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백지 위의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나는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고 들었다. 그런 탓일까. 가까스로 생명을 부여받은 내 속에는 언제나 죽음으로 미끄러지려는 충동과 끈질긴 삶에 대한 의지가 공존한다. 소설 의 주인공 ‘설雪’에게는 태어나서 단 몇 시간 만을 살다가 떠난 언니가 있다. 설은 종종 생각한다. 언니가 죽지 않았다면 이 삶은 바로 언니의 것이었으리라고. 나치의 폭격으로 하얗게 폐허가 되고 만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 새로운 돌을 이어서 얹는 방식으로 도시를 재건했다. 많은 시간이 흘러 바르샤바는 폭격 이전의 모습을 회복했지만 복원된 건물들에는 파괴의 상흔이 선명히 남아 있다. 설은 그 거리를 걸으며 자신 몸 속에도 언니의 시간이 아로새겨져 있음을 떠올린다. 주..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예순둘은 예순둘을 살고 일곱 살은 일곱 살을 살지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 일천구백칠십 년 무렵그 날은 그 날이었고오늘은 오늘일 뿐이야 - 김창완밴드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중 - 그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봄이었다. 토요일이거나 일요일이었고, 나는 철원에서 보고픈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철원의 봄은 더디고 늦으니, 아마도 5월 초나 중순 즈음이 아니었을까. 창문 너머로 여름 해변의 모래알 같은 아침햇살이 스며 들었고, 라디오에서는 김창완밴드의 이 노래가 나왔다.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바둑 두는 할아버지가 툭 내뱉은 선문답 같은 이 가사에 깜박 눈물이 고였다.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
언젠가 우리는 누군가의 교사가 된다 먼저, 오해를 풀고 시작해야겠다. 나는 항상 리뷰 글의 제목에 창작자의 이름을 소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왔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려는 이 드라마의 감독은 아오이 유우가 아니다. 연출 '미즈타 노부오', 각본 '후쿠다 야스시'다. 그렇다면 어째서 '아오이 유우'의 이름을 떡하니 제일 앞에 붙여 놓은 것이냐고 묻는다면 조용히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입에 머금을 수밖에 없다. 이 일로 적폐청산의 대상이 된다고 해도 별로 할 말은 없다. 수많은 일본드라마 가운데 이 작품을 시청하게 된 이유는 교육 현장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오이 유우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거나,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안경 미녀로 나온다거나 하는 부수적인 것들은 작품 선택에 결코 결정적 영향을 ..
인기 없는 드라마를 묵묵히 시청해나간다는 것은 무척 고독한 일이다. 게다가 그 드라마가 애국가보다 못한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을 때는 더더욱. 나는 언젠가 진실한 여행서를 집필하기 위해 아무도 오르지 않는 산길을 터벅터벅 올라갔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 도무지 어딘지 알 수 없는 공동묘지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 는 그날의 일을 내게 상기시키려는 양 나날이 시청률이 떨어졌다. 이러다가는 드라마의 마지막 즈음에 공동묘지 신이 등장할지도 몰라! 라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1500원짜리와 2000원짜리 두루마리 휴지 사이에서 갈등하느라 5분 이상을 소비하다 끝내 1500원을 선택하고 마는 하잘것없는 인간인 나라도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분연히 남영역으로 향했다. 다..
누군가이든, 어떤 꿈 속의 삶이든 개봉하던 첫 날 바로 영화 를 보았다. 추석 연휴 기간이었다. 지금은 윤상의 음악을 듣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에게 우디 앨런 감독을 우디 앨런 감독이라고 불러본 일이 없다. 나는 항상 그를 우디 '알렌' 감독이라고 호칭했다. 지금까지 나열한 말들 사이에는 서로 아무런 개연성이 없어 보인다. 단지 나라는 사람 속에서 자연스러운 순서에 따라 흘러나온 말들이라는 것 외에는 말이다. 에 대해 단 한 줄의 평만이 허락 된다면 이렇게 말하고 말겠다. 그 영화요? 첫사랑의 추억에 사로잡힌 사람의 흔한 연애담이지요. 지겹게 반복되고 변주되어 온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허락된 것은 한 줄이지만 결국 두 줄에 걸쳐 이렇게 말하고 말 것이다. 영화관을 나서며 '쳇, 뭐야?' 라고 속..
"수는 이번에도 10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여자를 따라갔다. 여자는 딱 한 번 멈춰 서서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오랫동안 통화를 하긴 했지만 그 외엔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 부지런히 여자를 따라가다 보니 여자가 어디로 가는지 어느 순간 분명해졌다. 바람이 신선했다. 바람이 가는 곳은 여름의 끝일 터였다. " - 조해진 194P 여름을 지나가고 있다. 바람은 차가운 곳에서 뜨거운 곳을 향해 분다. 대류 현상 탓이다. 공기는 풍부한 곳에서 희박한 곳으로 움직인다. 뜨거워진 공기가 대기의 상층부로 올라가버린 빈 자리에 상대적으로 차가운 공기가 흘러와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바람이 가는 곳은 여름의 끝"이라는 말을 한참 동안 생각했다. 여름의 끝은 어디일까. 지구의 적도 부근이 역시 여름의 끝인 것일까. 계절..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에게 침투한 악어 바이러스 이런 상상을 해보자. 약 2억년 전 중생대에 서식했던 악어의 조상 '테레스트리수쿠스Terrestrisuchus'(이름이 복잡하니 '테레'라고 하자)가 멸종하지 않은 채 인류와 금단의 이종교배를 이루어 인류의 한 부류로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 '테레'들은 인간 남성들을 다 잡아먹어버리고 남자 사람의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이 괘씸한 테레놈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0. 대부분 수컷이다.1. 고등생물체로서의 성욕 조절 능력이 없다. 2. 인간 여성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잡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인간 여성들을 다른 테레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내가 잡아먹기 위해서다. 4. 인간 여성들이 테레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것은 인간 여성들의..
우리가 꿈에 대해 물을 것은 를 읽은 것이 벌써 2008년의 일이다. 나는 그 책을 두 번 읽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읽고 싶어서 다시 읽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를 읽고 소설가 정한아에게서 요시모토 바나나스러움을 발견하고 기뻤다. 바나나스러움이란 후면에 쓰인 김윤식 평론가의 추천사처럼 '청량감'이기도 하고, 내가 사용하는 '긴 손가락을 가진 피아니스트'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긴 손가락을 지닌 피아니스트는 어려운 음악도 쉽게 연주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데뷔 장편 에는 분명 그런 청량감과 단순함이 미덕으로 살아 있었다. 에도 그 미덕이 여전히 감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작만큼 살아 있다는 느낌은 없다. 적어도 나는 느끼지 못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