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산문/에세이

무작정 어떤 글을

멀고느린구름 2015. 6. 25. 00:00

무작정 어떤 글을 



무작정 어떤 글을 쓰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묘하게도 대부분 밤이고, 마음을 끄는 음악이 들려오고 있을 경우가 많다. 지금 내 귀에는 스위트피 3집의 노래들이 들려오고 있다. 거절하지 못할 글쓰기의 충동. 아마도 '작가'라는 것에 타고난 재능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것이 있다면 그런 것일 거다. '글쓰기의 충동'이 마음의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 


문득, 궁금해진다. 이 충동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것일까, 아니면 삶의 어느 시점에선가 갑자기 틈입한 것일까. 음... 모르겠다. 분명한 건 지금은 그 고민을 깊게 이어나갈 타이밍은 아니라는 것이다. 


작년 한 해 카페에서 준점장 노릇을 했는데, 올해부터는 모 커뮤니티 디자인 기업 출판팀에서 '작가'라는 명함을 받고 일하고 있다. 계획이 있는 듯하면서 계획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내 앞에 펼쳐지는 삶의 모습이란 참 신비하다. 나는 준비하지 않은 채 대안학교 교사가 되었고, 의도하지 않게 카페에서 점장 노릇을 했으며, 어쩌다보니 지금의 회사에 다니고 있다. 취업을 하기 위해 수 백장씩 지원서를 쓴다는 또래 청년들의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들으면 나는 참 기묘하게도 복이 많은 인생을 살고 있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나만큼이나 마음을 비우고, 넙죽넙죽 주어지는 일에 임하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다들 뜻하는 바가 있고, 직업에 대한 눈높이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나로 말하자면 뭐랄까 썩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히지 않는 일이라면 모두 어느 정도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열심히 하는 편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 심지어 디브이디방에서 정액이 든 콘돔을 치우는 일까지 열심히 했던 나다. 


그렇게 보면 인생에 요행이란 것은 어쩌면 없는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에게 어떤 특별한 행운이 갑자기 주어졌다면 우리는 다만 그 행운이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는지 모를 뿐인 것은 아닐까. '등단'이라는 요행이 아직까지도 내게 주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어쩌면 내 삶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요즘은 하게 된다. 문 안에 들어가려고 애쓰지 말고, 문 밖에서 역할을 찾아보라는 거룩한 메시지 같은 것 말이다. 그런 메시지를 주려면 적어도 꿈속에 산신령님이라도 등장해서 또박또박 얘기해주면 좋을 텐데 삶의 메시지는 언제나 모호한 것이 문제다. 


올해부터 시작하게 된 회사에서의 자리가 요즘 흔들리고 있다. 고작 6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내 처지에 일이 흔들린다는 것은 삶이 흔들린다는 것과 같다. 허나 너무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떻게든 길은 이어지리라고 믿으려고 한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삶의 태도와 품격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곧 장마가 시작된다는 말이 들린다. 열대야는 벌써 찾아온 것 같다. 세상도 내 마음도 어지럽고 후덥지근하다. 멀리서 매미가 울고, 쏴아 바람이 불고, 별이 흔들리다 제 자리를 찾는 광경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2015. 6. 24. 멀고느린구름.

Comments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