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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간의 두통에서 겨우 벗어났다. 목요일부터(시간 감각이 사라져서 목요일이 언제였나 싶지만) 시작된 두통이 점점 심해지더니 금요일에 정점에 이르고, 토요일에는 잔파도가 계속되었다. 어제는 또 갑작스레 생긴 비상상황에 대응하느라 하루종일 모니터 앞에 글을 쓰며 앉아 있었다. 일방적인 비난을 하루 종일 받아내는 것은 오랜만에 다시 겪어도 참으로 고역인 일이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GOP에서 장교로 근무할 때 나는 상황장교라는 역할을 맡았는데, 경계하고 있는 GOP 구역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연락 받고 기록하고, 조치하는 역할이다. 상황장교 앞의 전화는 2-3분 간격으로 울렸다.
"필승! 고라니 한 마리가 00 지역을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승! 철새 세 마리가 00소초 쪽으로 낮게 날아 이동하고 있습니다."
"필승! 후방 지역에서 농사 차량 이동 중입니다."
이런 보고들 사이로 틈틈이 상급부대의 고참들이 전화를 해서
"야 이 새끼야, 똑바로 보고 안 해? 철새가 지금 어디에 있어? 세 마리야, 두 마리야! 한 마리는 어디 갔어? 니가 먹었어!?"
라고 소리를 지르는 일을 매일매일 10시간 이상씩 겪었다. 퇴근시간은 평균 새벽 2-3시였다. (기상은 6시) 그런 생활을 1년 넘게 하다 보니 극단적인 두 가지 성향이 내 안에서 강화되었는데, 하나는 웬만한 자극은 아무렇지 않게 참을 수 있게 된 것이고, 또 하나는 임계점을 넘는 순간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광기가 솟구치게 된 것이다. 두 성향은 원래 내가 이전에도 가지고 있던 것이기는 했지만 그 시절 이후로 더 강화되고 말았다.
어제는 다행히 임계점을 넘는 일이 없었으나, 나는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나 자신을 감시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이런 지랄맞은 성격에 대해 한탄한 일이 있는데, 아버지는 가문의 핏줄이라며, 자신은 오히려 형제자매 중에서 가장 덜한 편이라고 주장했다. DNA 중에 가장 약한 녀석이 한 세대를 지나 내게로 왔는데, 이 정도라니. 다른 쪽으로 간 DNA는 전수조사를 해서 국가가 통제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다들 멀쩡히 잘 살아가고 있는 걸 보면, 내가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걸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내 지병인 두통은 이렇게 매사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의 뇌가 정기적으로 어느 순간 제발 아무 생각 좀 하지 말고, 아프기만 하라고 스스로 흐름을 꼬아버리는 게 아닐까. 두통이 생기면 무척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아프기만 해서 좋기도 하다. 그러나 또 이렇게 지나고 보면 두통 탓에 헛되이 지나가버린 3일이 참으로 아깝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된 통에, 나의 직장 복귀는 필시 또 한 번 유예될 듯하다. 이대로 라면 새 직장을 서둘러 알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며 조금씩 살펴보고 있다. 인테리어 관련 일이 연락이 왔는데... 과연 인테리어는 나의 운명인 것인가?
오늘 아침 커피는 조금 맛이 없다. 씨디플레이어에 <귀를 기울이면> OST 앨범을 걸었다. 봄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2020. 3. 29.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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