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대인류 공개 대담회, ‘진보와 진화’ 대담회의 주제는 ‘진보와 진화'로 결정했다. 양말 벗기 무브먼트 측 패널로는 압둘 아자르와 그의 통역을 담당하고 토론을 지원할 국내 영성 연구가 최교종 씨가 확정되었다. 양말 공장 측 패널은 노동자 대표 고 씨와 유명한 진보논객 진정겸 씨로 결정되었다. 보조 패널을 섭외한 것은 사측이었다. 기왕하는 대담회인데 화끈하고 집요하게 들어가 보자는 것이었다.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사회자를 맡았지만 진행을 잘하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다. 단지 압둘 아자르와 고 씨가 주고 받을 이야기에 흥미가 있을 뿐이었다. 주제는 진정겸 씨와 최교종 씨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었다. 진정겸 씨는 “진보하지 않은 사회에서 종교적 진화 운운하는 것은 알파벳을 익히지 않은 상태..
6. 압둘 아자르와의 단독 인터뷰 3 의전차는 어느덧 한남대교를 건너 장충체육관 방향으로 막힘없이 달리고 있었다. 승부를 걸어야 한다. 결국 포인트는 내가 압둘 아자르를 논리로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렵사리 이 차에 오른 목적은 압둘 아자르와 고씨를 만나게 하는 데 있었다. 전략을 바꿨다. “한 노동자의 일생에 대해 관심이 있으십니까?” “저는 모든 중생의 일생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모든 중생의 일생은 모든 중생에게만 의미 있을 뿐, 한 노동자의 일생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 한 노동자는 모든 중생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한 노동자는 단지 한 노동자일 뿐. 모든 중생이 아닙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서 마스터의 양말 벗기 무브먼트는 모든 중생은 구원할 수 있을지 ..
5. 압둘 아자르와의 단독 인터뷰 2 S 호텔에 도착하기 전까지 승부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가용한 시간은 1시간 남짓. 한 인간을 설득하는 데에는 무리 없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보통의 인간이 아니었다. 외국인인 데다가 세계적인 성자였다. 성자와의 인터뷰 경험은 없었다. 달라이 라마는 여전히 당국에 의해 입국이 거부되고 있었고, 틱낫한은 베트남을 좀처럼 떠나지 않았으며, 테레사 수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오쇼 라즈니쉬 역시 수 많은 국내 팬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방한하지 않았다. 그렇게 헤아려 보니 이것은 보통 인터뷰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세계적인 성자와 나누는 첫 인터뷰였던 것이다. 피차 영어발음은 토속적이다. 그렇다면 승부처는 내공이다. 성자의 내공을 이겨낼 수 있을까. 압도 ..
4. 압둘 아자르와의 단독 인터뷰 1 압둘 아자르는 유유히 모세의 기적이 재연된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대로는 놓치고 만다. 나는 촬영보조 장 군에게 극비 지령을 내렸다. 가뜩이나 비정규직인 친구에게 그런 지령을 내려도 되는가 하는 윤리적 고민이 선행되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계산적인 인간이었다. 장 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신호를 보냈다. 장 군은 홍해의 한 가운데로 용감하게 뛰어들었다. 첨벙. “압둘 아자르 씨! 인터뷰 좀 부탁드립니다!” 라는 대사를 완벽하게 외치며 장 군은 압둘 아자르 앞에 멋지게 슬라이딩을 했다. 기자들의 플래시가 정신없이 터져서 누구도 압둘 아자르 앞에 드러누워버린 인물의 정확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당황한 보디가드들이 장 군의 사지를 붙들었다. 압둘 아자르를 태울 차..
3. 오직 벗고 또 벗을 뿐. 예상은 했지만 압둘 아자르를 섭외하는 일은 순탄치 않았다. ‘양말 벗기 무브먼트'의 한국지부장을 만나는 일은 커녕 통화하는 일조차 힘들었다. 교환원을 통해 대외홍보부서로 연결한 후, 대외홍보부서의 실무자를 거치고, 홍보부장을 지나, 비서실에 도달해, 비서3에 의해 비서실장과 겨우 연락이 닿으면, “죄송합니다. 지부장님은 오늘 출타 중이어서 통화가 어렵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제기럴. 통화 약속을 잡으려고 하면 213번째로 대기 시켜주겠다는 대답따위를 겨우 들을 뿐이었다. 무언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간간히 압둘 아자르의 대표저서인 , , , 따위를 탐독하며 새로운 방법을 궁리했다. 실마리를 제공해준 것은 역시 와이티엔 뉴스였다. 항상 가던 도서관 휴게실에 앉아 중,..
2. 양말 공장 노동자 대표 고 씨 500평 남짓의 양말 공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플래카드에도 예의 그 문구가 써있었다. ‘압둘 아자르를 고소합니다. 그놈 때문에 공장 망했습니다. 전 품목 90% 세일!’ 커다란 철문은 활짝 열린채로 양쪽 기둥에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수위실에 수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를 몰고 공장 안까지 들어가 반듯하게 그어진 주차선 안에 차를 대고 내렸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사장실이 있을만한 건물을 찾는데 80미터 부근에 푸른 천막이 보였다. 기다란 테이블이 늘어서 있고, 작업복으로 여겨지는 복장을 입은 몇몇 사람이 서서 무언가를 분주히 정리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한 사람이 내 쪽을 알아채고 하던 일을 멈추고 황급히 달려나왔다. “아이구 오셨습니까. 오 기자님!” ..
1. 압둘 아자르를 고소합니다 인간의 해방은 어디에서 오는가. 종교인가. 혁명인가. 쾌락인가. 그도 아니면 노동인가. 나는 이른 바 ‘양말 벗기 무브먼트'를 전세계적으로 확산 시키고 있는 압둘 아자르와 그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된 한 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양말 벗기 무브먼트'로 인해 인생이 파탄 지경에 이른 노동자 고 씨(실명 밝히기를 거부함)의 사연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였다. 대구의 평균 온도가 34도에 이른다는 기상 보도가 나왔던 지난 여름이었다. 형편 없는 풍력을 자랑하는 1000원짜리 문구점 부채를 부치며 도서관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길가의 전봇대에 지저분하게 붙은 벽보의 자극적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압둘 아자르를 고소합니다. 그놈 때문에 공장 망했습..
건너지 마시오 음 그렇다. 저건 ‘건너지 마시오.’다. 분명히 횡단보도에서 검은 색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지면 ‘건너지 마시오.'라는 뜻이다. 주황빛처럼 건널까 말까도 아니고 명백히 거기 멈추라는 뜻이다. 단호하고 결의에 찬 빛깔이다. 200미터쯤 떨어진 거리에서 초록불빛을 발견하고 우사인 볼트마냥 전력 질주해왔건만 코 앞에서 신호등은 빨간불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도무지 세상은 불공평 투성이다. 모든 것이 운에 의해 좌우될 뿐 사력을 다해 노력해온 사람에게는 좀체 마땅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다. 툴툴거리며 횡단보도 앞에 서있자니 마음 속에서 악마가 마이크를 잡는다. “이봐, 바보냐. 그냥 건너라고. 시간이 아깝다 정말. 보라고. 차도 한 대 안 다니잖아. 게다가 여긴 정식 횡단보도도 아니잖아. 속 터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