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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황금이 될 때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모인다. 베스트셀러를 구입하려는 사람과 베스트셀러는 구입하지 않으려는 사람. 어릴 적부터 반골 기질이 강했던 나는 기를 쓰고 베스트셀러를 사지 않으려 했다. 잘 팔리는 책을 사지 않기 위해서는 요즘 무엇이 잘 나가고 있는지부터 꿰고 있어야 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태풍이 몰아친 것은 2001년이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혼자 팔장을 낀 채 서점에 가득 진열된 <연금술사>들을 바라보며 대중독자들의 취향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군 이라고 생각했다. 수십 만 권의 <연금술사>가 팔려나갔지만 누군가 드디어 연금술사가 되었다는 소식은 뉴스에서 들어보지 못한 채로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실은 1988년에 쓰여진 이 책을 2018년에, 88쇄 기념 리커버판으로 구입하게 될 줄을 20대 시절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연금술사>의 담백하면서도 귀여운 새 표지는 공교롭게도 내 취향을 저격하고 말았다. 우주는 드디어 내게 <연금술사>를 읽도록 허락했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산티아고' 라는 산티아고 순례자 같은 이름의 남자 주인공이 사막에 감춰진 보물을 찾으라는 우주의 계시를 받은 후, 안정된 양치기 생활을 버리고, 과감한 모험에 나서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끝내 승리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바로 그 유명한 ‘끌어당김의 법칙’, <시크릿>의 힘이 놓여 있다. 

 

긍정적인 미래가 바로 지금 내 앞에 도착해 있다는 상상을 실감나게 하면, 결국 그대로 이루어지고 만다는 알라딘의 요술램프 같은 론다 번(<시크릿>의 저자)의 주장은 10년 즈음 전에는 수천만 명의 세계인을 열광시켰고, 자기계발서라고 하는 출판시장의 보증된 판매로를 개척했다. 베스트셀러와 끝없는 투쟁을 벌이던 나도 2009년 무렵에는 장병들의 사기 진작을 도모한다는 사단장의 목표 아래, 정훈장교로서 <시크릿> 순회 강연을 다녀야 했었다. 병영생활을 위한 진중문고로 보급된 <시크릿> 책과 디브이디 속에는 내게 익숙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검색을 통해 위키백과 같은 곳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시크릿>의 주장은 대저 양식 있는 이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비난받고 있다. 사이비 종교, 유사과학 같은 혐의를 짙게 받으며, 2000년대 중후반 무렵의 폭발적 인기가 무색하게 희화화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끌어당김의 법칙’ 혹은 ‘자기긍정의 힘’은 론다 번이라는 작가의 독창적인 주장이 아니라, 애초에 여러 종교 지도자들과 명상가들의 가르침으로 설파되어 오고 있던 인류의 지혜 중 하나다. 다만, 론다 번과 <시크릿> 붐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물질적 부를 불러오는 방법’이라는 세속적 관점으로 이 인류의 지혜를 재조명한 것일 뿐이다. 세속적인 성공으로부터 초연한 태도를 취해야 했던 옛 선현들과 달리, 이들은 거침없이 돈을 버는 데 이 방법을 써도 좋다는 면죄부를 발행해준 것이었고, 면죄부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 상품이었다.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에게 내려진 계시도 이집트의 피라미드 인근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을 마음만 먹으면 황금으로 바꿀 수 있는 ‘연금술사’라는 이름 자체도 풍요로운 부를 암시하고 있다. 중세 유럽의 많은 식자들이 이 부를 쫓아 연구실에 틀어박혔다. <시크릿>을 비난하는 위키백과의 작성자들도 골방에 틀어박힌 채, 화려한 미래를 간절히 상상하는 음침한 인간을 머릿 속에 그린다. 수많은 이들의 고통을 불러일으킨 박근혜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들어준다.”는 희대의 어록을 남김으로써 인류의 지혜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일찌기 싯다르타는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 삶의 어둠을 밝혀가기를 권하며 세상 만물이 결국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만들어지고 사라진다는 것을 설법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은 없으며, 존재한다고 믿는 모든 것은 생물의 오감과 의식이 그때그때 일으키는 작용에 의해 나타나고 사라질 사건일 뿐이다. 이 스마트한 선각자는 삶 속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은 서로 중층의 인과관계로 엮어져 있으며, 나비의 날개짓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것처럼 순간순간 행하는 우리의 판단과 자잘한 선택들이 다음에 올 삶의 사건들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핵심이자 부처가 깨달은 ‘연기론’이다. 

 

양자역학까지 가져다가 론다 번이 주장한 ‘끌어당김의 법칙’은 B.C 400여년 전부터 이미 널리 설파되어 왔던 지혜의 자본주의판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 세속적 속성에 홀려 ‘시크릿’에 탐닉했고, 아마도 실패했을 것이다. <연금술사>를 읽은 독자들 중의 상당수는 산티아고가 이룬 세속적 성공에 주목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그 독자들은 이집트의 피라미드 속에서 엄청난 보물을 발견하는 것 같은 기적이 자신에게 일어날 수 없으리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모래폭풍을 마음대로 일으키는 연금술사는 역시 소설 책 속에나 있는 환상적 장치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렸으리라. 

 

그러나 어떤 이들은 <시크릿> 속에서도, <연금술사> 속에서도 황금 너머에 있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다. 또 어떤 이들은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지 않고, 내가 살고자 하는 대로 삶을 이끄는 인물에게 매료되었을 것이다. 

 

현대인들이 신봉하게 된 과학은 증명되지 않은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 신중함이 인류에게 상당한 안정성을 부여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끌어당김의 법칙’ 같은 것은 당연히 과학이 아니다. 양자역학을 통해 유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입자의 미시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인간계의 거시적 세계에 그대로 대입시킬 수는 없다. 그것은 매우 비과학적이다. 제한적인 과학의 성과를 통해 인간의 현상을 살피는 것은 과학 해석의 영역으로, 인문학적 상상력에 기대는 재밌는 가설일 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인류는 인류사의 상당 부분을 흥미로운 인문학적 상상력에 기대어 살아왔다. 공자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예수도, 싯다르타도 고가의 실험 장비를 지닌 과학자가 아니었다. 그러니 어떤 주장이 비과학적이라거나,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일방적 비난의 대상이 되어도 좋을지는 신중히 생각해보자. 물론, 그 인문학적 상상력의 결과가 우리의 삶에 큰 해를 끼치는 형태로 나타난다면 엄격히 재고되고,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인류에게서 '시간'의 존재를 빼앗아갔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흐르는 시간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시공'의 존재마저도 회의되며, 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물질'이 아닌 '사건'들일 뿐이고, 우리는 미처 알 수 없는 확률의 고리로 연결된 무한한 사건과 사건들 속에 놓여 있을 뿐이라는 몹시 종교적인 21세기 과학의 주장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무엇에 대해 비과학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과학적일까?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연금술사> 속의 이 달콤한 메시지는 두 가지 험난한 전제 조건을 감추고 있다.

 

첫째, 자네가 정말로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둘째, 그걸 원하는 자네는 대체 누구인가.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찾은 진짜 보물은 저 두 질문의 해답이다. 두 해답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은 황금빛으로 변하는 것이다. 삶의 연금술사가 된 이에게 이집트의 사막 속에 감춰진 보물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지금 우리 머리 위를 무심히 지나는 저 여름의 구름들이 곧 가장 눈부신 생의 황금인 것을.

 

2019. 7. 23.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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