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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떠나고 난 다음 날 숙소는 적막했습니다. 단풍잎 같은 깃털을 단 작은 새의 울음 소리가 창을 넘어오고, 가을볕은 투명한 강물처럼 넘실거려, 어떤 인생의 절정을 내게 선사하려는 것 같았지만... 나는 이불 속에서 멍하니 휴대폰 속 당신의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스물여섯, 스물일곱, 스물여덟, 스물아홉의 미소와 그 속에 깃든 우리의 계절들을. 그대로 당신을 따라 공항으로 달려갈까 싶었지만, 어젯밤 짐짓 의연하게 당신을 배웅했던 일이 떠올라 숨을 골랐습니다.
간신히 이불 속에서 나와 숙소에서 주는 모닝토스트를 먹으러 갔습니다.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나를 위해 미리 지배인에게 이틀치 조식을 예약해두었으니, 꼭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당신은 떠났지요. 모닝토스트는 바삭하고, 촉촉했습니다. 우유는 신선했고요. 그러나 맛은 없었습니다. 며칠 전 하이델베르크행 열차에서 당신과 나눠먹었던 빵의 이름을 생각해내느라 맛을 즐길 여유가 없었거든요.
카메라를 챙겨 당신이 없는 거리로 나왔습니다.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 200km이상 떨어진 일은 없었는데, 그때 나는 독일에 있고, 당신은 한국에 있었으니 우리는 사상 최대로 멀리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나기 이전에 우리는 서로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살았던 것과 마찬가지인데, 저는 그날 이상하게도 처음 당신의 부재를 감각했습니다. 카메라를 들어 잡지에 실을 사진들을 촬영했지만, 어느 장면도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당신과 함께 처음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 독일의 거리를 거닐었을 때는 모든 장면이 놀랍도록 눈부셨는데, 당신이 떠나며 독일의 모든 마을은 빛을 잃은 것만 같았습니다.
도로 위 선로를 달리는 귀여운 전차에 몸을 싣고, 좀 더 멀리 있는 마을까지 가봤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해에 우리는 자주 목적지 없는 여행을 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버스의 번호를 가위바위보로 정하고, 무작정 올라타서 끝까지 가보는 것이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는 청춘의 끝을 향한 여행을 반복했습니다. 버스의 쪽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잠든 당신의 머리칼을 흔들고, 우리가 맞잡은 손에서 진한 온기가 서로에게 흘러드는 찰나를 나는 사랑했습니다. 이상하죠. 그 찰나의 순간들은 봄에 흩날리는 벚꽃잎들처럼 무질서하게 시간의 이쪽과 저쪽에 떨어져 있습니다. 과거에도 있고, 지금 내 곁에도 있고, 그리고 아마 내일과 다음 달, 몇 해 뒤에도 다시 만나겠지요. 사람은 대체 어디에 살고 있는 걸까요. 전차의 좌석에 앉아 하이델베르크를 떠돌던 저 역시 그곳에 앉아 있던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할 다음의 여행을 그리며, 상상의 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마을에 내린 저는 무심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이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한적한 골목 사이를 거닐었습니다. 누군가는 제가 찍은 사진의 한 장면을 잡지에서 보고, 그곳으로의 여행을 결심하게 되겠지요. 잡지사에서 일하는 동료기자가 아마 무심한 제 사진에 그럴싸한 문구를 달아줄 겁니다. 아마도 ‘힐링’이라는 표현 같은 게 들어가게 될 테지요. 하지만 정작 사진을 찍는 당사자는 셔터를 누를 때마다 영혼이 소모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마법을 쓸 때마다 MP가 소모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MP가 바닥이 났을 즈음, 이른 시각 문을 연 빈티지 소품점을 발견했습니다.
