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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대학에 진학하며 부산에서 서울로 옮겨왔다. 소년이 청년이 되어 서울에 머무는 동안 고향 집에서는 소년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그만 소년이 소녀의 얼굴을 그려놓은 수첩을 버리고 말았다. 소년은 영영 소녀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다만, 그 가슴 한 켠에 가장 아름다웠던 한 여자아이의 느낌만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때 문학기행에서 돌아온 소년이 전해준 소녀의 이미지가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어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소년이 부산을 떠난 후에도 나는 부산에 남았다. 혼자 바닷가를 거닐 때면 늘 소년과 소년이 그려왔던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했다. 소년이 품은 소녀는 내 가슴 속에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소녀는 다른 이들의 가슴에도 이름을 달리하며 담겨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년과 나는 중고교 시절을 함께 보냈지만 대학 이후부터는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종내에는 요양원 입원이라는 형태로 각자의 삶을 마감하게 되고 말았다. 하나의 길에서 두 갈래 갈림길을 따라 어긋나고, 혹은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하나의 길로 모이고 마는 것이 사람의 길이었다. 소년과 나는 각자의 인생을 살았지만 어린 시절 가슴에 품은 소녀는 같았다. 나는 소녀를 품은 채 곧 다른 이를 만나 사랑을 하고 소녀는 그저 그 소녀대로 품은 채로 살아가게 되었지만 소년은 그러지 못했다. 소년은 평생을 소녀의 이미지 속에 갇혀 살았다. 아마도 그것이 소년이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년이 내게 부탁한 자서전의 내용은 20대부터였다. 1년에 한 번 꼴로 그가 입원했던 포플러나무숲이 울창했던 요양원에 들를 적마다 소년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그 중에서도 한 여인을 사랑했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소년을 희대의 바람둥이로만 알았던 독자들에게는 이 자서전의 일부 이야기가 생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연예계, 혹은 예술인, 정치인들과 연애담을 양산해온 소년이었기에 평생 한 여인을 흠모해 왔다고 하는 것의 진정성에 공감하지 못할 이들도 많을 것이다. 때문에 그의 10대 시절 이야기를 고인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감히 여기 싣는다. 소년은 그 자신이 평생 흠모해온 여인을 소녀와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여기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실제하는 그 소녀를 다시 만나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탓에 소녀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여인들에 대해 종종 마음을 이끌리곤 했던 것이다. 허나 그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유일하게 가장 오래토록 평생 끈질기게 고인의 마음을 끌었던 것은 이 자서전에 담긴 한 여인이 유일했다.
그의 자서전 ‘사랑’편 첫 장에 수록된 것처럼 그는 73세가 되던 해에 여인과 재회했다. 그는 감격과 환희가 가득한 목소리로 그날 내가 있던 요양원으로 전화를 했고, 수록된 내용을 전했다. 그리고 한 동안 연락이 없었다. 다시 연락을 받았을 때는 부음이었다. 장례에 가 알아보니 여인이 그보다 하루 앞섰다고 했다. 나는 비참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장례에 다녀온 후 며칠을 크게 앓았다.
그의 부음을 듣기 며칠 전이었다. 나는 살 날이 머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아 그만 요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도 먼저 보내고 자식들도 먼 타지에서 지내고 있어 혼자 지내야했지만 그래도 집에서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하고 싶었던 것이다. 집에 있던 이것저것을 정리하다가 중학시절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이리저리 들춰보며 피식피식 웃음 짓고 있는데 어느 갈피에 낡은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그림을 찍어놓은 사진이었다. 소년의 그림이었다. 내가 가슴에 품었던 꼭 그 소녀를 닮은 모습이었다. 감격스러웠다. 어서 소년에게 보여주러 가야지 하고 여겼다. 그러던 차에 먼저 부음을 들었다.
내가 비참한 심정을 느꼈던 것은 소년과 그 그림을 다시 함께 보며 옛 추억을 나누어보지 못한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그날에서야 알게 된 한 가지 사실 탓이 더욱 컸다. 소년의 장례에 가서 유족들에게 그 사진을 함께 묻어주면 좋겠다고 전해주고 나오는 길이었다. 가까운 곳에 여인의 장례가 아직 진행 중이라 하여 들르게 되었다. 영정을 보고 나는 그만 실성한 노인처럼 바닥에 주저 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랜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덤덤했던 나였다. 영정 속의 여인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영락없는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병원 직원들의 부축을 받아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 벤치로 옮겼다. 포플러나무숲 사잇길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그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햇살이 비끼는 숲 사이를 거니는 두 노인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내가 일찍 이 사진을 발견해 고인에게 전해주었다면 그러니까 20대 때나, 30대 때, 아니 50이나 60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 때에 전해주었다면 그의 일생이 바뀌었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증거가 있어야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다. 저 포플러나무숲 사잇길처럼. 두 나무가 있고 그 사이가 있으면 바람이 불어 지나는 것이다. 나는 다시 숲 사잇길을 거니는 두 노인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웃고 있던 소년의 영정도 떠올렸다. 그것으로 됐다.
2012. 7. 16.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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