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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잠을 깨우는 빗소리

멀고느린구름 2019. 9. 10. 05:21

빗소리에 잠을 깼다. 다시 잠들려고 한 시간이나 애를 썼으나 온갖 상념들만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기 시작하는 통에 그냥 이불을 걷었다. 다락방에 누워 있으면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마치 진군하는 군인들의 군화 소리처럼 들린다. 이렇게 쓰면 전혀 낭만적이지 않지만, 남들보다 긴 시간을 군에서 보낸 내게는 미약한 서정의 풍경이 떠오른다. 

 

새 보금자리인 '구름정원'의 다락방은 아름답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내가 아름답게 만들었다. 지난 주말과 지지난 주말을 온통 투자해서 몹시 단정한 공간으로 변모시켜놓았다. 다락방에 대한 애정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나는 다락방에서 첫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진정한 의미의 독서 또한 다락방에서 비로소 시작되었을 것이다. 작은 나트륨 전구 하나로 흐린 귤빛 불을 밝힐 수 있었던 조그만 다락방은 내 유년의 첫 자기만의 방이었다. 구름정원의 다락방은 내 첫 다락방에 비하자면 광활한 영토다. 첫 다락방이 제주도라면 지금 내가 앉은 다락방은 몽골의 대평원쯤 되겠다. 마침, 중원에서 건너온 샤오미 이라이트 전등이 은은한 달빛 모드로 켜져 있다. 등 아래의 커피잔과 자작나무 테이블, 내 열 개의 손가락과 맥북만이 선명할 뿐, 다른 사물들은 빗소리와 어둠에 잠겨 있다.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때에는 온갖 글감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는데 막상 일어나 앉으니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없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만은 아직 남아 있는데, 과연 쓰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여러 드라마들과 음악에 의탁해 살아가는 요즈음이다. 한때는 주어진 소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갖 것의 리뷰를 써왔는데 언제부턴가 좋은 작품은 작품 그대로 두면 그만이지 거기에 무슨 말을 구태여 붙이는가 싶어졌다. 하지만 분명 이렇게 써두고도 조만간 무언가의 리뷰를 쓸 것이 틀림 없다. 

 

뒤척이던 때의 생각이 하나 더 붙잡혔다. 문필가(작가라는 표현은 엄밀하지 않다고 여긴다)는 글로서 스스로 자신의 감옥을 만들어가는 자라는 생각이다. 나는 말과 글과 삶이 서로 어울려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렇게 살아왔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그런 유형의 문필가는 때로 글을 써서 자신의 삶을 글 속에 가둔다. 삶에 나태해진다 싶으면 게으름을 경계하는 글을 쓰고, 사람을 대하는 일에 정성이 흐려진다 여겨지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쓴다. 그리하여 내가 쓴 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는 것이다. 몹시 피곤한 방식이지만 나는 거의 그런 방식으로 살아보고자 하였다. (성패에는 그다지 자신이 없다.) 반드시 고쳐야만 하는 일인데, 차마 공개적인 글로는 쓰지 못해서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 일도 있다. 그렇게 고치지 않음으로써 글과 삶을 일치시키기도 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쓰지 않았으니 꼭 그런 사람이지 않아도 좋아라는 식이다. 피곤하게 살고 있으니, 이 정도의 융통성은 눈감아 주자 하는 면도 있다. 언젠가는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나의 욕망이 그마저 집어삼키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랜덤플레이곡에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나온다. 빗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2019년의 가을.

 

 

2019. 9. 1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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