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들이 늘어간다. 왜 아직 등단을 하지 못했나? 왜 아직 유명한 인물이 되지 못했나? 왜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나? 왜 아직 재산도 갖추지 못했나? 왜 아직 성격이 그 모앙인가? 세상은 (그리고 나 자신은) '왜 아직 -' 으로 시작되는 수 많은 질문들을 나에게 종종 던진다. 그럴 때면 무엇 하나도 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이러쿵저러쿵 정신승리를 위한 변명들을 뒤적거리게 된다. 나를 알아보는 심사위원이 없어서요, 세상 사람들의 취향과 내 취향이 달라서요, 돈도 없고 성격도 나빠서요,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져본 일이 없어서요, 천성이 그 모양이라서요. 라고 세상의 질문에는 대충 변명을 하고 돌아서지만, 이따금 나 자신이 스스로 던지는 똑같은 질문 앞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변명의 여지조차 없..
글이 잘 써지지 않는 현상은, 손아귀에 힘이 주어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2분 내에 팔굽혀펴기 100개를 해내야 한다는 미션을 받고, 단기간에 무리한 근육 운동을 해야 했을 때 종종 그런 일이 있었다. 1시간 정도의 하드 트레이닝을 마치고 나면 손아귀에 힘이 잘 주어지지 않았다. 주먹을 움켜쥐는 것쯤이야 언제든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그건 뭐랄까 내가 존재한다는 것만큼이나 확고한 믿음이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기분은 묘하다. 물안개가 사방을 뒤덮은 익숙한 거리 위를 걷는 기분이다.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면 손목 즈음에서 형체가 스러지고 마는 안개 속에서는 익숙하다는 것이 무의미해지고, 이내 내 존재에마저 의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주말 내내 다락방에 누워 글을 쓰고 싶다..
웹에 쓰는 글은 아무 거라도 이미지를 붙여두지 않으면 거의 읽히지 않는다. 덕분에 요즘에 내가 이곳에 쓰는 시시껄렁한 에세이들도 거의 읽히지 않고 있다. 조회수가 10-30 사이다. 일부러 그러는 중이다. 꽤 오랜 세월 읽혀지기 위한 글을 연구해왔다.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고, 검색어에 잡힐 법한 단어들을 제목에 넣고, 화제가 되는 쟁점에 뛰어들어 글을 쓰곤 했었다. 글을 웹식으로 치장하는 일에 이제 제법 능통해졌다. 그러다 작년 무렵부터 글이 글 외의 요소로 읽히는 것에 좀 정이 떨어졌다. 잘 치장한 글이 역시 잘 읽히는 것을 보면 그다지 기쁘지 않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온갖 사람들이 글이란 이렇게 써야 한다고 떠드는 것에도 질려버렸다. 글이란, '잘 읽히면' 그만인 것일까. 잘 읽히는 글을 쓰면 글을 ..
음악감상실에는 언제나 나 한 사람 뿐이었다. 대학생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떠올려 보면 그 음악감상실은 지나치게 성실하게 운영되었다. 언젠가의 추석이었다. 모두가 고향을 향해 떠난 뒤에 난 언제나처럼 혼자 자취방에 반쯤 누워서 왁자지껄해진 주인집 가족들의 눈을 피해 밖으로 나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오래된 단층 구옥의 방 두 개를 자취방으로 내주고 있는 곳이어서 외출을 하려면 반드시 거실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주인 할머니는 명절 아침이 되면 늘 내 방을 두드려 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거실에 잔치상을 차렸다. 특별히 갈 곳이 없어 명절에도 방바닥에 붙어 있는 것을 구태여 알리고 싶지 않아, 늘 인기척을 내지 않았었다. (그러다 한 번은 내 방문 쪽으로 차례상이 차려진 일도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
빗소리에 잠을 깼다. 다시 잠들려고 한 시간이나 애를 썼으나 온갖 상념들만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기 시작하는 통에 그냥 이불을 걷었다. 다락방에 누워 있으면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마치 진군하는 군인들의 군화 소리처럼 들린다. 이렇게 쓰면 전혀 낭만적이지 않지만, 남들보다 긴 시간을 군에서 보낸 내게는 미약한 서정의 풍경이 떠오른다. 새 보금자리인 '구름정원'의 다락방은 아름답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내가 아름답게 만들었다. 지난 주말과 지지난 주말을 온통 투자해서 몹시 단정한 공간으로 변모시켜놓았다. 다락방에 대한 애정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나는 다락방에서 첫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진정한 의미의 독서 또한 다락방에서 비로소 시작되었을 것이다. 작은 나트륨 전구 하나로 흐린 귤빛 불..
지금이 여름의 끝인지 가을의 처음인지 알 수 없다. 한낮의 햇볕은 분명 뜨거웠는데, 작은 전등 불만 환한 저녁의 집필실 밖으론 귀뚜라미가 운다. 8월까지는 여름이라고 해주는 것이 떠나는 여름에 대한 예의인 듯하여 편의상 지금을 여름의 끝으로 정한다. 매일 한 잔 정도 마시던 커피가 하루 두 잔으로 늘었다. 아침에 한 잔, 저녁에 한 잔이다. 아침에는 글을 쓰기 위한 제례의 뜻이, 저녁에는 일과를 끝낸 고단함을 씻는 세례의 뜻이 두 잔의 커피에 담겨 있다. 어찌 보면 커피로 열고 커피로 닫는 삶이다. 저녁의 커피가 나도 모르게 추가 된 시기는 아마도 정기적으로 출근하는 일자리를 오랜만에 갖게 된 이후부터인 것 같다. 매일 두 개의 일을 하게 되니 두 잔의 커피를 마시게 된 셈이다. 풍랑을 만난 타이타닉호처..
화초의 영혼을 꺼트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개월이다. 화초라고 하는 생명체의 수명이 수십 년에 이른다는 사실을 도저히 현실적으로 증명해낼 수 없는 나는 수백 년 동안도 나무를 길러내는 지구에게 다만 경의를 표할 수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부터 풀과 꽃과 나무를 좋아했다. 봄과 여름이면 거리에 피어난 수많은 화초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넸고, 커다란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속에 안겨 잠드는 일을 사랑했다. 잎사귀들을 흔들며 부는 가을바람은 또 얼마나 눈물겨웠던가. 그렇게 초록을 사랑한 나이기에 화초를 기르는 마법도 당연히 내게 주어져 있을 거라 여겼다. 스무살에 기숙사 2층 침대에서 길렀던 테이블 야자는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첫 자취를 기념하며 야심차게 입양했던 고무나무, 페퍼민트, 대나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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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황금이 될 때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모인다. 베스트셀러를 구입하려는 사람과 베스트셀러는 구입하지 않으려는 사람. 어릴 적부터 반골 기질이 강했던 나는 기를 쓰고 베스트셀러를 사지 않으려 했다. 잘 팔리는 책을 사지 않기 위해서는 요즘 무엇이 잘 나가고 있는지부터 꿰고 있어야 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태풍이 몰아친 것은 2001년이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혼자 팔장을 낀 채 서점에 가득 진열된 들을 바라보며 대중독자들의 취향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군 이라고 생각했다. 수십 만 권의 가 팔려나갔지만 누군가 드디어 연금술사가 되었다는 소식은 뉴스에서 들어보지 못한 채로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실은 1988년에 쓰여진 이 책을 2018년에, 88쇄 기념 리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