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6인의 반란자들 - 6점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한 때 FC 바르셀로사 소속 선수로 활약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사비(Xavi)와 같은 이름을 가진 바르셀로나 출생의 사비 아옌은 2008년부터 3년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를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 중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1인을 찾아 인터뷰를 한다는 단순한 기획이었다. 그러던 것이 3년에 걸쳐 16명의 작가들을 만나고 전 세계가 당명한 사회의 부조리를 마주하는 대프로젝트가 되고 말았다. 라는 것으로 <16인의 반란자들>은 서두를 시작한다. 


  '노벨문학상'이라는 것은 어릴적부터 마음 속에서 막연하게 그려온 최고의 영예였다. 고교시절 탐독했던 세계백과대사전의 세계문학 코너에서 "장 폴 사르트르는 1964년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했다."는 구절을 통해 처음으로 상의 존재를 인식했다. 그로부터 나는 혼자서 마음 속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이 되고, 대세계인 담화문을 발표하며 수상 거부를 선언하는 장면을 상상해보곤 하였던 것이다. 수상하는 것조차가 하늘의 별따기인 그 상을 먼저 거부하는 상상부터 하고 있는 것은 물론 우스운 일이지만 당시 나는 17살의 천진한 문학소년이었다.


   딱히 남다른 명예욕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언젠가 노벨문학상은 꼭 수상해보고 싶다는 것이 내가 품은 가장 큰 야심이었다. <16인의 반란자들>을 구입한 이유도 대체 어떻게 쓰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수 있는가? 하는 의문 탓이 컸다. 모노톤의 훌륭한 인물사진을 보고 감탄한 측면도 있었다. 작가들의 화보집을 겸한다는 의미로 겸사겸사 구입해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주제 사라마구와의 가벼운 산책을 시작으로 도쿄의 선술집에서 오에 겐자부로와 술 잔을 기울여 보기도 하고, 다리오 포와 레지스탕스의 아지트 같은 지하 공간에서 즉흥 연극을 펼치는가 하면, 갑자기 화약 냄새가 풍기는 아프리카의 윌레 소잉카나 나딘 고디머 같은 혁명가들을 만나기도 한다.


  시공을 넘나드는 이 인터뷰 여정은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으로의 테마여행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사람 속에 있는 고통의 뿌리를 향해 침잠해가는 명상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반란자들'이라는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노벨문학상 작가들은 그 형태와 대상은 제 각각 달랐지만 사람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그 무엇과 싸우고 있었다. 그 싸움은 지난했고, 대개 평생에 걸친 것이었다. 아랍 출신의 유일한 수상작가 나기브 마푸즈는 인터뷰 기간 동안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테러리스트의 소굴로 낙인 찍힌 아랍의 진심을 세계와 그들 자신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는 평생을 바쳤다.


  책을 읽어내려가며 과연 나는 무엇과 싸워야하는가 계속 질문을 던졌다. 어릴 적부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비틀려 있다고 생각했고, 자본주의의 문제, 문명의 문제, 가부장제의 문제, 인종차별의 문제, 종교의 문제 등 많은 주제들에 대해서 탐구하고 공부해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던졌고, 대안을 제시했고, 거리에서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싸우고 있다. 글쟁이로서의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16인의 작가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것을 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바로 지금 하세요.
지금 당신이 쓸 수 있는 것을, 지금 쓰세요. 솔직하게. 거짓에 맡서서. 용감하게.


문학의 힘은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 문학이 사회를 바꿀 수 없음은 물론, 단 한 사람의 마음조차 돌이킬 수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달이 고요하게 온 세상을 매일 비추고 있지만, 우리는 거의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며 산다. 세계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어두운 곳에서, 조그만 책상을 밝힐 정도의 불빛 아래서 글을 쓰고 있는 모든 작가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이 지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달이 되어 뜨고 지는 모습을.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러한 달로 뜨고 질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노벨문학상이 대수이겠는가. 다음은 책을 읽던 중 깊은 감명을 받아 포스트잇에 적어 벽에 붙여둔 페르난두 페소아의 싯구이다.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잘난 체하거나 배척하지 않는 것임을

넌 알아야 해

알면 알 수록 그건 아주 사소한 것임을

넌 알아야 해

달은 세상의 모든 호수를 비춘다는 것을

그래서 높은 곳에 위치한다는 것을.




2012. 4. 1. 멀고느린구름




 



 




 

Comments
최근에 올라온 글