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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자 양준일 씨에게 반했다. 이것은 모종의 자기애가 아닐까 싶다. 그의 말씨와 태도, 생김새는 어딘가 조금씩 나와 닮았다. 그는 올해로 50대가 되었고, 나는 내년이면 40대가 된다. 재능이 반짝였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한 그의 20대와 나의 20대를 억지로 맞추어 보며, 나의 10년 후를 다시 그려보게 된다.
오래전 30대 중반 즈음, 한 사람에게 마흔이 될 때까지 이름을 얻지 못하면 삶을 정리하겠노라고 말한 적이 있다. 스스로 내뱉어놓고도 놀란 말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말은 다짐이라기보다는 미리 던져놓은 포기 선언이 아니었나 싶다. 그로부터 노력 아닌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 그다지 좋은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이만큼 했으면 그만두는 게 역시 좋을까. 공연한 희망고문 속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바뀔 때, 시간여행자를 만났다.
그가 단지 20대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만 했더라면, 내게 아무런 흔들림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한 50대의 어른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모든 어긋남이 예상하지 못한 완벽을 향한 여정일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덤덤히 던지는 어른. 지난 인생은 내 마음의 쓰레기를 비우는 과정이었다고 따스하고 단단한 표정으로 회고하는 어른. 그는 과거에서 온 시간여행자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희망하는 나의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이기도 하다. 10년 후의 나 역시 그처럼 덤덤하고 단단하며 따스하게 내 삶과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갈망한다.
뻔뻔하게도 스스로 정한 기한을 어기며, 다시 한 세대를 향해 걸어가려 한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저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그 글에 어울리는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싶다. 수많은 깊은 밤들을 건너왔다. 길고 차가운 어둠을 견뎌내고, 끝내 밝아오는 여명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리석고, 무모했으나 끝내 자신을 만들어낸 이로 기록되고 싶다.
오늘 새벽을 밝히는 빛은 물을 너무 많이 타 옅어진 하늘파랑의 냉빛과 귤껍질의 속살 같은 온빛이 섞여 있었다. 어둠은 그렇게 여리딘 여린 빛으로 조금씩 조금씩 끝내 밝혀지는 것이다.
2019. 12. 27.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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