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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전람회와 토이가 만나다니

멀고느린구름 2014. 11. 19. 15:59

전람회와 토이가 만나다니 



어제 아침 토이의 7집 노래가 공개되었기에 들어봤다. 사실,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김동률과 유희열의 만남이 가장 기대되는 대목이어서 '너의 바다에 머무네'를 가장 먼저 들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검색창에 토이라고 치자마자 곧바로 성시경이 부른 '세 사람'의 뮤직비디오가 시작되어 버렸기에 아무렴 어떨까 싶어 자리를 잡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의 내용은 지나간 청춘시절의 삼각관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애초에 제목만 보고도 그 내용을 짐작했기 때문에, 그럼 그렇지 라는 심정으로 조금 시큰둥하게 화면을 바라봤다. 그런데 왜일까. 나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예식장에 들어서는 클라이막스 장면에서는 가슴 속에서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무언가를 막을 길이 없었다. 


내 가슴 속에 잠자고 있던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나는 약간 어리둥절한 채로 김동률이 부른 '너의 바다에 머무네'를 이어서 들었다. 마음을 다독이는 김동률의 목소리는 어쩐지 '세 사람'의 주인공에게로 향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세 사람'을 들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한 장면 한 장면이 세세하게 보였고, 음들이 정확하게 들려왔다. 


오래전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의 대다수가 이미 결혼을 했다. 세월이 그만큼 흘러버렸다. 첫사랑의 애련한 마음을 노래했던 전람회의 김동률은 어느새 중후한 삶이 겹쳐있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청춘의 쓰라린 상처를 토로하던 유희열은 청춘의 마지막 순간들을 노래한다. 


청춘은 언제 끝이 나는 것일까. 평소 스스로 청춘을 끝내기로 했을 때에야 청춘은 비로소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해왔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한 다짐에 지나지 않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청춘이란, 결국 자신의 지금 시절이 청춘인지 아닌지조차 몰랐을 순간에 붙이는 이름일 것이다. '청춘'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청춘을 지나와버린 것이다. 


전람회와 토이, 그리고 신해철은 내 청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올해 한 사람은 별이 되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지나간 청춘을 회고한다. 그로써 내 청춘은 끝이나버린 것 같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던,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던 순간은 이제 지나가버린 것이다. 전람회와 김동률이 청춘의 몽상이었다면, 토이와 유희열은 청춘의 상처였다. 상처입은 몽상은 곧 현실이 된다. 4년여 전, 한 시절 많이 사랑했던 이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나는 어쩐지 그것이 굉장히 비현실적인,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어딘가에서 일어난 일처럼 느꼈다. 그 차원은 그 차원이고, 내 삶에서는 아직 그녀는 내가 사랑했던 그녀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세 사람'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동안, 주인공이 사랑했던 여인이 다른 사람의 신부가 되어 예식장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비로소 모든 것이 이미 끝났음을 실감했던 것 같다.  


오래전, 전람회와 토이를 영원한 평행선상의 라이벌로 생각했던 시절, 그 둘이 만나서 앨범을 낸다면 지구가 멸망할 때일 거라고 농담을 했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 있을까. 어디선가 지구가 멸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을까. 그렇다.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내 청춘의 1기는 막을 내렸지만, 삶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신해철 씨만큼일까, 황순원 선생님만큼일까, 아니면 현대인의 평균 수명 운운하는 것처럼 더 오랜 세월 살게 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알 수 없는 세월을 "이제는 내 청춘도 다 끝나버렸다."라고 자조하며 살 것인가. 사실, 어제부터 지금 이 글을 쓰기 전까지의 나는 그런 모드였다. 세상은 어둡고 공허하며,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도, 보탤 수 있는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청춘이 끝났으면 어떠랴. 까짓것 청춘 시즌 2를 만들어서 다시 시작하면 되는 일 아닌가. 왜냐하면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내 삶에 청춘 시즌 2를 방송할 수 있는 시간이 아직 있기 때문이다. 그 이름을 꼭 '청춘'이라고 붙일 필요도 없겠다. 그저 어느날 나도 모르게 내가 가득 채워왔던 컵을 엎질러버린 것이다. 비워졌기 때문에 채울 수도 있게 되었다. 새로운 일도, 그리고 새로운 만남과 사랑도. 


전람회와 토이가 만났어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그러니 뭐 그리 겁먹을 필요가 있을까. 삶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배웠다. 괜찮다. 아직 여기에 있어도. 괜찮다. 아직 이루지 못했어도. 괜찮다. 아직 부족한 인간이어도. 내게는 아직,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삶이 남아 있지 않은가. 가자. 



2014. 11. 19.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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