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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화초와 사별하기까지 3개월

멀고느린구름 2019. 8. 12. 22:03

 

화초의 영혼을 꺼트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개월이다. 화초라고 하는 생명체의 수명이 수십 년에 이른다는 사실을 도저히 현실적으로 증명해낼 수 없는 나는 수백 년 동안도 나무를 길러내는 지구에게 다만 경의를 표할 수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부터 풀과 꽃과 나무를 좋아했다. 봄과 여름이면 거리에 피어난 수많은 화초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넸고, 커다란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속에 안겨 잠드는 일을 사랑했다. 잎사귀들을 흔들며 부는 가을바람은 또 얼마나 눈물겨웠던가. 

 

그렇게 초록을 사랑한 나이기에 화초를 기르는 마법도 당연히 내게 주어져 있을 거라 여겼다. 스무살에 기숙사 2층 침대에서 길렀던 테이블 야자는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첫 자취를 기념하며 야심차게 입양했던 고무나무, 페퍼민트, 대나무, 산세베리아, 병아리눈물 등등은 한 계절을 지나지 못하고 모두 화석이 되고 말았다. 몇 년의 공백기를 거쳐 다시 힘을 내어 길러본 선인장과 다육이들을 모조리 살해하고 난 후에야 내게 허락되지 않은 일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쩌면 큰 나무는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길러보았던 해피트리가 두 계절을 넘기지 못하고 쓰러졌을 때 나는 인생에서 화초 기르기를 지웠다. 

 

아주 어릴 때부터 곤충을 두려워했다. 끔찍하게 생긴 겉모습 탓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약한 존재라 혹여 실수로 죽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장 큰 공포의 원인이었다. 차를 운전할 때도 난 늘 긴장 상태에 빠지곤 하는데 자칫 실수로 도로를 지나는 동물이나 어쩌면 사람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의 생명을 거두는 권능을 갖게 되는 것이 참 싫다. 

 

내 나름의 정성을 다하여 보살핀 화초들이 떠나가던 계절을 모두 기억한다. 최선을 다 하였으나 어찌할 수 없는 내 한계로 스러지고 마는 것들을 바라보는 일은 무척 쓸쓸한 일이다. 어느 날 우주의 운명으로 인해 밤 하늘의 달이  지구의 궤도를 벗어나 아주 먼 은하 저편으로 영영 사라진다면 어떨까.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쓸쓸한 눈빛으로 점점점 작아지는 달의 빛을 바라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 라고 읊조려야 한다면. 꺼져가는 화초의 영혼을 바라보는 일은 내게 늘 달과의 작별 같은 것이었다. 

 

또 한 화초가 3개월 남짓의 시간만에 스러지고 있다. 어떻게든 하려고 모든 걸 다 해봤어 라고 변명해도 소용이 없다. 폭염과 장마가 변덕스럽게 오갔던 불행한 계절이었어 라고 말해도 마찬가지다. 말들과 상관 없이 잎은 재로 변해 하나 둘 지고 가지는 앙상히 마른다. 아름다웠던 순간은 돌아오지 않을 강물을 따라 흘러가버린다. 다시는 화초를 기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 다시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쓸쓸했고, 화초가 없는 방은 화초가 있는 방보다 어쩐지 중력의 힘이 더 크다. 가끔 이 세상 모든 화초의 죽음들이 내 방의 중력에 끌려드는 듯한 밤이 온다. 그런 밤이면 나는 꼼짝없이 방바닥에 붙들린 채 더 사랑하지 못한 인생을 후회하며 무책임한 말이나 허공에 던져놓는다. "안녕, 부디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렴."

 

그러나 어떤 나무가 수백 년을 산다면 그것은 행복한 일일까. 이것이 내 마지막 변명이다.

 

2019. 8. 12.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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