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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진화론 - 정봉주.지승호 지음/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새로운 정치인의 태동, 정봉주 진화론
소개하자면 나는 나꼼수를 싫어한 부류 중의 한 사람이다. 나꼼수가 언론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당시(여전하지만...) 대체 언론의 기능을 수행했고, 정치에 관심이 떨어졌던 일부 젊은이들을 각성케 한 순기능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프로그램 자체의 컨셉과 표현 방식이 영 나와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나로서는 이미 정치에 상당한 수준의 관심이 있었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걸러서 양질의 정치 사회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기에 나꼼수가 가지고 있던 순기능의 어느 쪽도 내게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정봉주 전 의원(이하 정봉주)의 아이돌과 같은 인기는 마뜩잖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BBK 건으로 정권의 표적이 되어 홍성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도 참으로 억울한 사람이라는 측은지심 외에는 발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그의 출소후 인터뷰집 <대한민국 진화론>을 읽게 된 데에는 도올 선생님과의 연관성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그저 이빨을 잘 까는 정치인으로 여기고 있었던 그를 뒤돌아 보게 만든 것은 그가 어느 순간부터 도올 선생님과 사상적 교감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접하고서부터였다. 도올 선생님의 저작을 무척 즐겨 읽고, 사상체계를 존경하는 나로서는 흥미를 아니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급기야 출소 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정봉주가 도올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그의 신작을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그저 강의의 수강생 및 책의 독자가 모두 자기의 제자일 뿐이라고 선을 그어오던 도올 선생님이 특별히 따로 제자로 두겠다고 언급을 했다니! 이렇게 부러울 수가! 대체 그가 어떠한 인간이기에!!!
<대한민국 진화론> 속에는 정봉주가 홍성 교도소에서 착안한 한국사회의 장기 플랜과 함께 도올 선생님과의 인연이 한 챕터로 정성스럽게 구성되어 있어, 그가 정말 선생의 제자가 되었음을 실감케 한다. 책을 읽기 전 정봉주라는 인물에 대해 반신반의했던 나는 책을 덮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다. 정봉주라는 정치인의 현재 상태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여러 결점을 가지고 있는 미완성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느낀 그의 호학자로서의 경향, 사상가로서의 자질, 명석한 지성은 그에게 삼봉 정도전과 같은 인물로서 성장할 기대를 품게 만든다. 도올 선생님 역시 그에게서 그러한 가능성을 감지한 것이리라.
<대한민국 진화론> 자체가 그의 오롯한 저작물이라기보다는 출소 후 심경을 담은 인터뷰집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이 한 권의 책으로 지금 그가 가진 비전을 깊게 들여다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 책에서 펼쳐지는 그의 비전은 역시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의 원석에 가깝다. 그가 내세우고 있는 비전은 제레미 러프킨이 <유러피안 드림>과 <3차 산업혁명>에서 상술한 바 있는 유럽식의 대안사회이다. 러프킨의 이러한 비전은 이미 고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이후 <진보의 미래>를 집필하며 제시한 국가 비전이기에 우리 정치사에서 특별히 새로운 비전이 출현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정봉주는 도올 선생과의 만남을 통해 이 비전에 동양적 사유의 깊이를 더하게 된다. 즉, 사회 제도로서의 유러피안 드림에 내적인 사회의 정신으로 공맹의 대동사회를 내세운다. 서양의 하드웨어에 동양의 소프트웨어를 탑재하는 이러한 방식은 기실 도올 선생이 지금까지 자신의 저작을 통해서 꾸준히 표현하고자 했던 국가 비전이다. 이를 볼 때 도올 선생은 자신의 사상체계를 구현할 적임자로서 정봉주라는 정치인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꼼수를 통해 나타난 1기 정봉주가 기존 정치인에 친근함을 더한 캐릭터였다면, 홍성을 거쳐 등장한 2기 정봉주는 분명 우리가 여태 가져보지 못한 새로운 정치인임에는 틀림 없다. 그는 마르크스나 막스 베버, 카를 포퍼 등의 정치철학자를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제레미 러프킨이나 촘스키, 공자와 정도전 등의 사상가를 곧장 불러낸다. 2기 정봉주에게 있어 장기간의 피선거권 박탈은 그 스스로 말하듯이 천우일회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진화론>은 현재 서점가에서 의외로 인기가 시들해 보인다. 정봉주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탓도 있지만 더불어 책의 제목이 가진 무게만큼의 내용성이 뒷받침 되지 않는 탓일 것이다. 하지만 정봉주라는 새로운 정치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일독의 가치는 충분이 있는 책이다. 정봉주가 과연 유시민과 같은 훌륭한 '작가'로서도 안착할 수 있을지는 아무래도 그의 다음 저작을 기대해야할 것 같다. 생활 정치인으로 전향을 선언한 빼어난 저술가 유시민. 강제로 생활 정치인으로 살게된 정봉주. 두 사람의 삶이 묘하게 지금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되었다. 정봉주가 유시민마저 넘어서서 정도전의 <편민사목>, <불씨잡변>, <조선경국전> 등에 버금가는 새로운 정치 사상체계를 다룬 저술을 써내기를 기대해보는 것은 나의 과도한 바람일까. 모쪼록 완성된 <대만민국 진화론>을 읽을 수 있게 되기를, 정치인 정봉주의 건승을 기원한다.
2013. 3. 24.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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