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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세이

별이 된 형에게

멀고느린구름 2014. 10. 27. 23:07

별이 된 형에게 



해철이 형... 형이라고 처음 불러봅니다. 저에게는 피를 나눈 친형이 있지만 어린시절부터 소원하게 지내와서 마음 속으로는 외동이라고 생각하면 자라온 저입니다. 그런 제게 마음의 형은 바로 해철이 형이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히얼 아이 스탠 포 유'를 삑사리 내어가며 부르던 옆자리 친구 덕에 형의 노래를 처음 알게 되었어요. "육교 위의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나와 만난 얄리"처럼 형의 노래는 제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고 미숙한 상념들을 깊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수줍음이 많아 사람들에게 말도 잘 못 걸던 제가 처음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서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형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를 불렀었습니다. 그 덕분에 한 여자아이에게 러브레터도 받아보게 되었었네요. 


대학생이 되어 저처럼 형의 노래를 좋아하던 친구를 만나, 제가 알지 못하던 형의 숨겨진 노래들도 함께 부르며 늘 주머니가 텅텅 비어 있던 청춘의 한 시절을 견뎠습니다. 


미숙한 마음 때문에 사랑하던 연인에게 상처만 주고 헤어졌을 때, 나 자신을 끝도 없이 저주하고, 그저 죽고만 싶었던 시절... 형은 매일 밤 고스트스테이션을 통해 제게 말해주었죠. 그래도 살아라. 살아서 더 좋은 자신이 되는 것이 네가 상처 입힌 사람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요. 마초라고 인간 쓰레기라고 평가 받고 그대로 무너져 버리고 싶었던 제게 형은 자신은 개량형 마초라고 너스레를 떨며 등을 다독여주었습니다. 


2002년 노무현 후보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형이 후보캠프에서 진행한 라디오 방송을 듣고 확신을 얻었고,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형이 목놓아 부르던 '그대에게'를 들으며 함께 울고 그래도 산 사람으로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습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청춘도, 청춘의 모든 사랑도 끝나버렸다고 느꼈을 때, 형이 만들어준 노래 '라스트 러브 송'을 듣고 부르며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형도 나이를 먹고, 가정을 이루고, 세상사에 지쳐 오래 쉬셨지요. 그래도 저는 늘 형의 음악을 들으며 언젠가 형이 다시 돌아오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형은 예상대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의욕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고, 새로운 삶에 대해서 다시 말했습니다. 


참 밝고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있던 형의 그 모습을 살아가는 동안 잊지 않겠습니다. 쓰러지고 더럽혀지더라도 끝내는 다시 일어나 새로운 희망과 위로, 연대를 말하던 형을 기억하고, 그 모습대로 살아보려고 저도 한 번 애써보겠습니다. 


퇴근길에 지하철 역 계단을 내려오며 형의 부고를 처음 들었습니다. 왈칵 쏟아지려던 눈물을 참고 참아 집까지 왔습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입구 앞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또 글쟁이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형에게 편지를 씁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남은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계속해나가야 하는 것이겠지요. 


지금 저는 '먼훗날 언젠가'를 듣고 있습니다. 제가 무서운 꿈에서 깨어나 형의 이름을 부를 때 언제나 곁에 계실 거죠? 저 역시 언젠가 그곳에서 형과 만나겠지요. 그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도록, 그래도 최선을 다한 삶이었어요 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도록 살겠습니다. 


제 청춘의 갈피갈피마다 아름다운 노래와 위안을 선물해주신 형... 제가 형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형을 잊지 않는 삶뿐입니다. 살아서 더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오늘밤 이렇게 생각하는 이는 저만이 아닐 겁니다. 편안히 잠드세요.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2014. 10. 27.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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