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첫 비가 내렸다. 비 냄새가 솜털 같은 것을 보니 지금이 봄이었구나 싶다. 코로나19는 결국 직장을 문 닫게 만들고 말았다. 더 이상 언제 출근할 수 있으려나? 하는 불안정에는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하다고 해야 할까. 20대를 마감하며 직업 군인을 첫 직업으로 가졌었는데, 결과적으로 그게 내 가장 오랜, 그리고 가장 안정적이었던 직장생활이 되고 말았다. 이후 대안학교 교사를 2년 반, 까페 관리인을 1년, 중소기업 전속작가를 1년, 지역 창조기업 대표를 2년, 청소년 강사를 1년, 그리고 현 직장에서 또 2년을 머무르고 마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다들 짧은 기간이었지만, 각 환경 속에서 가장 성공할 수 있을 만큼의 성공을 맛본 후 마감했다. 대안학교에서도 사실상 교감의 역할에 가까운 일을 맡..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늘 무언가 손에 잡힐 듯하다가 곧 사라지고, 이제는 좀 쉬어도 될까 하는 순간 또 다른 어려움이 닥친다. 내 인생은 지나치게 나를 조롱하는 듯하다. 머릿 속이 복잡해지다보니 편두통의 빈도도 늘었다. 한 달에 한 차례 정도이던 것이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씩은 찾아오는 것 같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면 글 쓰는 일은 할 수가 없다.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는 나날이 반복되니 몸도 마음도 약해진다. 스스로 내 인생에 좀 많이 지친 것 같다. 다시 힘을 내봐야지 하는 동기요인은 점점 흐려지고 많은 일들이 무의미함 쪽으로 기울어간다. 이 기분에 젖어들면 젖어들수록 나는 점점 더 초라해져 가겠지. 어디에도 기댈 곳 없었던 지난 1년. 시간이 언제 ..
예전에 연재했던 의 새로운 버전을 쓰고 있다. 오늘도 새로운 이야기를 썼는데, 이 이야기가 사실은 전에 썼던 이야기보다 더 오래된, 더 본래의 이야기인 것만 같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이 연작소설의 책을 발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시간을 들여 다시 써야 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삶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나는 상당히 운명론자에 가까운 것 같다. 작년 12월에 초고를 완성한 도 아직 발매를 못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도서 등록까지 마쳤으나, 출간 비용을 모으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2월에 필요한 자금이 모아졌는데, 공교롭게도 코로나19 사태가 터져서 모아둔 자금을 지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오여2'의 행방도 묘연해지고 있다. 예술인복지재..
일희일비하며 코로나19의 시절을 건너가고 있다. 폐쇄되어버린 직장은 결국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고, 나는 무기한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하루는 막막하고 우울하고, 또 하루는 일상의 소소함을 그럭저럭 즐기다 작은 희망을 발견하며 지내고 있다. SNS에서도 이쪽에 가서는 총선의 난장판에 끼어들어 울분을 토로하다, 저쪽에 가서는 도인이 된 듯 안빈낙도의 삶을 전시한다.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다. 이것도 저것도 내가 아닐 수도 있고. 3월 초에 익명의 은인이 거액의 후원을 해주신 덕에 정신이 무너지지 않고 지낼 수 있다. 그 후원금은 더 값지고, 나 스스로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데에 쓰고 싶어서 아직 통장에 그대로 보관하고 있지만, 큰 돈이 아직 남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상당한 의지가 되는 것이다. 불과 몇 ..
3일 간의 두통에서 겨우 벗어났다. 목요일부터(시간 감각이 사라져서 목요일이 언제였나 싶지만) 시작된 두통이 점점 심해지더니 금요일에 정점에 이르고, 토요일에는 잔파도가 계속되었다. 어제는 또 갑작스레 생긴 비상상황에 대응하느라 하루종일 모니터 앞에 글을 쓰며 앉아 있었다. 일방적인 비난을 하루 종일 받아내는 것은 오랜만에 다시 겪어도 참으로 고역인 일이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GOP에서 장교로 근무할 때 나는 상황장교라는 역할을 맡았는데, 경계하고 있는 GOP 구역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연락 받고 기록하고, 조치하는 역할이다. 상황장교 앞의 전화는 2-3분 간격으로 울렸다. "필승! 고라니 한 마리가 00 지역을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승! 철새 세 마리가 00소초 쪽으로 낮게 ..
퇴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쓰기 작법서가 참 많다. 좀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한다. 몇 십 번을 고쳤느니, 몇 백 번을 고쳤느니 하는 걸 대단한 장기처럼 뽐내는 것도 마뜩지 않다.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의 말대로 라면, 그들은 초고가 백 번을 고쳐야 겨우 써먹을 수 있을 만큼 형편 없거나, 도무지 글을 고치는 데 아무런 재주가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두세 번 보아서도 고쳐야 할 곳이 나오는 글이라면 애초에 다시 쓰거나 발표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본다. 책으로 펴내기 위해 예전에 쓴 소설 세 편을 다시 프린트해서 읽었다. 각 편의 감상은 다음과 같다. 그럭저럭. 뭐 이따위 걸 썼지. 아니, 어떻게 이런 걸 쓸 수 있었지. "뭐 이따위 걸 썼지" 라는 판정을 받은 소설은 아예 새로 쓰기로 결심했다. 지금 생각해도..
예전에 잠결에 읽었던 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책도 다 시절 인연이 있는 법이다. 이렇게 재밌는 걸 그때는 왜 그렇게 졸면서 읽었을까나. 헵타포드B의 사고방식에 흥미를 느낀다. 동양 고전식으로 말하자면 전관(全觀)이다. 전관은 반드시 중용과 연관되는데, 어떤 현상을 파악할 때 전체를 조망한 후 가장 적확한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선(禪)을 통해 일대일의 인과율을 뛰어넘는 다층적 인과의 세계를 직관으로 뚫어버리고자 한다. 테드 창이 제시한 헵타포드 B의 사고법은 빛이 이동하는 형태와 같다. 빛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해 언제나 최소 시간이 걸리는 길을 찾아 날아간다. 빛이 최소시간이 걸리는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디를 향해 날아갈지 그 목적지를 출발..
지난 번과 지지난 번 글에 하트를 눌러준 분이 많았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여러 사람에게 두루 읽히는 걸 원치 않아서 일부러 아무런 이미지를 붙이지 않고 있는데도 시절이 시절이니 만큼 내용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또 몇 분은 응원의 의미를 담아 눌러주셨겠거니 싶다. 개인적인 고충이나 쓸쓸함을 가급적 아는 사람들과 나누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해서 마음의 짐이 덜어지고, 기분이 나아지는 인간 유형도 있겠지만, 나는 그 반대의 인간이다.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은 나 혼자 짊어지는 게 차라리 홀가분하다. 아주 오래 혼자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처음으로 온전히 마음을 의탁했던 이에게 철저하게 상처를 입어서 이기도 하다. 인간은 서로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고, 누가 누구를 절대 구원해줄 수도 없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