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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족 추장의 모습. 본문의 엉클 프랭크 데이비스의 사진을 구하기 어려워 다른 사진으로 대체했습니다.
인디언 교육
2.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가
- 멀고느린구름
포니족의 영적지도자 엉클 프랑크 데이비스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어머니처럼 지혜로워지는 방법을 물었던 일화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어머니께서 나를 내려다보시며 말씀하셨어요.
"인생이란 길과 같은 거란다. 우리 모두 그 길을 걸어가야 해. 만일 우리가 그만두면 그것은 길 위에서 걷는 것을 그만두는 것과 같단다. 밤이 지나면 우리는 일어나 그 길을 다시 걸어야 한단다. 그 길을 걷다보면, 우리는 앞에 나타나는 조그만 종이조각들과 같은 경험들을 발견하게 된단다. 그러면 우리는 그 종이조각들을 집어서 주머니에 넣어야 해. 우리가 만나는 그 하나하나의 종이조각들을 그렇게 주머니에 넣어두다 보면, 어느 날 우리는 충분한 종이조각들을 갖게 된단다. 그러면 그것을 한데 모아 그 조각들이 말하는 것을 읽는 거야.
누구나 충분한 종이조각들을 가질 수 있단다. 그 안에 있는 내용을 읽은 다음 그것을 가슴에 가져가는 거야. 그리고는 그 종이 조각들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길을 계속 가는 거란다. 왜냐하면 집어야 할 종이조각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지. 나중에 그들을 꺼내서 좀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좀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단다. 만일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내내 이렇게 종이조각들을 모은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보다 많은 것을 읽게 되겠지. 우리가 더 많이 읽으면 읽을 수록, 우리는 더 많은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된단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지혜로워지는 거란다. 설령, 지혜로워지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과거보다는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거든."
- 스티븐 윌, 하비 아든 <지혜는 어떻게 오는가> 중에서 발췌
내가 이 글을 읽은 것은 2003년 봄이었다. 그때 나는 한창 내 속에 잠재해 있는 폭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어린시절 종종 폭력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대하며 나는 어른이 되면 절대 폭력적인 사람은 되지 않을 거야 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나였다. 그리고 상당 부분 그 대업을 이뤘다고 자평하고 있던 차였다. 일반적인 인간관계 속에서는 무난하게 어린시절의 다짐을 실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인과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감정 대치를 하게 되자 숨어 있던 폭력성은 고스란히 날카로운 언어적 폭력으로 표출되었었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조금 문제가 있는 아이였다. 표면적으로는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는, 한 구석에 얌전히 앉아 있는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나는 나 자신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나는 감정의 변화 단계가 조금 위험한 사람이었다. 보통 외부로부터 어떤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점점점 열이 받아서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다가, 급기야는 사람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상태로 발전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중간 단계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것이다. 누가 내게 스트레스를 주면 곧바로 상대를 죽여버리고 싶은 살인 충동으로 이어졌다. 물론, 다행히 그런 것을 실제로 행한 일은 없기 때문에 지금 이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 자신은 명백하게 그 감정의 전이 과정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늘 더 마음을 감추고, 움츠러 들고, 조용히 있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러던 것이 대학생이 되어 일대일의 내밀한 개인적 관계가 되자, 상대에 대한 냉정한 언사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나는 심각한 문제점을 느끼고 여러 명상 서적을 따라서 명상 수련을 하기도 하고, 요가도 해보고, 절에 다니며 스님을 따라서 수행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게 알맞는 수행 방법을 찾은 것이 위빠사나(Vipassana)였다. 우리 말로는 '관법(觀法)명상'이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Insight'라고 부른다. 이 수행방법을 쉽게 풀어 말하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 불교적으로는 엄밀하게 말하면 마음을 일으키는 다섯 가지 요체인 '오온'을 들여다보는 것이지만, 그렇게 말하기 시작하면 굉장히 복잡해지니 여기서는 단순하게 '자기 들여다보기' 라고 하자. -
나는 위빠사나를 알고부터 매일 아침 30분씩 자기 들여다보기를 했고, 길을 걸으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수업을 들으면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계속 계속 나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관찰했다. 그러면서 또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아, 이거 사실은 내가 학창시절 내내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던 일이다.
그렇다. 나는 중학교 2학년 시절부터 소설 창작을 시작했다. 소설과 더불어 심심하면 시를 쓰고, 일기를 쓰고, 보낼 곳도 없는데 편지를 쓰곤 했다. 그러면서 그 속에 내 마음의 현 상태와 그 마음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 지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보면 해답을 찾아왔던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글쓰기를 통한 위빠사나를 실천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고서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중단해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먼저 소개한 포니족 아메리카원주민(인디언)인 엉클 프랑크 데이비스가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지혜의 비결도 크게 다른 말이 아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그저 책을 양적으로 많이 읽기만 하면 훌륭하고 현명한 사람이 될 것처럼 기대한다. 허나 전혀 그렇지 않다. 성찰이 없는 다독은 오히려 아이에게 해독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책을 읽지 않고서도 꾸준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산 아이보다 현명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읽느냐가 아니다.
