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나는 알 수가 없네 작사 / 곡 멀고느린구름 되는 대로(즉흥곡)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22살 무렵부터 '강의'라는 것을 진행해 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9년이라는 세월 어물쩍 흘러버려서 요즘에는 예비 강사(?)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교수법'을 가르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중학생 시절 교무실 문 앞에서 대체 어느 타이밍에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할지를 몰라서 망설이며 4시간을 문 앞에 버티고 서있었던 나였다. -당연히 모두들 내가 벌 서고 있는 줄 알았다고 회고할 거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적에는 수업 시간에 내가 교사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는 때에는 곳곳에서 흠칫 놀라거나,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모두들 내가 말을 못하는 줄 알았다가 그제서야 "아, 말을 할 수도 있었지."라고 다시 생각을 고쳐 먹게 되는 것이다. 유년 시절에는 제..
생선 정종목 한때 넉넉한 바다를 익명으로 떠돌 적에 아직 그것은 등이 푸른 자유였다 고등어,참치,청어,정어리,꽁치.....그런 이름을 달고부터 그물에 얽히고 몇 두릅씩 묶여 생선은 도마에 오른다 도마에 올라 두고 온 바다를 헤집는 칼날 시퍼렇게 날을 세운 배후의 죽음을 넘보고 살아서 지킨 육신의 토막토막 냉동된 자유, 성에 낀 비늘을 털며 까마득한 불면의 바다를 지탱해온 가시와 뼈를 발리우고 부드럽게 등을 구부리고 마지막 살신을 위해 제단 위에 오른다 석쇠 위에서 시커멓게 알몸을 그슬려 마침내 헛된 저의 이름마저 산산이 찢기우고 소금을 뿌려주세요 환호처럼 은총처럼 가슴까지 뼛속까지 황홀하게 저미도록 오늘도 헛된 이름을 쫒아 붉은 아가미를 헐떡이며 보이지 않는 그물 속으로 쓸려가는 고기떼,고기떼 썩은 생선..
새벽에 일어나 체벌 금지와 관련된 기사가 있어서 읽어보고는 체벌 금지에 반대하는 이들의 생각을 훑어보려고 검색을 했다. 근데 이건 뭐 누가 최초에 썼는지도 알 수 없는 한 가지 논리의 글을 얼굴만 다른 사람들이 계속 인용하며 반복하고 있다. 체벌금지론자들의 논리는 간명하다. 조선시대에는 초달문화가 있었다.이른바 아버지가 회초리를 만들어 스승에게 선물하며 우리 애 때려 달라고 한다는 문화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말 안 듣는 애들은 때려야 한다고 '정치학'이란 책에서 언급. 서양 중세기에는 체벌이 일반적으로 행해졌고, 종교 혁명을 일으킨 마틴루터도 체벌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체벌은 역사적으로 일반적인 현상이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는 게 맞다. 아니 이런 해괴한 논리가 있나. 그렇다면 옛..
인생이라는이름의여행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일본에세이 지은이 고히야마 하쿠 (한얼미디어, 2006년) 상세보기 하트점수 : ♥♥♥♡ "나는 나그네가 되어 오래전 보았던 풍경의 기억을 되살리고, 앞으로 내가 보게 될 풍경을 상상한다. 나의 열차는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나를 실어다주는 마법의 빗자루 같은 것이다. 다른 어딘가, 그곳은 아마도 현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꿈속의 이상향일 것이다." 나는 고히야마 하쿠라는 작가를 모른다. 그가 일본에서 어떠한 위치에 올라 있는 작가인지, 어떤 작품을 썼는지, 그 작품이 매력적인지 아닌지 모른다. 다만 그가 1937년에 훗카이도 다키노우에서 태어나 1976년 라는 소설로 데뷔하여 일본 문학계에 일정한 발자취를 남긴 소설가라는 것만을 알고 있..
소에게 소야 너는 봄볕처럼 맑고 다정한 눈을 갖고 태어났단다 네가 가녀린 두 다리를 떨며 일어섰을 때 지구 위의 모든 게 바로 서는 것 같았다 소야 어린 소야 엄마의 온기어린 젖 대신 이름모를 타지의 우유를 먹고 자랐지 넌 가끔씩 멀리 떠가는 구름을 지켜보던 소야 거기에 네 엄마 얼굴이 있었나 너의 작은 등 어디에 주사 바늘을 꽂을 수 있을까 너의 눈망울 어디에 내가 죽음을 심을까 미안하다 나는 네 엄마이고 아빠이고 혹은 누이인 것을 먹으며 한 번도 너를 떠올리지 않았다 너의 등 위에도 5월의 나비가 앉았다 갔음을 너의 눈망울 가득히 삶이 어렸음을 너의 가슴에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 꽃 피었음을 나는 떠올리지 않았다 너를 사랑으로 키웠으나 너를 사랑하지 않는 세상에 보내려 했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도무지 ..
D에게 보낸 편지 -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학고재 마음을 다한다는 것 "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슬린 페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