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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짧은 소설

새벽별의 냄새

멀고느린구름 2020. 11. 28. 07:14

새벽에 잠에서 깨어 내 작은 뜰에 나서니 새벽별의 냄새가 났다. 희붐히 밝아오는 하늘의 왼편 저 멀리에 방금 세수를 마친 것 같은 별이 빛나고 있었고, 11월의 찬 바람이 지났다. 아주 어리던 시절부터 익숙하게 맡아왔지만 이름은 갖지 못했던 어떤 냄새가 확 끼쳐왔는데, 이제 나는 그것을 ‘새벽별의 냄새’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냄새는 고향의 냄새 같기도 하고, 오래 애정한 겨울 스웨터의 냄새나 사랑하는 이의 손을 붙잡고 바라본 바다의 냄새 같기도 했다. 동화나 환상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별에서 오고, 별로 돌아간다고 종종 쓰여진다. 그러니 밤이 끝나고, 아침이 시작되는 순간의. 완전히 끝도 아니고, 완전히 시작도 아닌 어떤 찰나가 일으킨 냄새를 ‘새벽별의 냄새’로 부르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새벽별의 냄새를 거실로 가져온 채 갓 내린 커피를 마시니, 그 또한 여느 때와 다른 풍미가 느껴졌다. 일희일비. 내 마음의 진동은 초침을 따라 움직이고, 숨을 들이켜 바라볼 때마다 다른 얼굴을 보인다. 마치, 양자론에서 전자의 움직임을 포착하려고 할 때마다 위치와 규칙이 달라지고, 결국 실패하는 것처럼 마음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그 마음이 펼쳐낸 인생을 읽는 것은 오히려 쉬울까, 아니면 더 어려운 일이었을까. 보통의 우리는 다들 일희일비도 아닌, 그저 일희와 일비의 순간들만을 살아낼 수 있다. 기쁠 때는 기쁨만을 알고, 슬플 때는 슬픔만을 안다. 문득 마음이 가지런한 새벽, 마음이 아직 숨을 거두지도, 내쉬지도 않은 찰나, 서쪽 하늘에 걸려있던 영롱한 새벽별을 보았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의 기쁨 같기도 하고, 아주 먼 미래의 슬픔 같기도 하였다. 쓸쓸하고 사랑스러운 냄새가 났다. 새벽별의 냄새였다. 이제 아침이 오고 그 별은 사라졌지만. 

 

2020. 11. 28.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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