데이비스의 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인생의 길에서 주운 종이조각은 반드시 펼쳐보고, 그 의미를 살피고, 가슴에 담아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만족해서 내가 이제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자만하지 말고, 다시 새로운 종이조각을 줍는 일에 나서야 한다.
종종 청소년 시절에 어떤 아픔이나 시련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있기 힘들어 빨리 그 시기를 벗어나라고 종용하거나, 다른 것에 눈을 돌리도록 부추기기도 한다. 고민 같은 것은 빨리빨리 털어버리고 공부에 집중하기를 권한다. 허나 그렇게 해서는 당연히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을 뿐더러, 아이가 그때 그때 읽고 지나가야할 중요한 인생의 메시지를 놓쳐버리게 된다. 그 아이는 공부에서도 만족할 수 없게 되고, 인생에서도 만족을 얻을 수 없게 되고 만다.
최근에 일어난 군에서의 여러 참혹한 사건들을 대하면 우리 어른들의 잘못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좀 더 작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충분히 그것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더라면, 조금 더디게 가고, 조금 방황을 할지라도 자기 스스로 삶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시간을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교사 생활을 하면서 많이 느낀 점 중의 하나가 상당한 부모들이 아이가 내려야 할 판단을 대신 내려주고, 부모의 판단이 옳은 것이라고 아이에게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1, 2학년 정도의 아이가 미숙하게 내린 판단에 대해서야 부모가 깊이 생각하고 개입하여 바른 길을 알려줄 수 있다고 쳐도, 3학년 이상 정도 되면 아이가 내린 판단에 대해서 부모가 멋대로 평가하고, 자신의 판단만을 강요하는 것은 무척 곤란한 일이다. 최소한 상의를 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한 부모들이 이미 자기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아이의 의사를 무시한 채 자신의 판단을 강요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하면 아이는 점점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망각하게 되고 만다. 자신의 인생이 주는 메시지를 스스로 모으고, 모은 것을 펼쳐 읽어보는 힘이 사라지고 만다.
어른이 되어서도 사고를 치고는 부모에게 달려가 해결해달라고 조르는 20대, 30대의 젊은이들을 우리는 종종 언론 보도나 일상을 통해 만나게 된다.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만 시간 공부를 하고, 일만 권의 책을 읽어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고, 스스로 인생의 의미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날 때 누구나 지혜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가지는 고뇌의 시간에 대해 따스하게 바라보고 감싸주되, 그 고뇌를 섣불리 대신 해결해주려고 나서지 말자. 아이에게는 어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2014.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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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포니족(Pawnee)
캐도어를 사용하는 북아메리카 인디언.
16세기 이전부터 19세기 후반까지 미국 네브래스카 주 플랫 강 유역에서 살았다. 19세기에 이들은 킷케하키·차우이·피타하우에라트·스키디 등 비교적 독립적인 몇 개의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집단들은 포니족의 기본적인 사회단위인 여러 부락으로 나뉘었다. 이들은 돔형의 커다란 움집에서 살았으며 물소 가죽으로 만든 티피도 사용했다. 여자들이 옥수수·호박·콩 등을 재배했다. 도기 제작기술이 발달했으나 17, 18세기에 남서부의 스페인 정착민들로부터 말이 전해지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추장·사제·샤먼 등은 상층계급에 속했다. 부락이나 소집단의 우두머리는 각자 신성한 물건들이 가득한 꾸러미를 가지고 있었다. 샤먼은 질병을 치료하고 적의 공격이나 식량부족을 막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제는 의례를 행하고 신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는 방법을 배웠다. 주술과 사냥을 위한 집단 이외에도 군사집단이 따로 있었다. 포니족의 종교는 매우 정교했다. 몇몇 별들을 신격화하여 그 앞에서 탄원하는 의식을 행했으며, 옥수수 파종 시기를 정하는 실용적인 문제에서도 별의 움직임에 의존했다. 옥수수는 상징적인 어머니로서 그를 통하여 태양신이 은총을 베푼다고 여겼다. 최고신인 티라와와 함께 샛별도 중요한 신이었다. 한때 이들은 포로로 잡힌 소녀를 샛별 신에게 바치기도 했으나 이러한 풍습은 19세기에 사라졌다. 포니족은 백인들과 평화롭게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변경의 군대에서 정찰병 역할을 했다. 1833, 1848, 1857년의 협정에 따라 네브래스카의 영토 대부분을 미국 정부에 양도했으며, 1876년 마지막 남은 땅을 넘겨준 뒤 오클라호마로 이주했다. 현재 오클라호마의 보호구역과 그 주변에 2,300여 명의 포니족이 살고 있다.
출처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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