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에 대해 물을 것은 를 읽은 것이 벌써 2008년의 일이다. 나는 그 책을 두 번 읽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읽고 싶어서 다시 읽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를 읽고 소설가 정한아에게서 요시모토 바나나스러움을 발견하고 기뻤다. 바나나스러움이란 후면에 쓰인 김윤식 평론가의 추천사처럼 '청량감'이기도 하고, 내가 사용하는 '긴 손가락을 가진 피아니스트'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긴 손가락을 지닌 피아니스트는 어려운 음악도 쉽게 연주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데뷔 장편 에는 분명 그런 청량감과 단순함이 미덕으로 살아 있었다. 에도 그 미덕이 여전히 감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작만큼 살아 있다는 느낌은 없다. 적어도 나는 느끼지 못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산다는 일 어떤 말로 글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부끄럽지 않을까. 오직 그것만을 생각했다. 내가 글을 쓰는 뷰러 형태의 책상 선반에는 윤동주 시인의 가 언제나 놓여 있었다. 파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제목이 쓰인 정음사 1968년 초판본이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나는 종종 글을 시작하기 전, 또는 마치고 나서 손을 뻗어 시인의 시집을 아무렇게나 펼쳐 본다. 그러면 매번 다른 시가 내 앞에 펼쳐진다. 오늘의 시는 '창窓'이다. 쉬는 時間마다나는 窓녘으로 갑니다. 시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나 역시 학생시절 쉬는 시간마다 창녘으로 가던 소년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나는 윤동주를 몹시도 사랑하였다. '별 헤는 밤'은 어머니와 함께 살지 못했던 나의 애송시였다. 별 ..
루시드폴의 아침과 해변의 청소부 루시드폴의 뜻은 '빛나는 가을'이다. 하지만 지금 창 밖에는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추위가 서성이고 있다. 곧 봄이 온다는 뜻이다. 언젠가부터 차분히 나를 돌아보며 수필을 써나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아마도 트위터를 시작한 무렵부터 였던 것 같다. 별 의미 없는 말이라도 마음껏 부려 놓을 수 있으니, 말들을 모아 의미를 만드는 작업이 점점 귀찮아지고 허망해진 모양이다. 2010년부터 2016년에 이르기까지 벌써 6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트위터에 글을 쓰는 것은 이런 느낌이다. 한 여름 해변에 앉아 있다. 각양 각색의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래톱을 서성인다. 어떤 사람은 많이 가렸고, 누구는 조금 드러냈고, 적극적인 사람들은 얼굴에만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모든 허물을 ..
함께 설원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일에 대하여 오래전 나는 혼자 대관령의 설원 속을 거닌 적이 있다. 아무도 사랑하고 있지 않을 무렵이었다. 적어도 내게 사랑은 연애심리학 책에서 말하는 것들과는 달랐다. 인내하고 배려하는 선의 속에서 싹트는 것도 아니며,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재밌는 말을 주고 받는다고 해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에는 시나브로 눈이 쌓여가고 있었다. 모든 것을 차갑고 하얗게 덮는 눈. 눈 덮인 마음을 품고 설원 앞에 섰을 때, 나는 가슴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그랬을까. 그때의 나는 잘 몰랐다. 아무 것도 모르겠어서 그저 설원 속에 자박자박 발자국만 새기며 백지 속을 휘 돌아보고 나왔다. 내 마음의 눈 위에도 ..
허식 虛飾. 실속은 없이 겉만 꾸민다는 말이다. 나는 현대인의 허식이 너무 싫고, 어떤 때는 경멸스러운 감정마저 들 때가 있다. 너무 순진한 건지 나는 사람들이 허식으로 한 말을 거의 다 그대로 믿어버리곤 한다. 그말과 약속이 나중에 허식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마음에 작은 상흔이 생긴 이후이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너무 보고 싶다. 우리 언제 보자." 라고 밝은 얼굴을 가장하여 말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언제? 라고 묻곤 하는데 그럴 때 보통 상대방은 당황한다. 내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먼저 보자고 했으니 언제 볼지를 정해야겠다고 여겨 묻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은 대부분 허식으로 한 말일 따름인 것이다. 나의 뜻하지 않은 질문에 상대방은 능청스레 "조만간 연락할게~^^"라고 말하며 얼굴에 이모티..
문득, 길을 잃었다 정말 '문득'이어서 어디서부터 내가 길을 잃은 채 걷고 있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신해철이 갑자기 죽은 시점부터라거나, 세월호가 침몰한 순간부터라거나, 그도 아니면 박근헤 대통령 당선 발표가 나던 때부터라고 하는 것은 여전히 비겁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내가 언제 어디에서 길을 잃기 시작한 것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더 도드라지게 할 뿐이다. 길을 잃었다고 해서 대단한 일이 생긴 것은 아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살아가고 있고, 돈을 벌고, 갖고 싶은 물건들을 사모으고, 사람을 만나고 있다. 단지 그것 뿐이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내 인생은 어느 순간부터 단지 그것 뿐인 인생이 되었다. 나는 노를 잃었고, 내가 탄 뗏목은 강물 위를 단지 흘러가고 있다. 고 말..
제가 쓴 문학기행 에세이 책이 나왔답니다 : )제목은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서사문학인 부터 최근 발간된 공지영 소설가의 까지한국 서사문학 및 소설이 태어난 고향을 찾아가 거닐며 떠올린 이야기들을 써봤어요. 이후로는 제 이름을 달고 판매용 책이 나오는 게 15년만입니다. 참, 오래 걸렸네요^^; ㅎㅎㅎ 아쉽게도 소설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블로그를 꾸준히 찾아와주신 분들은 읽어주시겠죠? ㅋ미리 감사드립니다^^* -> 책 상세정보 보기 2015. 12. 31. 멀고느린구름.
바닷마을에서 바닷마을에서 산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듣는 소리는 항구의 뱃고동 소리였습니다.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갈 때면 바다 냄새가 나는 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교실의 창문을 열면 멀리 바다가 보였습니다. 바다 저 편에는 수평선이 있어 늘 '세상의 끝', 혹은 '저 너머 어딘가'라는 말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하나는 절망적이고, 하나는 희망적인 말입니다. 바다에는 끝도 있고 시작도 있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면 항상 모래톱 위에 발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저 아무 것도 없는, 아니 단지 모래밖에 없는 백사장이었습니다. 그점이 저에게 깊은 위안을 주었습니다. 파도처럼 거칠게 휘몰아치는 상념을 공백하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해변의 이쪽에서 저쪽까지 걸으며 늘 사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