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김영하는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작가이기도 하다. 지금의 김영하가 있게 만든 를 읽었을 고교생 시절에는 한국에도 유럽 본토에 대적할만한 신인이 나왔다! 고 감격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읽은 이나 의 경우 그만한 감흥을 받지 못했다. 그 뒤로는 다소 게으르게 그의 작품들을 읽어왔다. 는 한 해 동안 국내의 굵직한 상들을 두루 수상하던 시기에 발표해 화제를 모았던 이후 그가 오랜만에 출간한 단편집이다. 읽기 쉬운 것부터 읽어가는 내 독서 방식 대로 짧은 꽁트들부터 읽었다. 정말 재미가 없었다. 부산에서는 흔히 없는 맛없는 음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니맛 내맛도 없다. 이 단편집 속에 수록된 꽁트들은 딱 그맛이었다. 굳이 읽을 필요가 있..
2011년 사이버문학광장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소설 부문 심사평 각기 개성이 다른 열세 편의 작품을 읽는 과정이 즐거웠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응모자들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서술과 동시대 작가로서의 세대 감각, 안정된 구성력 등이 기성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본심에서 두 명의 심사위원이 주목한 작품은 , , , 등의 네 작품이었다. 은 전통적인 기법으로서의 소설적 미학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안정된 구성력이 돋보였으나 주제나 인물 캐릭터 설정에 있어서 기성작가의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시감이 강하다는 것은 상투적이고 전형적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은 흥미로운 도입부와 결말의 반전이 주목을 끌었다. 소설 도입부의 임산부 출산 장면은 환상과..
내 유년의 업 2007년 봄부터 2008년 여름까지 문산 내포리 작은 숲속에 있던 행복한학교에서 교사로 지내며 참 행복했다. 4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흘렀다. 파주 출판단지에 있던 청미래학교와 합쳐져 12년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파주자유학교'가 된 행복한학교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먼 여정을 끝내고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다. 내게는 고질적인 질병이 있었는데, 바로 편두통이었다. 일주일 중 3일 정도는 편두통에 시달렸다. 온갖 동서양의 처방전을 두루 써보아도 한 때였다. 그러던 것이 행복한학교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다보니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제 난 편두통을 거의 겪지 않게 되었다. 나는 편두통을 내 평생의 지병으로 가져가야할 것이라 체념하고 있었다. 유년시절이란 어쩌면 하나의 사람이 평생 짊어지..
평생 외로움을 없애려고 갖은 수행을 해오신 어르신께서 외로운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외로움을 어찌하냐고. 나는 무심히 말했다. 명상을 1시간이고 1년이고 해도 외로움이란 건 없어지지 않더라고. 단지 할 수 있는 것은... 외로움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 것 뿐이라고. 외로움과 오랜 부부처럼 손잡는 것 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고통이란 무엇일까 고통이란 피가 돌고 달이 뜨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일까 외로움이란 고통일까 분노란 고통일까 슬픔이란 고통일까 그렇다면 어찌하여 애정이란 고통이 아닐까 용서란 고통이 아닐까 기쁨이란 고통이 아닐까 외로움이 고통인 것은 그것이 애정이 아닌 까닭이고 분노가 고통인 것은 그것이 용서가 아닌 까닭이며 슬픔이 고통인 것은 그것이 기쁨이 아닌 까닭이다. 그러나 외로움도 분노도 ..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참가자들에게 '말하듯이 불러라'라고 조언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언뜻 아, 그렇구나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 애매모호한 말이다. 헌데 여기 그 정답이 있다. 양희은이다. 양희은 씨는 말하듯이 부르는 노래란 무엇인지 이 음반을 통해 그 진수를 보여준다. 한참 음악에 취미를 갖고 즐겨듣던 중고교시절 내게 '양희은'이라는 이름을 각인 시킨 것은 아이엠에프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캠페인송이었다. 그렇다. 바로 그 '상록수'다. 깨치고 일어나 끝내 이기리라~ 고 호소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높은 파도 소리처럼 들렸다. '아침이슬',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상록수 원제)' 등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노래를 부른 양희은을, 당시 나는 성악가 같은 성량으로 대곡을 위주로 부르는 지..
동물원킨트저자배수아 지음출판사이가서(주) | 2002-10-04 출간카테고리소설책소개배수아는 이번 소설에서 동물원을 통해 이방인이 되면 자신에게 피...글쓴이 평점 누군가 아무런 인사를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 해도 "심봤다!' 라고 외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어. 킨트, 네가 쓴 너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야. 아니, 자서전이 아니라 수기? 아니야. 네가 쓴 소설인 건가? 아무튼 내가 바라는 건 모쪼록 네 눈이 아직은 이 글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정도였으면 좋겠다는 거야. 글자 포인트 크기를 높일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으려해. 왜냐고? 너의 눈에게도 혹시 자존심이란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난 너와 친해지고 싶거든. 그러니 조심해야지. 너의 글을 읽고 문득 나도 동물원에 가고 싶어졌어. 특히 네가 "동물원 킨트는..
점심 시간에 이와 같은 제목의 글을 쓰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하는 질문은 잠시 뒤로 하자. 권도원 선생의 8체질 의학에 의거하여 분류하자면 수양(水暘) 체질에 해당하는 나는 화장실에 장기간 체류할 수밖에 없는 운을 타고 났다. 덕분에 화장실에 체류하는 기간 동안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유년시절부터 화장실에 갈 적이면 만화책이든 뭐든 손에 읽을 거리를 항상 가지고 갔다. 그 습관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헌데 이 것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변의를 느끼고 화장실에 달려가야 할 때면 대체로 촌각을 다투는 위급상황일 경우일 텐데 이 때에도 나는 항상 어떤 책을 가지고 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우선 살피는 것은 언제나 소설 코너이다. 장편을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
Asian Prescription - /이엠아이(EMI) 나의 20대 전반부를 소개해보라고 했을 때 이 음반과 이상은(정확히는 당시의 '리채')을 빼놓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나의 청춘은 이상은으로부터 시작되어 이상은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음악은 내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상은과의 만남은 당시 하루종일 국내외의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던 엠넷 채널을 통해서였다. 1999년은 종말에의 기대와 공포가 교차하던 시기였다. 사람들의 마음은 불안하고 공허하기 그지 없었다. 내 마음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고3이었고 때는 여름방학이었다. 매미가 울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방안에 혼자 반쯤 누워 엠넷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데 리채(이상은)의 '어기여 디어라'가 흘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