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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늘 바라보이던 산이 며칠 내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미세먼지 탓이다. 덕분에 목이 계속 칼칼하다. 공기청정기는 집필실을 지키고 있고, 나는 집필실에 출입하지 않은지 꽤 되어 간다. 사라진 산의 자리는 연한 잿빛의 안개로 채워진다. 아침에 소파에 앉아 멍하니 안개 속을 바라보고 있으면 끼루루- 끼루루- 하는 소리와 함께 먼 곳에서 온 새의 무리들이 줄지어 날아간다. '철새'라는 말이 정치인과 보도인들에게 오염되어, 나는 그들을 여행새라 부르고 싶다.
바야흐로 여행하는 새들의 계절이다. 강원도 철원에 살 때 3년 동안 여행새들을 겨울마다 가까이서 보았다. 이르면 10월 늦으면 11월쯤, 바이칼 호수 부근에서 날아올라 따뜻한 남쪽의 나라로 여행하는 수천 마리의 새들은 자연물로서의 인간이 지닌 한계를 증명해주었다. 여행하는 새들을 보면 어쩐지 겸허한 마음이 든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기이하게도 나는 경제적으로 가장 궁핍한 시기에 가장 과소비를 많이 했다. 다음 월세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태로운 시기에 고가의 게임기를 사버리거나, 희귀한 찻잔, 빈티지 의류 같은 걸 구입해버렸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털어버리기 위한 무의식의 불건강한 몸부림이 아니었나 싶다. 술로 불행을 만든 사람이, 그 불행을 잊기 위해 다시 더 술을 마시는 것 같은 행위랄까.
경제적으로 안정감이 있던 시기에는 오히려 책 외에는 거의 뭔가를 산 일이 없었다. 지금도 애용하는 30만 원짜리 무중력 손목시계도 4년을 눈여겨보다가 구입한 것이었다. 목탄의 형태를 본땄다고 하는 10만 원짜리 샤프는 실제 구입까지 5년이 걸렸다. 최근에서야 그런 예전의 생활로 겨우 돌아온 듯하다. 10만 원대의 진공청소기를 1년째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있다. 여행새로 치면 이제야 겨우 고향인 바이칼 호수로 돌아왔달까.
인생이란 기이하여, 이렇게 느긋하고 뭐든지 포용할 수 있을 듯한 시기에는 늘 외로웠다. 다시 사랑한다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용기를 내면 또 인생은 이상하게 내리막길을 향하곤 했다.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이만큼 여러 차례 어리석은 짓들을 되풀이하다 보니 조금은 삶의 형태가 조감된다. 높이 나는 새들이 우리가 보지 못하는 지구의 큰 형태를 내려다보듯이. 인생이 비슷한 일들을 종종 변주하며 내게 어떤 풍경을 보여주려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물론, 인생이란 자는 이 또한 오만이라고 꾸짖기 위해 다음 페이지에 이상한 걸 준비해놓겠지만.
그러라지 뭐. 천천히 또 이겨낼 테니까.
2019. 12. 12.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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