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꼬는 스위트피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스위트피는 아사꼬 같은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을 떠올리면 자연히 '인연'과 '아사꼬', 그리고 '스위트피'가 연달아 온다. 옛 인연을 떠올리고, 어느 봄날의 아사꼬를 잠시 불러 만나고 나면, 마지막은 스위트피의 차례다. 스위트피를 만지려고 손을 내밀면 또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 씨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의 음악이 생각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은 '섬'이었다. 비록, 작사와 작곡은 재주소년이 한 것이지만 첫 가창부터 스위트피에게 맡겨진 곡이었기에, 내게는 여전히 스위트피의 곡으로 남아 있다. 피천득 선생과 아사꼬, 그리고 스위트피와 섬이 나란히 마음 속에서 일렬로 배열이 되는 날이 있다. ..
커피는 한밤에 마시는 것이 맛있다 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정확한 통계 수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엊그제 내렸던 커피가 정말로 맛있었던가 하고 떠올려보면 어쩐지 불확실해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도 본래 '한밤의 커피'라고 하려다가, '커피는 한밤중'으로 전격 교체되었다. 아시다시피 커피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커피를 한밤중에 마시고도 아무렇지 않게 잘 수 있었던 연령대가 정확히 언제까지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서른셋 무렵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아니다. 어쩌면 그 시절에는 대안학교 교사회의를 마치고 집에 새벽에 들어와 커피를 내릴 새도 없이 곯아떨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까페 지점을 맡아 커피드리퍼로 온종일을 살았던 서른넷..
오래 기다렸던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렸다. 되돌아보면 2012년 12월부터 내 마음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이 세상의 실질적인 변혁이었다. 줄곧 내 내면으로 향해 있던 에너지가 드물게 외부의 세상으로 강하게 뻗어나갔던 시기였다. 어쩌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온전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바라던 세상의 실질적인 변화는 이제 막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밖으로 향하던 에너지를 불러모아서 다시 내 삶과 내면으로 향하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세월은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간다. 30대의 문턱을 어제 갓 넘었던 것 같은데, 어느 새 나를 '청년'이라고 지칭하는 게 맞을지 주저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손에 쥔 것 중에는 그닥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만한..
삶의 리듬이라고 쓸까하다가 '생生'의 리듬이라고 쓴다. 생에는 리듬이 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저마다 어울리는 생의 리듬이 있다. 어떤 생의 리듬은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것 같고, 또 다른 생의 리듬은 사랑을 기다리며 떨어지는 꽃잎을 세는 것과 같다. 내게 어울리는 생의 리듬은 생후 오개월 정도 된 오리가 마음을 굳게 먹고 태평양을 건너가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다.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마치 딱따구리처럼 살았다. 사실 지난 몇 년이라고 할 것도 없다. 생의 대부분을 어울리지 않는 리듬에 맞춰 산 것만 같다. 어느 한적한 초여름에 그늘이 진 벤치에 앉아, 소리 없이 호수에 떨어진 나뭇잎이 파문을 그리는 장면을 천천히 바라보는 것과 같은 리듬으로 살아가고 싶다. 아마도 그러자면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이나..
모두가 글을 쓰는 세상이다. 비디오 스타가 라디오 스타를 죽이는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났고, 영상이 인류의 언어를 대체하리라고 예상했던 20세기 말의 미래학자들은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게 됐다(무덤 속에서 그 일이 가능하다면). 오히려 21세기 인류는 그 어느 시대보다 훨씬 더 문자를 많이 쓰고 읽는 인류가 되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을 켜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쓴 글의 독자가 된다. 가끔 우리는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리트윗된 내 글의 독자가 스스로 되기도 한다. 점점 인류는 자기 스스로 글쓴이이자 독자가 되어간다. 문자는 이제 중세 시대처럼 특정 계층의 사유물도 아니고, 고등한 교육을 받아야만 습득할 수 있는 기술도 아니다. 지식과 정보는 문자만 알고 있으면 '검색'을 통해 금방 획..
#1. 오리와 윤동주 윤동주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대표단을 선발하라고 한다면 이 시를 빼놓을 수 없다. 귀뚜라미와 나와 귀뚜라미와 나와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귀뜰귀뜰귀뜰귀뜰 아무게도 알으켜 주지 말고우리 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귀뜰귀뜰귀뜰귀뜰 귀뚜라미와 나와달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윤동주 시인은 달빛이 엎질러진 잔디밭 위에 누웠을 것이다. 캄캄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을 헤아렸을 것이고, 적막을 채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별의 소리처럼 느꼈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귀뚜라미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아무게도 알으켜 주지 말'자고 약속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으리라. 누구에게나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혹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이야기가 있다. 나와 오리 사이의 이야기가 그렇다. #..
누군가이든, 어떤 꿈 속의 삶이든 개봉하던 첫 날 바로 영화 를 보았다. 추석 연휴 기간이었다. 지금은 윤상의 음악을 듣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에게 우디 앨런 감독을 우디 앨런 감독이라고 불러본 일이 없다. 나는 항상 그를 우디 '알렌' 감독이라고 호칭했다. 지금까지 나열한 말들 사이에는 서로 아무런 개연성이 없어 보인다. 단지 나라는 사람 속에서 자연스러운 순서에 따라 흘러나온 말들이라는 것 외에는 말이다. 에 대해 단 한 줄의 평만이 허락 된다면 이렇게 말하고 말겠다. 그 영화요? 첫사랑의 추억에 사로잡힌 사람의 흔한 연애담이지요. 지겹게 반복되고 변주되어 온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허락된 것은 한 줄이지만 결국 두 줄에 걸쳐 이렇게 말하고 말 것이다. 영화관을 나서며 '쳇, 뭐야?' 라고 속..
"수는 이번에도 10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여자를 따라갔다. 여자는 딱 한 번 멈춰 서서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오랫동안 통화를 하긴 했지만 그 외엔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 부지런히 여자를 따라가다 보니 여자가 어디로 가는지 어느 순간 분명해졌다. 바람이 신선했다. 바람이 가는 곳은 여름의 끝일 터였다. " - 조해진 194P 여름을 지나가고 있다. 바람은 차가운 곳에서 뜨거운 곳을 향해 분다. 대류 현상 탓이다. 공기는 풍부한 곳에서 희박한 곳으로 움직인다. 뜨거워진 공기가 대기의 상층부로 올라가버린 빈 자리에 상대적으로 차가운 공기가 흘러와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바람이 가는 곳은 여름의 끝"이라는 말을 한참 동안 생각했다. 여름의 끝은 어디일까. 지구의 적도 부근이 역시 여름의 끝인 것일까.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