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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지 않는 모든 유위와 단절하기로 마음 먹었다. 새해 들어 과거의 방식대로 살고 싶지 않아 선택했던 여러가지 일들은 공연한 사건들을 일으키고, 또 다른 번민의 씨앗이 되었을 뿐이었다. 마음의 뿌리는 그대로 둔 채로 가지가 뻗어나가는 모양만 바꾸려고 한 결과다.
그리움을 그리움대로, 외로움을 외로움대로, 어려움을 어려움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것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모면해보고자 애쓰는 동안 흰머리칼만 수십가닥 더 늘어났다.
유행을 체험해보자는 핑계로 시작했던 데이팅앱에서의 관계맺음은 한 차례 정도를 제외하고는 운명론자인 나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대화의 패턴마저 일정해져, 디지털 너머의 삶이 아닌 그저 앱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목표한 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쓸쓸함을 투사하는 일은 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층층이 쌓여가는 공허함은 온전히 내 몫으로 남았다. 여전히 옛기억에 사로잡혀 있고, 큰 의지도 없으면서 만남의 목마름을 연기했던 일은 엉뚱한 내상으로 돌아왔다. 지난 주말 이후 앱을 지웠다. 재개하는 일은 영구히 없을 것이다.
작년 여름부터 새로 시작한 일의 압도적인 업무량에 짓눌려 고통스런 나날이 계속되었다. 이 고통의 원인 또한 유위에 있음을 일찍이 알았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스스로 고통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직장의 업무로부터 내 문필가의 삶을 지켜내야 한다는 강력한 저항이 계속 마음의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치열한 항쟁의 나날이었다. 백기투항하고 싶지 않았다. 이쪽의 봉우리와 저쪽의 봉우리에 동시에 존재하고 싶었다. 당연히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 나는 이미 저쪽의 봉우리로부터 내려와 이쪽에 있음을 회피한 것일 뿐.
삶의 어떤 장면은 지독한 비극이다. 하지만 어떠한 장면도 영원하지 않다. 비극 속에서는 비극을 살고, 희극 속에서는 희극을 살 뿐. 가장 큰 고통은 비극 속에서 희극을 갈망하고, 희극 속에서 비극을 자처할 때 온다. 바다에 있을 때는 바다에 있는 것대로, 사막에 있을 때는 사막에 있는 것대로 살아가는 것이 역시 최선이다. 새벽이 밝아 온다.
2021. 3. 21.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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