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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리뷰

알려지지 않을 여름밤

멀고느린구름 2013. 6. 29. 10:34


  작년 여름, 장재인의 '여름밤' EP 음반이 발매되었다. 음반에 수록된 동명의 타이틀곡 '여름밤'을 나는 무척 사랑하게 되어 이제 여름만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이런 날에는 역시 '여름밤'이지." 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어제와 엊그제, 그리고 오늘, 아마도 내일 역시 '여름밤'을 듣게 되지 않을까 싶다. 


  봄이라는 계절이 시작의 의미와 풋풋함의 정서를 지니고 있다면 역시 여름은 열정과 절정의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싱그럽게 빛나는 초록 잎새들과 쨍한 거리, 몸을 들뜨게 하는 온도. 여름에는 아무래도 청춘이 어울린다. 질주와 일탈, 무모함과 공허라는 단어들도 떠오른다. 장재인의 '여름밤'에는 어쩐지 그런 모든 것들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대체로 나의 여름에는 이별 사건이 많았다. 아주 어린시절에는 어머니가 집을 떠났고, 대학시절에는 온 마음을 쏟아부었던 첫사랑과 이별했으며, 이후에는 오래 사귄 연인과도 여름에 이별하게 되었다. 덕분에 20대가 된 이후 나는 여름을 온전히 마주하며 보낸 기억이 많지 않다. 내게 여름은 곧 '여름밤'과 동의어이며, 내 기억 속의 여름은 항상 밤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혼자 남은 아픔을 텅빈 방에서 홀로 견디며 맞이했던 열대야의 밤들. 끊임없이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책하고 망설이고, 무모하게 집착했던 시간들이 나만이 가진 여름밤의 정념들을 형성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로 돛을 올리는 일과 같다.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너머가 궁금해지는 것처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수평선을 향해 무모한 항해를 하고 만다. 허나 누구도 나만의 여름밤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여름밤은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여름밤인 것이다. 한 사람에게는 그런 여름밤과 같은 것들이 무수히 많다. 김동률은 그래서 '고독한 항해'를 불렀고, 이적은 '순례자'를 노래했다. 우리는 서로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섬들 사이를 노저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대하고 만다. 장재인의 '여름밤'을 들으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타인과 내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만 같은 감각을 느끼며... 언젠가 누군가와 나는 서로를 진실로 이해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만다.     


  사람의 인생은 참으로 짧고,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무의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쌓은 탑이 몇 백년을 가겠는가. 우리의 이름이 몇 천년 뒤의 교과서에 쓰인들 그것이 지금의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과거와 미래라는 시공간은 그저 인간의 머릿속에서만 심대한 의미를 지닐 뿐. 나는 그저 잠시 이곳에 왔다가 알려지지 않을 여름밤을 가슴에 묻은 채 다시 돌아갈 사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이 뛴다. '여름밤'을 들을 때. 나와 같은 여름밤을 보내었을, 보내고 있을, 보내게 될 벗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 어쩐지 미소가 떠올라 오는 것이다. 삶이 유한하든 무한하든, 의미가 있든 없든, 그 순간의 기쁨은 우주의 목숨보다 소중하다. 




2013. 6. 29.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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