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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시 - 김사과 지음/민음사 |
불편한 이야기, 불편한 독서
처음 서점에서 '김사과'라는 이름을 접했을 때, 그 이름에 반했다. 얼마 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그녀가 배수아를 흠모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지목했을 때 또 한 번 호감을 느꼈다. 그로부터 1년 정도가 지나 그녀가 이 작품 <테러의 시>를 낸 뒤 한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을 읽게 되었다. 한국 작가라는 범주에서 벗어난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젠가 꼭 이 작가의 작품은 읽어보아야겠다는 다짐을 갖게 했다. 그리고 다시 또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때의 그 소설 <테러의 시>를 읽게 되었다. <미나>나 <02>를 먼저 읽는 것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김사과의 소설을 읽게 된다면 반드시 <테러의 시>부터가 좋겠다고 생각해 왔기에 자연스레 이 책을 먼저 펼치게 되었다.
옛말 중에 틀린 말 하나 없다는 말조차도 옛말이 되었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었다. <테러의 시>는 이래저래 나와는 상성이 맞지 않는 소설이었다. 중반 이후부터는 책장을 덮고 싶은 마음을 힘겹게 참아가며 마지막까지 읽었다. 그동안 기대해왔던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이랄까 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읽히는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무렇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으면서도 그 속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알 수 없는 묘한 힘이 꿈틀 거리는 감각이 좋다. 그런 점에서 <테러의 시>는 전혀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았다. 덜커덕거리는 포터의 짐칸에 앉아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작가가 강조한 모래의 비유는 작품의 주제를 환기 시키기보다는 작품 읽기의 버거움을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문장들이 입 속에서 제대로 씹히지 못하고 모래처럼 서걱거렸다. 작위적인 설정과 작위적인 현대 문명 비판의 나열 속에서 '싫다.', '더럽다.'라는 감정은 연이어 발생했지만 그 감정의 소용돌이가 표정의 찡그림 이외의 것을 내게서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작가는 문명의 그늘을 이미지화하고 그 불편한 현실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유효하지 못했고, 날것 그대로의 현실이 가진 그로테스크함보다 되려 작품에 묘사된 장면들이 덜 사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호불호가 명백히 갈리는 작가일 것이다. 헌데 나는 그가 흠모한다는 배수아로부터는 초기작부터 강한 인상을 받았고 지금까지 꾸준히 발표되는 작품을 정독해오고 있다. 배수아의 문장에서 숨길 수 없이 풍겨져 나오는 비장미나 요기를 아직 김사과에게서는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한 작품으로 작가의 알파와 오메가를 다 판단하려는 것은 섣부른 일일 것이다. 언젠가 다른 작품을 읽게 되었을 때는 모쪼록 국내 문단의 총아로 여겨지는 이 작가에게서 호감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2013. 7. 23.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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