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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짧은 소설

뭔가가 없어

멀고느린구름 2015. 5. 20. 18:57




뭔가가 없어



분명히 뭔가가 없다. "뭔가가 뭔가?" 라고 묻는다면 당신의 재치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재치란 것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 행복이어서 그걸로는 뭔가가 없다는 기분을 결코 지울 수 없다. 뭔가를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돈이 없다. 시간이 없다. 직장이 없다. 일이 없다. 애인이 없다. 잠이 없다. 꽃잠도 없다. 부모가 없고, 친구가 없다. 차비가 없고, 교통편이 없다. 편두통은 있지만 약이 없다. 수 많은 없는 것들 속에서도 뭔가는 없다. 무심코 노래를 불러보았지만 역시 이 속에도 그 뭔가는 없다. 도무지 뭔가를 찾을 방법이 없다. 과연 이 세상에 뭔가를 찾을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곰곰 머리를 이리저리 기울여보지만 역시 답이 없다. 분명한 건 신은 없다. "신발마저 없는가?" 라고 묻는다면 다시 한번 당신의 재치를 찬탄할 수밖에 없다. 미안하게도(그럴 일인가는 싶지만) 신발은 있지만 상표는 없다. 상표가 없는 신발의 존재 가치는 없다. 내게 뭔가가 없는 것은 마치 내게 상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아, 도대체 뭔가가 없다. 꿈이 없다. 희망이 없다. 미래가 없고, 과거도 없다. 주어도 없고 동사도 없다. 나도 없고 너도 없다. 플라타너스가 늘어선 길을 걸어가지만 나 외의 행인이 없다. 모두가 일하고 있을 때이니 지금 거리에 나와 있을리가 없다. 초여름에도 슈만의 음악을 틀어놓는 까페에 들어섰지만 주인이 없다. 빈 까페에는 슈만의 음악도 없다. 이 까페에는 뭔가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 것도 없다. 내가 며칠 내내 뭔가를 찾는 사이 주인은 까페의 흰벽만 남긴 채 사라지고 없다. 참고로 국어사전에 '카페'는 있지만 '까페'는 없다. 백발에 키는 178 정도이고, 늘 말끔한 정장차림으로 커피를 내려주던 주인은 아마 이제 이 거리 어디에도 없다. 독특한 신맛을 내던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다. 빅토리아풍의 커피 잔들이 없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핸드밀도 모두 다 사라지고 없다.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 너와 만날 수 없다. 아, 이런 식으로 너와 작별할 줄 알았다면 쪽지라도 하나 건네 볼 것을, 이제와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아무 것도 없는 빈 까페를 나오지만 갈 곳이 없다. 뭔가가 내게 있었던 적은 있었나 떠올려보지만 기억이 없다. 뭔가를 만진 적이 없다. 뭔가를 본 적이 없다. 뭔가를 맡은 적이 없다. 뭔가를 먹은 적이 없다. 너를 사랑한 적이 없다. 너를 만난 적이 없다. 너는 너였던 적이 없다. 나는 나였던 적이 있는가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였는가 물어봐도 대답할 말이 없다. 누구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너는 너였던 적이, 나는 나였던 적이 없다. 스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저 공허함이 세상을 뒤덮고, 달이 뜨고, 이제 눈 앞엔 햇빛이 없다. 플라타너스 길을 되돌아 집으로 향해보지만 내게는 돌아갈 진정한 집이 없다. 없는 것이 너무 많은 탓에 무엇이 없는지를 명확히 알 수 없다. 허나 지금까지 없다고 거론한 것들 때문에 내가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없는 것들 가운데 없는 것, 혹은 그 모든 없음을 아우르며 없는 것, 그 뭔가가 없다. 나를 샅샅히 파헤치고 분해해도 그 뭔가는 찾을 수 없다. 아아, 어쩌면 애시당초 그 뭔가란 것마저 없다. 그저 없고 없다. 밤하늘에 별이 없다. 은하수가 없고, 우주가 없다. 태어남이 없고, 죽음이 없다. 이 글에는 분명히 뭔가가 없다. 덕분에 아무 의미가 없다. 



추신 : 2015년 5월 20일 오후 6시 56분, 현재까지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이 없다. 



2015. 5. 20.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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