가게는 4평 남짓의 아주 작은 크기여서, 제가 들어서자 의자에 앉은 백발의 독일할머니와 대치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한 번 흘끗 올려보더니, 곧 의자에 앉은 채로 뜨개질을 계속해나갔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360도 회전을 하며 진열된 찻잔들과 색색의 유리병, 목각 인형들을 살폈습니다. 마음에 드는 커피잔이 있어 영어로 가격을 물었더니, 할머니는 독일어로 답을 했습니다.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어서, 휴대폰의 동시번역 앱을 켜고 다시 가격을 물었습니다. 번역앱 속 여성 통역사의 독일어가 할머니와 내가 가득 채우고 있던 긴장의 틈바구니로 끼어들었습니다. 할머니는 흥미로운 듯이 내 휴대폰에 머리를 기울이며 다시 독일어로 답을 했습니다. 여성 통역사는 “세상에나! 이상한 것 다 있습니다. 내 말을 이해합니까?” 라고 할머니의 말을 전달했습니다. 나는 짧게 “네. 거의 이해할 수 있어요.” 라고 답했어요. 여성 통역사가 말을 전달하자, 할머니는 진열장 아래 구석에서 마법처럼 조그만 의자를 만들어내더니 나에게 건넸습니다. 나는 그 의자에 앉아 긴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국의 여행자,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이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몇 분 동안 좁은 수로를 지난 뒤에 바다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숱한 슬픔을 낳은 세계대전에 대해 말했고, 이어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상흔에 대해서 생각을 나눴습니다. 최근 밝혀진 루이제 린저의 이중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고, 헤르만 헤세의 낭만성을 함께 그리워하기도 했습니다. 독일할머니는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길에서 마주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저는 이영애 배우의 사인회에 갔던 일화를 전했습니다. 독일할머니와 내 사이에는 묘한 유대감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 새 대화의 주제는 당신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헤어지기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독일할머니는 빈 잔에 김이 피어나는 커피를 다시 채워주며 말했습니다.
“모든 이별은 삶에 대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독일할머니는 40여년 전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베르너’ 라는 청년은 할머니의 첫 연인이었습니다.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네 번의 해를 함께 보내며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둘의 영혼은 하나의 영혼을 나누어 놓은 것처럼 잘 맞았지만, 서로에 대한 높은 기대 탓에 다툼도 잦았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영원의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 숙명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수를 꿈꾸던 베르너는 베를린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베르너의 꿈을 좇아 함께 베를린에서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베르너를 초청했던 회사는 소속 연예인의 스캔들로 갑작스레 문을 닫게 되었고, 베르너는 데뷔의 문턱에서 다시 버스킹 가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독일할머니는 베를린의 편집샵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직원 제안까지 받게 되었지만, 베르너는 시간이 지날 수록 목소리의 빛을 잃고, 새로운 곡도 쓰지 못했습니다. 독일할머니는 베르너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그가 분명 되살아나리라고 믿었고, 자신은 이 한 예술가의 혼을 되살리기 위해 태어난 거라고 여기며 야속한 시간을 견뎠습니다.
베를린에서의 삶이 두 해째를 맞이하던 날, 베르너는 독일할머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더 이상 나를 조롱하지 마라. 당신이 나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것 때문에 나는 더 괴롭다.” 독일할머니는 그 말을 들은 저녁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고 말했습니다. 숙명이라고 믿었던, 영원을 상상했던 모든 순간들이 부정당한 저녁이었다고. 기나긴 백일몽에서 깨어난 밤이었다고. 자신이 아주 오래 햇빛이 쨍쨍한 한낮의 거리를 걷고 있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칠흑 같은 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독일할머니는 다음날 베를린을 떠나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에 베르너는 유명한 가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아는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독일할머니에게 베르너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이나요. 하지만 독일할머니는 베르너의 이야기를 너무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털어놓게 된 것이 더 없이 홀가분하다고도 말했습니다. 저는 독일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후회하십니까?”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아니요. 그때 제가 그의 곁에 남아 더 견디는 것을 선택했다면, 그는 10년 뒤에도 거리에서 노래를 했을지 모릅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이별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선택하는 겁니다. 우리가 선택한 삶 속에 다시 상대의 이름이 들어 있다면 다시 만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멀어지는 것입니다. 때로 내가 원하지 않는 삶도 실은 언젠가 과거의 내가 선택한 삶입니다. 이국의 여행자, 당신도 기억하기 바랍니다. 오직 지금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꾸는 유일한 시간여행의 방법입니다.” 그때 독일할머니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났습니다. 할머니의 목소리와 통역 어플 속 여성의 목소리는 어느 새 한 사람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4평 남짓의 공간에 한 시간 정도를 머물렀을 뿐인데, 아주 긴 세월 동안 드넓은 세계를 유랑한 기분이었습니다. 독일할머니는 자신은 선약이 있으니 이만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며, 우리 앞에 놓여 있던 커피잔들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를 만나시나요? 내가 묻자 할머니는 대답했습니다.
"베르너."
2021. 4. 11.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