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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리뷰

요시모토 바나나 - 티티새

멀고느린구름 2013. 2. 1. 11:17
티티새 - 8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민음사


"불이 꺼지고, 이 병실이 거대한 어둠이 되면 정말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어. 울고 싶을 정도다. 울면 지치니까, 어둠을 견디는 거야."

"하지만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면, 햇살과 바닷바람이 불어 들어. 나는 아직도 절반쯤 감은 눈, 호나한 눈꺼풀 속에서 꾸벅꾸벅, 개와 산책하는 꿈을 꾼다. 내 인생은 형편없었어. 좋은 일이라고 해봐야, 그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을 만큼. 하지만, 이 바닷가 마을에서 죽을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야. 잘 있어."



  일본 현대 작가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요? 라고 소개팅 자리에서 누가 물어봐준다면 요시모토 바나나 씨입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상대방은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라서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 역시 바나나 라고 답할 수밖에 없으니까. 


  올 여름밤을 밝히며 읽었던 <N.P>에 이어 올 겨울밤을 밝힌 것은 <티티새>였다. 사실 순서가 서로 뒤바뀌었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티티새>는 바다와 여름의 한 철에 대한 이야기니까. 내가 태어난 곳은 밀양이지만 유년과 청소년 시절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줄곧 유년 시절을 보낸 부산이다. 감천초등학교와 다대고등학교 등 바다를 끼고 있는 학교를 졸업했다. 특히 다대고등학교는 1회 졸업생이기도 하고 창문을 열면 곧바로 수평선이 펼쳐지고 소금기 묻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어서 기억에 생생하다. 


  바다라는 장소는 특별하다. 그곳은 어쩐지 세상의 시작점인 것도 같고 세상의 끝인 것도 같다. <티티새>의 주인공 츠쿠미와 닮았다. 츠쿠미는 이제 막 인생의 문 앞에선 풋풋한 소녀이면서도 건강문제로 늘 죽음 앞에 서 있는 노인이기도 하다. 이 매력적인 캐릭터 곁에는 책 속의 화자 마리아가 있다. 마리아는 평범한 성장기의 소녀다. 물론 도쿄에서 첩으로 표현되는 엄마를 만나러 오는 양아버지를 두고 있는 인물이지만. * 국내의 작품에서 심각하게 이혼가정의 자녀를 묘사하는 것과는 달리 마리아는 상당히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부모의 연애를 관조한다. 이것은 일본 문학 및 영화, 드라마 등의 전반적인 분위기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 사회의 이혼율은 이미 상당한 수준을 넘어섰고,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청소년이 10명 중 3명 정도에 달하는 상황인데도 우리 사회와 예술작품은 아직까지 이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일본의 문학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상호 대등한,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바라보는 데 비해, 우리는 여전히 자녀를 부모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는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청춘이다. 아이에서 어른이 된 시점. 바닷가 마을을 떠나 도쿄라는 새롭고 거대한 세계 앞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 앞에서 조금은 주춤거리다 여름 방학이 되어 고향인 바닷가 마을을 찾는다. 츠쿠미를 만나고 츠쿠미가 사랑하게 된 남자 쿄이치도 만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매력은 여기서부터 유감없이 뿜어져 나온다. 아주 작고 소소한 이야기, 귀여운 로맨스로부터 광막한 우주로 뻗어나갈 것처럼 아득한 삶의 풍경을 길어올린다. 여름 밤, 바다, 강아지, 산책, 복수, 수영. '복수'라는 것만 빼면 특별할 것 없는 단어들의 나열이다. 이 단어들로부터 바나나는 우리네 삶이 죽음과 맞닿아 있고, 그것이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임을 담담하게 전해온다. 


  소설의 도입부를 여는 '도깨비 우편함' 에피소드는 마지막 에피소드인 '츠쿠미에게서 온 편지'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도깨비 우편함이란 것이 실제로 있는지도 모르겠다. 도깨비 우편함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소식들을 삶 저편의 세계, 저승으로 전해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도깨비 우편함을 통해 우리는 이성으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알게 모르게 저승의 소식 또한 이쪽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승의 사람과 저승의 사람은 이승에서 하는 것처럼 서로 마주보며 대화할 수는 없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모종의 영향을 주고 받고 있는 것이다. 


  죽음 가까이에 가 있는 츠쿠미는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삶의 열정을 회복하고, 삶에서의 추억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선다. 삶과 죽음은 서로 배척해야 할 것이 아니라 손을 잡고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함께 가야할 것이 아닐까. 갑자기 변화한 세계, 새로운 삶 앞에서 마리아는 츠쿠미를 떠올린다. 끊임없이 살아나는 츠쿠미의 생명력으로부터 자신도 생명력을 회복해간다. 여름은 모든 생명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계절이다. 그렇기에 늦여름의 밤은 쓸쓸하다. 우리의 자라남이 이제 그칠 것을 감지하기 때문에. 하지만 한 편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다. 이번의 여름은 가지만, 다시 또 새로운 여름이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저물어가는 것, 사라져가는 것을 마냥 바라보며 아쉬워하기보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추억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 때 우리 삶은 보다 더 빛나게 된다. 그제서야 우리는 죽음 앞에 당당해질 수 있고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죽음 앞에서, 분명 형편없는 삶이었다고 자책을 하게 되겠지만 끝끝내는 '기쁨'을 떠올릴 수 있게 되는 삶. 우리는 결국 그런 삶을 향해 걸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티티새> 속의 츠쿠미를 돌이켜보며 '죽음에 가까이 가본 사람들'의 경험과 위로 앞에서 겸허하지 못하고 오만했던 나 자신을 부끄럽게 반성한다. 죄송했습니다. 




2013. 2. 1.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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