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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루시드폴의 아침과 해변의 청소부

멀고느린구름 2016. 3. 13. 08:33

루시드폴의 아침과 해변의 청소부


루시드폴의 뜻은 '빛나는 가을'이다. 하지만 지금 창 밖에는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추위가 서성이고 있다. 곧 봄이 온다는 뜻이다. 언젠가부터 차분히 나를 돌아보며 수필을 써나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아마도 트위터를 시작한 무렵부터 였던 것 같다. 별 의미 없는 말이라도 마음껏 부려 놓을 수 있으니, 말들을 모아 의미를 만드는 작업이 점점 귀찮아지고 허망해진 모양이다. 


2010년부터 2016년에 이르기까지 벌써 6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트위터에 글을 쓰는 것은 이런 느낌이다. 한 여름 해변에 앉아 있다. 각양 각색의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래톱을 서성인다. 어떤 사람은 많이 가렸고, 누구는 조금 드러냈고, 적극적인 사람들은 얼굴에만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모든 허물을 벗었다. 그들은 저마다의 종이배를 접어 파도 위에 올린다. 그러면 파도는 종이배들을 저 멀리 수평선 어딘가로 운반하기 시작하는데, 몇몇은 운이 좋아 썰물을 타고 아주 멀리까지 나아가지만, 대부분은 밀물에 밀려 다시 해변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종이배들을 스스로 주워서 가져가는 사람은 없다. 자고 일어나면 해변의 청소부가 모든 종이배들을 친절하게 수거해 갈 뿐이다. 


문득 이 해변의 청소부는 어떤 사람일까 싶다. 나는 모래톱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가 그녀인지, 그남인지, 아니면 단지 그로 불리고 싶은 사람인지 아직 알 수가 없다. 그는 해변의 이쪽에서 저쪽까지 모래톱과 바다의 경계를 유심히 살핀 후 횟집이 모여 있는 거리로 나간다. 여기서 독자들은 이 해변이 한국의 해변임을 알 수 있다. 사실, 다른 나라의 해변에 가보지 않아서 캘리포니아의 해변에도 횟집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고 있긴 하다. 만약 캘리포니아의 해변에도 횟집이 있다면 위의 말은 종이배와 함께 해변의 청소부에게 수거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다행히도(?) 해변의 청소부는 횟집에서 아침을 해결하지 않는다. 해변의 청소는 도로를 건너 횟집들 사이의 골목으로 걸어간다. 모텔 같은 호텔들이 밀집해 있는 구역을 지나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로 접어든다. 마을은 조용하다. 아니, 조용하다는 말보다는 괴괴하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거리는 조용하지만 살짝 열린 창에서는 왁자지껄하게 웃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어딘가에서는 그릇이 깨지거나, 냄비가 벽에 부딪치는 소리따위가 들려오기도 한다. 나는 점점 이 글이 인공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이게 다 해변의 청소부 탓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나는 뛰어가서 해변의 청소부의 한쪽 어깨를 움켜쥐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해변의 청소부는 점점 걸음이 빨라지고 도저히 쫓아갈 수 없을 만큼 간격을 벌린다. 해변의 청소부는 산을 오르기 시작하고, 하늘을 걷기 시작하고, 바다를 헤엄쳤다가, 땅굴을 파기도 한다. 나는 끝끝내 해변의 청소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이 추적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는다. 


정말, 해변의 청소부는 어떤 이였을까? 물론,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어쩐지 나는 인생을 크게 잘못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대청소를 하는 일요일이다. 하지만 정말로 청소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청소하지 못하리라. 내가 놓쳐버린 해변의 청소부를 아마 당신도 붙잡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저 아무런 이름을 붙여도 좋을 아침 중의 하나인 아침이다. 나는 종종 아침에 일어나 루시드폴의 음악을 듣는다. 오늘도 루시드폴의 아침이다. 굿모닝. 


2016. 3. 13.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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