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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주방의 유리창을 고방유리 무늬로 바꿨다. 직사각형 모양 두 개를 이어놓은 창에서 빛이 묘하게 굴절되며 주방 곳곳으로 은은하게 번진다. 덕분에 이사 온 후 한 번도 일상의 중심 공간이 되지 못했던 주방이 요즘 내게 사랑 받기 시작했다. 집필실이 추운 탓에 간단한 에세이는 주방에서 쓰고 있다. (지금 바로 이 글도)
내가 인테리어 일을 좋아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이런 변화 때문이다. 아주 작은 변화 하나로 하루의 빛이 마음의 표정이 바뀌곤 한다. 작은 유리창에 고방무늬 유리시트지를 부착하는 일에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 한 시간이 이후의 여러 스물네 시간을 바꾸고 있다. 처음 이사 오기 전의 구름정원의 벽은 어딘가 누추해보이는 아이보리색으로 가득해 어쩐지 대학생 시절처럼 매일 라면을 끓여 먹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을 들여 서늘한 흰색 계열의 '춤추는구름' 색으로 바꾸고 난 뒤에는 아침마다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집 안을 거닐기 좋아졌다.
겨울이 되어 쌀쌀해진 다락방에서 내려온 덕에 이사 온 처음의 모습 그대로 보존해두었던 주방과 거실, 침실 등에 새롭게 눈길이 간다. 한 동안은 또 사랑에 빠진 주방 공간을 더 사랑스러운 곳으로 바꿔가며 지낼 것 같다. 1년이라는 세월을 머물렀을 뿐이지만 오래 마음에 남아 있는 예전의 내 일터 '좋은커피'의 풍경을 내 미감에 맞게 재해석한 형태로 주방을 변화시킬 계획이다.
아주 오래 전의 어느날. 문득, 나는 겨울의 눈부신 햇살 속에서 소설가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잠깐 그렇게 생각을 떠올렸을 뿐인데... 그 아주 작은 생각의 변화가 나를 오늘까지 이끌었다. 인생은 언제나 신비롭다. 그 속에선 만남도 이별도, 슬픔도 기쁨도 소중하다. 고방유리를 통과해 정오의 겨울빛이 환하게 비쳐든다. 트럼프를 싫어하지만 그의 말 표현 중에 한 가지 좋아하는 것이 있다.
"Let's see what happen. 어떻게 될지 지켜봅시다."
그러자,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지켜보기로 하자.
2019. 12. 28.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