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봉평으로 향하는 관광버스 안에서 소년은 설레고 있었다. 가슴이 7월의 바다처럼 파도질을 했다. 부산시에서 주최한 청소년 권장도서 독후감 공모전에서 소년은 최우수상을 받았다. 소년은 알베르 까뮈의 에 대해서 썼다. 태양이 뜨거워서 사람을 죽인 뫼르소는 휘황찬란한 문명의 네온사인에 지친 인류의 권태를 대변한다고 써서 심사위원의 구미를 맞췄다. 그러나 소년은 을 단 한 줄도 읽어본 일이 없었다. 소년이 읽은 것은 낡은 다락방에 있던 세계대백과사전 12편에 있던 작가 소개와 의 줄거리 요약이었다. 소년은 어릴 적부터 거짓말에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타고난 연기력도 갖추었다. 언젠가부터 소년은 자신이 타인을 속이고 있다는 것마저 망각하며 상대를 속이곤 했다. 소년은 알게 되었다. 타인을 속이기 위해서는 먼..
너를 위해 어쩜 우린 복잡한 인연에 서로 엉켜있는 사람 인 걸까 나는 매일 네게 값지도 못할 만큼 많은 빚을 지고 있어.. 연인처럼 때론 남남처럼 계속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그렇게도 많은 잘못과 잦은 이별에도 항상 거기 있는 너.. 난 세상에서 제대로 살게 해줄 유일한 사람이 너란 걸 알아 나 후회 없이 살아가기 위해 너를 붙잡아야 할 테지만 **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전쟁같은 사랑..난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너에게서 떠나줄꺼야 *** 너를위해 떠날꺼야 ------------------------ * 나가수에서 화제가 되기 전부터 좋아하던 곡이었습니다. 임재범을 흉내내서 줄곧 부르곤 했었는데... 최대한 흉내내지 않고 제 목소리와 해석을 살려서 다시 불러보았습니다 ..
자그만 식물을 키우는 일 6월 중순부터 말까지 15일간 집을 비웠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함께 '자립여행'이라고 하는 긴 여행을 다녀왔지요. 여행은 무사히 다녀왔습니다만,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돌아온 날 '구름의 뜰'이라고 지금 막 이름을 붙인 베란다 정원을 보곤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여행 가기 일주일 전에 사다가 고이고이 키우던 풀꽃 세 아이가 갈조류처럼 말라 있었습니다. 서둘러 물을 흠뻑 먹이고 며칠 동안 약도 먹이고 흙도 갈아주고 해보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 도저히 살아날 기색을 보이지 않아 결국 학교 '포도정원'에 묻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여름이라 적어도 일주일에 물을 두어번은 마셨어야 할 아이들인데... 내리 3주를 굶었으니 얼마나 목을 태우다 죽었을까..
그남은 대답했다. “첫눈에 반해서요.” 그녀의 질문을 숫제 그쪽은 왜 저를 좋아하세요? 라고 받아들인 것만 같은 답이었다. “와.. 좋네요. 그 대답. 기억해둘게요. 그쪽의 사랑이 어디에까지 이르는지 말이에요.” 그리고 그녀는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골목길을 따라 사라졌다. 가벼운 걸음이었다. 어쩐지 고백을 해버린 것 같아 뒤를 따라가기도 어색해 그남은 자리에 머물렀다. 다음날 학교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그녀가 그남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지난 날 하나의 질문으로 그남의 모든 것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 그남은 싫지 않았다. 공강 시간마다 그녀와 그남은 중앙 운동장 비탈에 있는 잔디밭에서 만나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과 동경하는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
20 “소설을 쓰고 싶어요.” 그녀는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그남이 아닌 그남의 학과 선배에게. 올 봄 지방지의 신춘문예로 등단한 선배였다. 키는 보통. 얼굴은 훈남과. 유행과는 상관없이 무태 안경을 고수하는 이였다. 남자로서의 매력은 덜했지만 글쓰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와 결합했을 때는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키는 인물이었다. 이제 갓 입학한 1학년 새내기였던 그남은 그녀에게 소설가가 되는 방법따위를 일러줄 수 있는 위치가 되지 못했다. 한 발짝 물러서서 고작 스물 세살에 불과했지만 등단 선배의 말을 잠자코 듣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 써. 그리고 많이 써. 그런 다음에 많이 버려. 그러면 돼. 그게 다야.” “그렇죠... 그런데 그게 어려워요. 제일 어려운 일 같아요.” 그남은 마음 속으로 선배의..
아를의 강가에서 아를의 강가에서 차를 멈추고선루프를 열어 별들을 내려오게 했다설혹 짧은 생 속에도 눈물은 고인다고새벽의 취기를 빌려 이야기했다너와 내가 고른 맥주의 이름은 달랐지만비우거나 지우거나강물에 띄우고픈 말들은 닮아 있었다저편의 불빛이 아를을 떠나는 배라고 나는 말했다누구나 자기의 삶을 떠나버리고 싶은 때가 있었다가슴에 켜켜이 쌓인 지나온 밤의 무게에 숨이 막혀태양계 너머에 놓인별들의 강을 무심코 올려다보았다하루가 시작되지 않기를 바라는오래전의 나와 지금의 네가거기에서 만나 부끄러이 손을 잡고 침묵의 춤을 춘다하늘과 강, 혹은 시작과 끝의 어슴에서우리는 다시 너와 나의 하늘이 밝아오는 것을 담담히 바라보며 각자의 삶을 주워들었다우물처럼 멀어지던 아를의 강가에서. 2012. 6. 28. 멀고느린구름.
그남은 품 속에서 조그만 선물상자를 꺼내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단번에 반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크기였다. 그녀는 주저하면서 힙겹게 상자를 받아들었다. 그녀의 얼굴로 갖가지 표정이 교차했다. 포장을 벗기자 벨벳으로 감싸인 반지 상자가 나왔다. 덮개를 열었다. 그녀는 어떤 결심을 한 듯 담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마워... 껴볼까?” “응. 내가 해줄게.” “아냐, 내가 낄래.”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오른쪽 약지에 은빛 반지를 걸어넣었다. 어째서 오른쪽인가 하는 의문이 그남의 얼굴에 나타났다. “아직 네 맘을 받아들이기로 확정한 건 아니니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그남의 마음을 읽어 말했다. 그남은 머리를 끄덕였다. “예쁘다... 고마워 정말.” “잘 어울린다. 다음에는 다이아 반지로 해줄게.” “언..
그남은 그녀의 눈 앞에 꽃다발을 내밀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그남을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뭐야 이거..?” “뭐긴. 크리스마스 선물이지.” “하하. 뭐야~” 그녀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남은 어깨를 짓누르던 중력이 사라져버린 것 같이 느꼈다. “그리고 이것도~” 그남이 케이크를 내밀었다. 딸기 케이크였다. 며칠 전 그남이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케이크라면 역시 딸기 케이크가 정석이라고 말했었다. 그녀는 기뻤다. 심장의 무게가 더해지는 기분이 들었으나 오늘은 더 생각하지 않기로 정했다. 그남이 포장에서 촛불을 꺼냈다. “설마 잔인하게 나이 개수만큼 촛불을 꽂는 건 아니겠지?” 그녀의 말에 그남은 움찔하며 촛불을 도로 포장 안으로 밀어넣었다. 머쓱한 웃음. 헛기침. 그리고 그남의 생일 축하 노래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