕을 전설의 용자인 플레이어가 물리친다는 단순한 이..
한눈팔기 (반양장) - 나쓰메 소세키 지음, 조영석 옮김/문학동네 우리는 근대를 벗어났을까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가 작가로서 활동한 기간은 약 10년이다. 시기로는 1905년에서 1916년 사이다. 1916년 12월 9일에 50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자전적 소설 가 다루고 있는 시기는 약 1904년. 그가 를 막 집필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에는 격변의 시기를 한 발 멀리 떨어져 지켜보던 근대 지식인이 작가로서 변모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사람의 생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상하다. 1904년의 삶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13년의 삶과 본질적으로 그리 다르지 않다. 양가에 양자로 입양되었다가 다시 친가로 복귀한 한 유년의 상처를 지닌 겐조. 양부모와 친부모 양쪽으로부터 모두 외면 당한 셈이다. 어..
커피의 맛 커피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둔 지도 벌써 10년이다. 20대 초반의 두 해를 안암동의 보헤미안이라는 커피하우스에서 보냈다. 보헤미안은 유서 깊은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더 이상 커피 내리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져서 보헤미안에서 나오던 날 점장님은 내게 어디 가서 커피에 관해 아는 척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고 나는 약조했다. 물론, 철없던 20대였던 나는 그 약조를 참 많이도 깨고 말아왔다. 유서 깊은 커피 명가에서 일을 했다는 사실은 내게 자부심으로 남아 지금 이 글에서도 이렇게 은연 중에 으스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또 마음 한 켠에는 계속 그 약조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으니 참 모순이다. 보헤미안을 나온 이후에는 다른 가게에서 ..
그래비티 (2013) Gravity 8.1감독알폰소 쿠아론출연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에드 해리스, 오르토 이그나티우센, 폴 샤마정보SF, 드라마 | 미국 | 90 분 | 2013-10-17 글쓴이 평점 중력에 바치는 가장 아름다운 찬가 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당연히 자신이 태어난 고장의 이름을 말한다. 그렇게 말하자면 내 고향은 부산이다. 대한민국의 남동쪽 끝단, 바다를 곁에 두고 있는 마을에서 나는 태어났다. 그런데 질문자가 만약 그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도 나는 모국인 '대한민국'을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재차 묻는다면? '지구'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질문자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채 고개를..
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 지음/난다 밤의 선생을 기다리며 '밤이 선생이다' 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 황현산 선생님 - 재학하던 학교의 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셨던 분이고, 학부시절 불문학과 수업을 들으러 다녔을 때도 수 차례 뵌 적이 있기에 '님'자를 붙여서 예를 갖추고자 한다 - 의 지난 산문을 모아 엮은 의 표지에는 어둠 속에서 흰 종이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어둠과 노인의 몸은 경계를 잃고 서로 이어져 있다. 어둠 속에서 글을 쓰는 손과 문장들이 만들어고 있을 머리, 그리고 글이 쓰여질 백지만이 환하다. 아마도 '밤'이라는 것은 엄혹한 세상이나 인생의 어두운 시기를 뜻할 것이다. 그런 것이 선생이라는 것은 곧 고난이 우리를 성장케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상투적인 금언이..
북극의 연인들 (2008)The Lovers of the Arctic Circle 7감독훌리오 메뎀출연나와 님리, 펠레 마르테네즈, 난코 노보, 마루 발디비엘소, 페루 메뎀정보로맨스/멜로 | 스페인, 프랑스 | 112 분 | 2008-12-04 글쓴이 평점 내가 당신이라고 해도, 당신이 나라고 해도 사라져야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옛사랑의 기억, 유년 시절 입은 가슴의 흉터, 그리고 백야의 태양 같은 것들이다. 백야의 태양을 본 적은 없지만 앞의 두 가지 것들은 나에게도 있다. 오래전의 일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 역 개찰구를 나서다가 반대편 벽에 걸린 영화 포스터를 보았다. 눈이 덮인 듯한 벌판이 뒤로 흐릿하게 펼쳐져 있고, 쓸쓸한 표정의 두 남녀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 아래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