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작사/곡 멀고느린구름 구름 사이로 파란 새를 보았네 노을 진 하늘 색칠하듯 날으네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에서 왔을까 하늘을 나는 저 새는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에서 왔을까 모르지… 나 길을 걷고 걸어도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에서 왔을까 모르듯 구름 사이로 붉은 새를 보았네 떠나간 너의 그림자를 닮았네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에서 왔을까 하늘을 나는 저 새는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에서 왔을까 모르지 바람에 실린 기억이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에서 왔을까 모르듯 구름 사이로 파란 새를 보았네 구름 사이로 붉은 새도 보았네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지우네 지우네
일곱째 날 마지막 글이다. 간신히 눈을 떠서 손가락에 남은 힘을 모으고 있다. 지금이 여전히 어제인지 다음날인지조차 확실치 않구나. 모텔의 암막창은 굳게 닫혀서 빛 한 조각도 허용하지 않아, 밤인지 낮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는다. 어쩐지 그것이 이 아빠가 살아온 인생이었던 것만 같구나…. 네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너는 기묘하게도 그 사람의 모습을 닮아갔다. 나는 그것을 그 사람이 세상에 원(怨)이 남아 너를 통해 내게 호소하려 한다 여겼다. 너를 아끼는 한 편, 너 이외의 것은 아끼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 곳에 와서 그 사람과 만났던 곳을 걷고, 그 사람의 일들을 다시 떠올려 보니… 내가 오래 착각해왔던 것은 아닌가 싶구나. 이제서야. 이제서야 말이다. 나는 그 사람의 원을 풀기는 커녕 되려 나라는 사..
여섯째 날 딸아, 손아귀에 좀처럼 힘이 주어지지 않는구나. 펜을 들어 글씨를 쓰는 일조차 온 힘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은 아주 늦잠을 자버렸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 알뜰하게 쓰고 싶었는데 말이다. 정오가 지나서야 눈을 떴다. 하마터면 눈을 못 떴을지도 모를 일이니… 그렇게라도 깨어난 것에 감사해야겠구나. 커튼을 열어보니 햇살이 정말 눈부셨다. 햇볕이란 것이 이토록 따스하고 환한 것이었는지 미처 알지 못하고 살았다. 해변으로 나가 좀 걸었구나. 그 사람과 함께 어머니의 유골을 떠나보낸 곳에 섰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그 사람의 손길 같았다. 그리웠다. 그 사람뿐만이 아니다. 모든 지나간 것들. 잘못 보낸 시간들. 내가 내 스스로 망쳐버린 아름다운 순간들. 어린 ..
다섯째 날 사랑하는 딸아, 다시 날이 밝았다. 그리고 아빠는 아직 살아 있구나. 다행이다. 신은 아직 내게 이 이야기를 끝마칠 기회를 주려는 것 같다. 그래, 끝마쳐야겠지. 나는 지금 어제와는 다른 숙소에 있다. 창을 열면 동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이야. 오늘 아침 일찍 동해로 옮겨 왔다.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었다. 이 해변은 네 엄마와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네 엄마가 한 번 와보고는 반해서 여름이 될 때마다 오자고 조르던 곳이란다. 하지만 네 엄마와 오기 전에는 그 사람과 처음 이곳에 왔었다. 딸아, 네가 나를 싫어하게 되었다는 것을 잘 안다. 아냐, 그래.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경멸하게 되었다는 것을. 사랑하던 이의 타락과 추악은 무엇보다 깊은 상처를 남기는 법이지. 네가 노동운동을 하면서 목격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김영하는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작가이기도 하다. 지금의 김영하가 있게 만든 를 읽었을 고교생 시절에는 한국에도 유럽 본토에 대적할만한 신인이 나왔다! 고 감격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읽은 이나 의 경우 그만한 감흥을 받지 못했다. 그 뒤로는 다소 게으르게 그의 작품들을 읽어왔다. 는 한 해 동안 국내의 굵직한 상들을 두루 수상하던 시기에 발표해 화제를 모았던 이후 그가 오랜만에 출간한 단편집이다. 읽기 쉬운 것부터 읽어가는 내 독서 방식 대로 짧은 꽁트들부터 읽었다. 정말 재미가 없었다. 부산에서는 흔히 없는 맛없는 음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니맛 내맛도 없다. 이 단편집 속에 수록된 꽁트들은 딱 그맛이었다. 굳이 읽을 필요가 있..
넷째날(3)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서서히 의식이 사라지는 느낌에 익숙해지려고 하고 있단다. 죽음도 이리 잠드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모르긴 몰라도. 샤프를 쥔 엄지와 검지 손가락이, 그리고 손목이 저리다. 눈은 침침하고. 글을 쓰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구나. 아주 간단히 쓰려고 했다. 그래, A4 용지 한 장 정도로 쓰려던 이야기였다. 헌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 이리도 많은 말들이 빽빽하게 종이를 채우고 있다. 이제 그 사람과 세번째로 만난 주말에 대해 쓸 차례구나. 주저스럽다. 네 엄마와 연애담이라면 차라리 나을 테지. 하지만 네가 그간 듣도 보도 못한 외갓 여인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네게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이 기억이 나에게서 누군가에게로든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2011년 사이버문학광장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소설 부문 심사평 각기 개성이 다른 열세 편의 작품을 읽는 과정이 즐거웠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응모자들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서술과 동시대 작가로서의 세대 감각, 안정된 구성력 등이 기성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본심에서 두 명의 심사위원이 주목한 작품은 , , , 등의 네 작품이었다. 은 전통적인 기법으로서의 소설적 미학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안정된 구성력이 돋보였으나 주제나 인물 캐릭터 설정에 있어서 기성작가의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시감이 강하다는 것은 상투적이고 전형적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은 흥미로운 도입부와 결말의 반전이 주목을 끌었다. 소설 도입부의 임산부 출산 장면은 환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