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이 글은 2006년에 쓰여졌습니다
그렇다. 자우림(=자줏빛 비가 내리는 숲)이다. 밴드= 자우림 아닌가! 라고 말하면 넥스트나 블랙홀이나, 부활이나, 델리스파이스 혹은 버즈의 팬들에게도 야유를 들을지 모르지만... 역시 현재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밴드로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자우림일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자우림의 데뷔시절부터 착실히 팬질을 해온 역사의 산증인이다. 자우림은 '꽃을 든 남자'라는 중박 영화의 OST에 들어 있는 '헤이헤이헤이' 란 곡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때는 김경호가 일으킨 록의 바람이 순풍이 되어 일명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오버그라운드 진출이 활발히 일어나던 즈음이었다. 그런 시대 조류를 타고 자우림은 등장했고, 1집만 내고 사라져버린 아마도 기획사 밴드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쥴리엣이라 밴드와 은근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인기몰이를 해나갔다.
보컬 김윤아의 넘치는 카리스마에 힘입어 자우림은 쥴리엣을 어느 순간 따돌려버리고 독주 체제를 굳혔다. 그 후 뒤늦게 발매된 1집. 나름 상큼한 '애인발견'으로 훈훈한 관심을 받더니 신도림역 앞에서 스트립쇼를 하고픈 문명인들의 은밀한 욕망을 끌어낸 '일탈'로 일약 스타밴드로 떠올랐다. 자우림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수 많던 밴드들이 2집 징크스로 사라져 갈 때도 자우림은 1집의 인기를 2집의 '미안해 널 미워해'로 더욱 증폭시키더니 이제는 일반 팬뿐 아니라 소위 음악평론가들의 구미마저 맞춰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덕분에 자우림의 밴드여정은 그야말로 탄탄대로 '나비'가 수록된 2.5집으로 쉬어감과 동시에 음악적 실험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더니 3집의 '매직카펫라이드'로 한국 모던록밴드의 독보적 위치를 선점해버렸다.그로부터 이제 자우림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음반을 사주는 10만명 이상의 팬층을 확보했다. 자우림은 4집을 통해 한국에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짓(영어로 가사쓰기, 앨범 전체를 우울한 음악들로 도배시키기)을 하면서도 음반 판매량은 역시 10만장을 가볍게 넘었다.
일명 언더에서 올라온 밴드 중 자우림과 같은 혁혁한 신화를 이루어낸 밴드는 자우림 이후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건 자우림이 그만큼 훌륭하다는 뜻도 있지만, 우리나라 대중들이 음악을 즐기는 스펙트럼이 그만큼 협소하다는 의미도 지닌다.)
자우림하면 곧 김윤아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 대중들에게는 상식으로 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자우림은 김윤아 독재 체제가 아닌 매우 이상적인 밴드로서의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우선 이렇게 오랜 시간 단 한 번의 멤버 체인지 없이 밴드를 유지해올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다.
자우림의 음반을 직접 사서 속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의외로 자우림의 인기곡 중에는 김윤아의 작품이 아닌 것이 많다. 히트 곡 중의 꽤 많은 수가 기타리스트인 이선규의 노래이다. 자우림 신작 앨범을 사서 처음 전곡을 듣다가 어 이거 좋다! 라고 생각이 들어 앨범 자켓을 들여다보면 이선규의 곡인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나와 이선규씨는 음악적으로 무언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다. 전설의 밴드 '산울림'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고. 음악 평론가들이 그렇게 잘근잘근 씹어댔던 이선규 김진만의 프로젝트 밴드 '쵸코크림롤스'(대부분 이선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1집도 나는 명반으로 꼽는 앨범 중의 하나이다.
자우림을 유지시키면서도 각 멤버들의 또 다른 음악적 욕구는 솔로 앨범이나 프로젝트 앨범으로 해소한다. 자우림, 이들은 정말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하고 즐긴다. 솔로 음반을 통해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윤아님도, 쵸코크림롤스로 인디적 감성을 폭발시킨 이선규와 김진만도, 라이브 클럽 롤링홀을 만들어 여러 인디 밴드들을 지원해주고 있는 구태훈도... 정말 멋지다. 자우림은 한국 음악사에서 아주 오래도록 빛날 전설적 밴드가 될 것이 틀림없다. 앞으로도 좋은 음악을 많이 만들어주시길 바래요~ 저도 즐겁고 열심히 음악과 오래도록 연애를 하겠습니다! 물론 정당한 방식으로.
왼쪽부터 드럼 구태훈. 베이스 김진만. 보컬 김윤아. 기타 이선규
자우림 추천곡 리스트 : 2012 갱신
애인발견!!!, 안녕 미미, 일탈, 밀랍천사 (1집) / 전곡 (2집) / 레테 (2.5집) / 매직 카펫 라이드, 새, 꿈의 택배편, 마왕 (3집) / 팬이야, #1, Vlad, 망향, 수사반장 (4집) / 17171771, Social Life (5집) / seoul blues, loving memory, you and me, 죽은 자들의 무도회, 위로, 샤이닝 (6집) / 청춘예찬, Girl you'll be a woman, starman, Good bye to Romance (청춘예찬) / 반딧불, something good, 20세기 소년 소녀, 27 (7집) / 전곡 (7.5집) / IDOL, EV1, RED RAIN, 혼자가 아니야 (8집)
2006. 12/7. 멀고느린구름
'산문 >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용옥 - 사랑하지 말자 (반디 & View 어워드, 알라딘 이달의 리뷰 선정) / 낭만적 사랑의 시대를 넘어 (2) | 2013.01.23 |
---|---|
오르한 파묵 - 소설과 소설가 (0) | 2013.01.05 |
오이예사 - 인디언 숲으로 가다 (0) | 2012.12.16 |
아니 에르노 - 한 여자(알라딘 이달의 리뷰 선정) (0) | 2012.10.08 |
김연수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알라딘 이달의 리뷰 선정) (4) | 2012.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