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 (2013) Gravity 8.1감독알폰소 쿠아론출연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에드 해리스, 오르토 이그나티우센, 폴 샤마정보SF, 드라마 | 미국 | 90 분 | 2013-10-17 글쓴이 평점 중력에 바치는 가장 아름다운 찬가 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당연히 자신이 태어난 고장의 이름을 말한다. 그렇게 말하자면 내 고향은 부산이다. 대한민국의 남동쪽 끝단, 바다를 곁에 두고 있는 마을에서 나는 태어났다. 그런데 질문자가 만약 그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도 나는 모국인 '대한민국'을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재차 묻는다면? '지구'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질문자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채 고개를..
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 지음/난다 밤의 선생을 기다리며 '밤이 선생이다' 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 황현산 선생님 - 재학하던 학교의 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셨던 분이고, 학부시절 불문학과 수업을 들으러 다녔을 때도 수 차례 뵌 적이 있기에 '님'자를 붙여서 예를 갖추고자 한다 - 의 지난 산문을 모아 엮은 의 표지에는 어둠 속에서 흰 종이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어둠과 노인의 몸은 경계를 잃고 서로 이어져 있다. 어둠 속에서 글을 쓰는 손과 문장들이 만들어고 있을 머리, 그리고 글이 쓰여질 백지만이 환하다. 아마도 '밤'이라는 것은 엄혹한 세상이나 인생의 어두운 시기를 뜻할 것이다. 그런 것이 선생이라는 것은 곧 고난이 우리를 성장케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상투적인 금언이..
북극의 연인들 (2008)The Lovers of the Arctic Circle 7감독훌리오 메뎀출연나와 님리, 펠레 마르테네즈, 난코 노보, 마루 발디비엘소, 페루 메뎀정보로맨스/멜로 | 스페인, 프랑스 | 112 분 | 2008-12-04 글쓴이 평점 내가 당신이라고 해도, 당신이 나라고 해도 사라져야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옛사랑의 기억, 유년 시절 입은 가슴의 흉터, 그리고 백야의 태양 같은 것들이다. 백야의 태양을 본 적은 없지만 앞의 두 가지 것들은 나에게도 있다. 오래전의 일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 역 개찰구를 나서다가 반대편 벽에 걸린 영화 포스터를 보았다. 눈이 덮인 듯한 벌판이 뒤로 흐릿하게 펼쳐져 있고, 쓸쓸한 표정의 두 남녀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 아래로는..
이윽고 슬픈 외국어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문학사상사 쓰지 않아도 그만일 이야기의 필요성 언제나 글을 쓰기 전에 느끼는 것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책 리뷰를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책 리뷰라는 것은 단순히 내가 읽은 책에서 받은 감명을 기록한다는 1차적인 의미도 있지만 이렇게 반 공개된 장소에서 '굳이' 특정한 책을 읽은 감상기를 남긴다는 것은 그 책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함의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책을 널리 알리려는 행위가 되고 말아서 사실 별 소용이 없는 짓이 되고 만다. 친절한 출판사 편집부로부터 쓰지 않아도 그만일 이야기따위는 그만 써도 좋습니다 라고 이메일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구태여 ..
러시안 소설 (2013)The Russian Novel 7.7감독신연식출연강신효, 경성환, 김인수, 이재혜, 이경미정보미스터리, 드라마 | 한국 | 140 분 | 2013-09-19 글쓴이 평점 단언컨데, 은 대단한 영화다. 이런 찬사에 이골이 난 나머지 믿지 않을 사람이 더 많겠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도 없다. 영화 에 대해 알게 된 때는 홍상수 감독의 근작 를 보러 시네큐브를 방문했을 때였다. 내가 소설을 쓰고 있는 탓에 역시 소설을 주제로 삼은 영화에 관심이 갔다. 부클릿 하나만을 달랑 들고 돌아왔다. 부클릿에 써있는 '클래식의 부활'이니 하는 문구들은 지나치게 식상하고 매력이 없어서 광고를 맡은 사람이 누구일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는 정도의 효과밖에 내지 못했다. 흥미를 끄는 것은 제목뿐이었다. 영화..
마지막 4중주 (2013)A Late Quartet 8.4감독야론 질버먼출연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크리스토퍼 월켄, 캐서린 키너, 마크 아이반니, 이모젠 푸츠정보드라마 | 미국 | 106 분 | 2013-07-25 글쓴이 평점 마지막 4중주, 죽음과 태어남의 푸가 취향을 이야기하자면 바흐, 모짜르트, 드뷔시, 라흐마니노프 쪽이다. 베토벤은 아니다. 게다가 4중주라니. 나는 영화 속의 로버트처럼 솔로 쪽에 더 관심이 간다. 그러나 '마지막'이란 말은 언제나 간절하다. 그 간절함에 응하여 영화를 관람하고 싶었다. 원래 혼자 보려했던 영화인데, 이런저런 사정들로 실패하고 있던 즈음 우연히도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남자인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본 것은 수 년만의 일이었다. 그것도 블록버스터 액션이 아닌..
멈춰라, 생각하라 - 슬라보예 지젝 지음, 주성우 옮김, 이현우 감수/와이즈베리 2008년의 촛불을 넘어서 수 백명이 넘는 장병 앞에서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할 때, 사실상 나는 먼저 ‘사회민주주의’라고 하는 낯선 개념을 설명해야만 했다. 냉전의 중심에서, 독재정권과 그들이 휘두르는 메카시즘에 짓눌려 살아온 한국인으로서는 민주주의라고 하면 자유민주주의라고만 생각했지 사회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여간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정훈장교로서 장병들 앞에서 대한민국의 정치제도에 대한 강연을 하고 다닐 무렵, 세계는 미국의 패권이 급속도로 약화되고 중국은 아직 충분히 이빨을 드러내지 못했었다. 그 사이 유럽연합은 빠르게 과거의 영광을 회복해 갔고, 세계적인 학자인 제레미 러프킨은 이..
티파니에서 아침을 -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시공사 순수하고, 가볍고, 빛나는 세계에서 아침을 어린 시절, 토요일 밤은 항상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토요 명화극장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토요 명화극장에서는 2주 연속으로 '로마의 휴일'과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방영해주었다. 영화의 내용은 이제 가물가물해지고 말았지만 흑백 화면과 오래된 뉴욕의 거리를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던 오드리 햅번의 모습은 생생히 기억한다. 솔직해지기로 하자. 홀리 골라이틀리가 영미 문학사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주인공 중 하나인 줄도, 심지어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원작 소설을 둔 작품인지 전혀 몰랐다. 당연히 트루먼 커포티라는 작가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 적어도 중등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