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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긴 소설

61년 3

멀고느린구름 2013. 9. 22. 08:56



곱디 고운 봄 



    곱단네 가족은 연합군이 피우다 말고 버린 꽁초들을 모아 되파는 일을 했다. 이 업종은 유난히 경쟁이 치열했다. 곱단네처럼 일가족이 뛰어드는 경우도 많았다. 아직도 교전이 이어지고 있어서 위험한 경기도까지 올라갔다 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물론 대대적으로 꽁초 사업을 벌이는 경우로 운송 차량까지 두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산자락에 칠판 하나 걸어두고 열리고 있었지만 곱단 같은 다 자란 여자아이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곱단은 아직도 글을 쓰고 읽을 줄을 몰랐다. 곱단의 부모는 전쟁이 나기 전 이북에 있을 때는 제법 벌이가 되는 식료품점을 했었다. 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료품점은 군의 관리하에 들어갔고, 곱단의 아버지는 만주에서 벌인 항일독립전투 가담 경력 때문에 상사 계급으로 군에 징집 당했다. 가을이 되자 연합군이 평양까지 올라왔다. 북군은 내부단속을 철저히 했고 반공분자는 즉결 처분을 하고 다녔다. 어머니와 곱단은 고모네와 함께 남하를 결정했다. 고단한 행진이 이어졌다. 배고픔과 추위, 폭격의 공포가 끊이지 않았다. 피난민들에게는 북측도 남측도 신뢰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칫 말을 잘못했다가는 즉결처분이었다. 남쪽의 정부는 대한민국이라는 것과 대통령의 이름은 이승만이라는 것을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연합군의 군복을 입고 즉결처분을 하고 다니는 공산군도 있었기 때문에 말씨나 행동거지를 잘 살펴야 했다. 피난민들은 모두들 짐승처럼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한강을 건널 때 쯤에 극심한 추위가 찾아왔다. 한강이 얼어붙은 덕분에 강을 건너는 일이 수월해진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모처럼 썰매를 타며 노는 아이들도 있었다. 곱단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강을 건너려고 할 무렵, 어머니가 죽었기 때문이다. 파상풍 때문인 것 같다고 고모부가 말했다. 어머니는 발바닥이 녹슨 못에 찔린 것을 내색도 않고 그저 걸어왔던 것이다. 향불 하나 피우지 못하고 어머니를 남산 자락에 묻었다. 어디에 묻었는지 기억이 선명하지 않아, 곱단은 그저 남산 전체가 어머니의 무덤이려니 하며 상경한 이후로는 기일마다 그 산을 오르곤 했었다. 천애고아 신세가 되었지만 슬퍼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중공군이 합세하여 북군이 다시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었다. 곱단과 고모네는 걸음을 서둘렀다. 그와 중에 곱단의 어린 사촌 누이가 지쳐 죽었다. 곱단은 부모를 잃고, 고모 내외는 자식을 잃었다. 서로 의지하며 간신히 연합군의 보호 하에 있는 부산에 다다랐을 때 서로를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 첫 번째 봄은 봄이 온 줄도 모르고 지나갔다. 중공군이 서울을 다시 빼앗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중공군과 북군이 부산까지 내려온다면 부산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민족의 배신자로 분류되어 즉결처분 될 것이다. 북군에 투항하러 다시 월북하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연합군의 승리 소식이 다시 전해졌다. 중공군과 연합군이 철원 선을 두고 대치하고 있다는 소식을 끝으로 새로운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오랜 대치가 이어졌고, 덕분에 사람들은 집을 짓고, 시장을 열고,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혼인을 하기도 하며 삶을 다시 꾸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봄이 온 것이다. 곱디 고운 봄이었다. 


   곱단은 열 아홉 살이 되었다. 고모네는 곱단을 친딸처럼 대해주었다. 딸이 다 컸으니 혼사 자리를 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변변한 신랑감이 없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다들 빌어먹고 사는 처지였다. 또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대도 곱단 같은 처지의 여자를 아내로 데려갈 일도 없었다. 별 수 없이 고모네는 고철을 주워다 파는 청년과 선 자리를 마련했다. 하는 일은 지금 궁색해도 부모님 두 분 다 살아계시고, 신체가 건강하니 먹고 살 일은 걱정 없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벚꽃이 피어나던 즈음에 곱단과 청년은 동네에서 가장 큰 벚나무 아래 평상에서 만났다. 청년은 곱단에게 한 눈에 반해버렸지만, 곱단은 청년이 눈에 차지 않았다. 곱단의 마음에는 이미 다른 이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곱단이 그이를 보게 된 것은 하필이면 선 보기로 한 날 하루 전이었다. 


   곱단은 여느 날처럼 고모네와 부대 주위를 맴돌며 꽁초를 주워 모으고 있다가, 못 보던 가게가 새로 문을 연 것을 알아차렸다. 고모에게 간판에 쓰인 글씨를 물으니 ‘책향’이라고 했다. 고모는 새로 생긴 새책가라고 했다. 이제 살만해지니까 사람들이 책도 읽는구나 하며 고모부가 거들었다. 곱단은 흥미를 느끼면서도 부끄러움이 일었다. 공부를 하고 싶었다. 허나 그런 말을 어찌 할 수 있을까. 곱단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꽁초를 줍는 일에 열중했다. 이번 생에서는 양갓집 규수처럼은 살 수 없게 태어난 거라며 단념했다. 거리가 귤빛으로 물들었다. 고모부가 허리를 투닥거리며 꽁초를 모아 담은 자루를 동여 멨다. 오늘은 여기서 끝이라는 신호다. 곱단도 일을 멈추고 기지개를 한 번 켰다. 고모네가 집으로 걸음을 떼었다. 곱단은 새책가 쪽을 한 번 돌아보았다. 모던 보이처럼 흰 셔츠에 조끼를 입고, 검은 면 바지를 빼입은 남자가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가게 문을 걸어 잠그는 것으로 보아 가게의 주인인 듯 보였다. 저렇게 젊어 뵈는 사람이? 라고 생각하며 곱단은 더 유심히 새책가 쪽을 관찰했다. 시선을 느꼈는지 남자가 곱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남자의 안경태가 금빛으로 반짝였다. 지나치게 힘 주어 빗어 넘긴 머리 모양이 변발한 청인 같아 곱단은 피식 웃고 말았다. 남자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그때 곱단은 하늘을 물들인 노을빛이 모두 제 가슴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고모부가 곱단을 불렀다. 곱단은 그대로 돌아서 고모네 쪽으로 뛰었다. 가슴 속이 너무 환하여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13. 9. 22.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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