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외로움을 없애려고 갖은 수행을 해오신 어르신께서 외로운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외로움을 어찌하냐고. 나는 무심히 말했다. 명상을 1시간이고 1년이고 해도 외로움이란 건 없어지지 않더라고. 단지 할 수 있는 것은... 외로움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 것 뿐이라고. 외로움과 오랜 부부처럼 손잡는 것 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고통이란 무엇일까 고통이란 피가 돌고 달이 뜨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일까 외로움이란 고통일까 분노란 고통일까 슬픔이란 고통일까 그렇다면 어찌하여 애정이란 고통이 아닐까 용서란 고통이 아닐까 기쁨이란 고통이 아닐까 외로움이 고통인 것은 그것이 애정이 아닌 까닭이고 분노가 고통인 것은 그것이 용서가 아닌 까닭이며 슬픔이 고통인 것은 그것이 기쁨이 아닌 까닭이다. 그러나 외로움도 분노도 ..
16.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개 대담회 에 대한 국민적, 아니 세계적 관심은 엄청난 것이었다. 동시간대 시청률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을 끌어내리고 시청률 1위에 올라선 것은 물론, 그 수치는 38.1%라고 하는 상상할 수 없는 숫자에 이른 것이다. 국내 시청률에 잡히지 않은 전 세계 시청률까지 합치자면 그 기록은 아마 1964년 비틀즈가 미국에 상륙한 순간을 실시간 중계한 방송의 순간 시청률를 뛰어넘는 것이었을 거다. 덕분에 나는 연말에 공중파 3사에서 공동으로 개최한 통합 연예대상에서 최고의 시사프로그램상과 최고의 피디상, 2개 부문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댓가로 방송 이후 쏟아지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 - 와 관련된 인터넷 기사만 589건이 양산되었다. -..
15. 진보와 진화 8 압 : 오 프리덤. 정치적 진보주의자들은 항상 정치사회적 현실을 극복하려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좀 더 나은 사회, 좀 더 자유가 확대된 사회, 좀 더 인간의 기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향해 발전해왔습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그 기본권 존중의 대상이 인간을 넘어서 삼라만상에까지 그 범주가 넓혀져 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세상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허나 자라면서 저는 한 가지 큰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가령 이런 것입니다. 만약 날이 덥다면 우리는 옷을 벗으면 됩니다. 그리고 날이 춥다면 옷을 입으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발전해오지 않았습니다. 날이 더우면 인간은 주변의 기온 자체를 낮추어버립니다. 날이 추우면 물론 그 반대로 합니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참가자들에게 '말하듯이 불러라'라고 조언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언뜻 아, 그렇구나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 애매모호한 말이다. 헌데 여기 그 정답이 있다. 양희은이다. 양희은 씨는 말하듯이 부르는 노래란 무엇인지 이 음반을 통해 그 진수를 보여준다. 한참 음악에 취미를 갖고 즐겨듣던 중고교시절 내게 '양희은'이라는 이름을 각인 시킨 것은 아이엠에프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캠페인송이었다. 그렇다. 바로 그 '상록수'다. 깨치고 일어나 끝내 이기리라~ 고 호소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높은 파도 소리처럼 들렸다. '아침이슬',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상록수 원제)' 등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노래를 부른 양희은을, 당시 나는 성악가 같은 성량으로 대곡을 위주로 부르는 지..
동물원킨트저자배수아 지음출판사이가서(주) | 2002-10-04 출간카테고리소설책소개배수아는 이번 소설에서 동물원을 통해 이방인이 되면 자신에게 피...글쓴이 평점 누군가 아무런 인사를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 해도 "심봤다!' 라고 외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어. 킨트, 네가 쓴 너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야. 아니, 자서전이 아니라 수기? 아니야. 네가 쓴 소설인 건가? 아무튼 내가 바라는 건 모쪼록 네 눈이 아직은 이 글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정도였으면 좋겠다는 거야. 글자 포인트 크기를 높일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으려해. 왜냐고? 너의 눈에게도 혹시 자존심이란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난 너와 친해지고 싶거든. 그러니 조심해야지. 너의 글을 읽고 문득 나도 동물원에 가고 싶어졌어. 특히 네가 "동물원 킨트는..
사랑의 트위스트 문자 메시지를 열어보니 이번에도 서류모집에서 탈락이었다. 분명 작년 가을에 40번째 입사 서류를 작성했다. 지금은 1월이고 그동안 꾸준히 자소서따위를 작성해 왔다. 어느 순간부터 횟수를 헤아리지 않게 되었다. 수 천명에 달하는 응모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거는 수고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회사측의 입장도 이해한다. 그럼에도 기분이 나쁜 것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기계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입사원서의 빈칸을 채워나가게 되었다. 적어도 10번째까지는 이렇지 않았다. 물론 5번째나 6번째부터였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 아, 혹자에게는 무척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 내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면 65번째를 채우는 일이었다. 그런 극단적인 목표를 ..
점심 시간에 이와 같은 제목의 글을 쓰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하는 질문은 잠시 뒤로 하자. 권도원 선생의 8체질 의학에 의거하여 분류하자면 수양(水暘) 체질에 해당하는 나는 화장실에 장기간 체류할 수밖에 없는 운을 타고 났다. 덕분에 화장실에 체류하는 기간 동안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유년시절부터 화장실에 갈 적이면 만화책이든 뭐든 손에 읽을 거리를 항상 가지고 갔다. 그 습관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헌데 이 것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변의를 느끼고 화장실에 달려가야 할 때면 대체로 촌각을 다투는 위급상황일 경우일 텐데 이 때에도 나는 항상 어떤 책을 가지고 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우선 살피는 것은 언제나 소설 코너이다. 장편을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