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라스 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빈센트 반 고흐는 썼다. 1888년 6월의 일이다. 고흐의 시대에 사람이 살아서 별까지 이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살아서도 별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지도의 한 점으로 기차를 타고 가듯이 별의 한 점으로 갈 수는 없지만 가까운 달이라면 갈 수도 있다. 단, 몇 억 달러의 돈을 지불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고흐가 오늘날 태어났다고 해도 여전히 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죽음이 지름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조작이든 아니든 닐 암스트롱이 달에 닿은 이후 인류는 꾸준히 기술의 진보를 이룩하여 비로소 우주 왕복선이라는 것도 만들었고, 지구 밖에서 지구를 ..
내가 가진 네스티요나 EP 음반에는 요나 씨의 사인이 선명하게 쓰여져 있다. 쌈지 바람 라이브 콘서트장이 아직 건재하던 시절, 공연 현장에서 받아온 것이다. 처음 'cause you're my mom'을 듣고 받은 음악적 충격은 아직도 선명하다. 와, 이런 것도 만들 수 있구나. 이런 감성이 한국에서도 태어날 수 있구나 찬탄하며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들었다. 같은 EP 음반에 수록된 '이렇게'는 한동안 휴대폰 벨소리로 쓰기도 했다. 2008년 3월에 마지막으로 그녀의 모습을 공연장에서 보고, 나는 군에 입대해야 했다. 그것이 마직막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 군에서 2집 발매 소식을 듣고 일부러 휴가를 내서 나와 매장에서 씨디를 샀다. 이후 공연 소식을 수소문했지만 알 수 없었다. 요나를 제외..
범죄자는 범죄 현장에 반드시 다시 나타난다는 속설처럼, 이별한 사람들도 이별 현장에 반드시 나타난다. 이 문장이 성립하려면 따로 통계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통계청에서 일하는 직원이 아니다. 단, 언젠가 이런 조사에 흥미를 갖고 모험을 떠나려는 이를 위해 여기에 나의 예를 하나 들어둔다. 나로 말하자면 이별 현장에 반드시 나타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 물론, 나한테만 유명하다. - 최근에도 속절없이 이별 현장에 다녀간 일이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늘 북적이는 곳이다. 그곳에서 어떤 이성끼리, 혹은 동성끼리 이별을 한다고 한들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자주 만났고,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고, 차를 마시고, 저녁을 해결했으며, 종종 영화도 보았다. 나는 범..
어설픈 채식주의자를 표방하고 있기도 해서 우유를 잘 마시지 않는다. 사실, 좀 더 본질적인 원인은 우유를 마시면 이상하게도 절반의 확률로 배탈이 난다는 데 있다. 두통이나 복통이나 아무튼 몸 구석 어딘가가 아픈 것을 지나치게 싫어하는 나로서는 괜시리 도박을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더구나 우유라고 하는 식품이 육신의 고통을 감수할 정도로 지고의 쾌락을 선사하는 식품도 아니지 않은가. 가끔씩 나는 불온한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가령 대관령 목장에 올라가 들판에 누워 소젖을 시원하게 빨아마시고 있는 인간의 풍경 같은 것 말이다. 요즘 하도 자연식 같은 게 유행을 하니까. 웰빙의 열풍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나는 어릴 적부터 두유를 즐겨 마셨다. 두유 애호가라면 누구나 겪었을 갈등이 있을 것이다. 바로 베지밀 ..
서른이 지나면 훨씬 더 현명하고 평화로운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여전히 요즘의 나는 이해 받기만을, 받아들여지기만을 바라고, 내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되어 있다. 논쟁을 벌이는 일이 정말 무엇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내 속에 쌓인 욕구를 분출하기 위해서인가... 이 물음 앞에 논쟁이 끝난 후면 번번히 가시지 않는 내 속의 미열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좀 더 나를 내려놓고 내 말을 관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더 듣기 위해 온 힘을 다할 수는 없을까. 내 속의 평화를 지키는 일은 온 세계의 평화를 지키려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과연 언젠가는 그 마음에 다다를 수 있을까... 한 없이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오늘 또 한 번 부끄러움 위에..
결국 작년 한 해 정식 문예지를 통한 공모전은 모두 탈락했다. - 자음과 모음 신인상 발표가 이미 11월 24일에 책을 통해서 나왔음에도 나는 인터넷 검색만하고서 아직 발표가 안 될 걸로 착각하고 있었다. - 이전에는 간간히 최종심에도 오르곤 했던 나의 소설이었지만... 2012년 한 해 동안은 단 한 작품도 최종심은 커녕 예심의 문제작 반열에도 오르지 못했다. 작가적 재능이 다했거나 시대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거나 둘 중의 한 결론 밖에 내릴 수 없는 참담한 결과다. 물론 어느 쪽의 결론도 타당한 결론은 아닌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뭐였을까. 답은 역시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 글에서 언제부터인가 치열함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면피용으로 소설을 쓰고 있지 않았나 싶다. 나는 아직 포..
자그만 식물을 키우는 일 6월 중순부터 말까지 15일간 집을 비웠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함께 '자립여행'이라고 하는 긴 여행을 다녀왔지요. 여행은 무사히 다녀왔습니다만,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돌아온 날 '구름의 뜰'이라고 지금 막 이름을 붙인 베란다 정원을 보곤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여행 가기 일주일 전에 사다가 고이고이 키우던 풀꽃 세 아이가 갈조류처럼 말라 있었습니다. 서둘러 물을 흠뻑 먹이고 며칠 동안 약도 먹이고 흙도 갈아주고 해보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 도저히 살아날 기색을 보이지 않아 결국 학교 '포도정원'에 묻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여름이라 적어도 일주일에 물을 두어번은 마셨어야 할 아이들인데... 내리 3주를 굶었으니 얼마나 목을 태우다 죽었을까..
지난 일요일에 심적인 충격에 휩싸이는 일이 있어서 며칠 간 가벼운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덕분에 편두통과 감기 증세가 겹쳤어요. 거기에 더해 새학기 수업계획표를 작성해야 하는 주간이었기에 매일 출근하고 퇴근해서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화요일 즈음에는 친절하게도 맥북에어가 포맷되는 익숙한(?) 사태까지 발생해주셨지요. 이래저래 고통의 한 주였습니다. 몸도 마음도 축축 쳐져만 가는데... 그럼에도 언제나 저를 일으켜 주는 것은, 중심을 잡아주었던 것은 글쓰기였습니다. 참 벅찬 마음의 상처가 아려오지만 또 이겨내야겠지요. 견디고 살아나렵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저 자신 또한 책망하지 않고 신산한 삶을 배워가는 자세로 또 쓰렵니다. 모쪼록 모두가 아픔 속에 머무르지 말기를 그 속에서 다시 따스함을 찾고 부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